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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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25 공상(空想) / 윤동주 4
출처: 개정판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 / 세계사) p.147-50

  ...시 「공상(空想)」은 윤동주가 쓴 시들 중에서 최초로 활자화된 것으로서, 그 점에서는 아주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공상」은 1935년 10월에 발간된 『숭실활천(崇實活泉)』지에 게재되었다. 『숭실활천』은 숭실중학교 학생회에서 간행하던 학우회지로서 1922년에 창간되었다.[각주:1]

공상(空想)

空想 ─
내 마음의 塔
나는 말없이 이 塔을 쌓고 있다.
名譽와 虛榮의 天空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無限한 나의 空想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벌려서
나의 바다에서
自由로이 헤엄친다.
黃金 知慾의 水平線을 向하여.

  윤동주는 이때 시를 실었을 뿐 아니라 『숭실활천』의 편집도 했었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해 문익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동주는 숭실학교에 한 학기(필자 주: 두 학기의 착오)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동안 학교 문예지 편집을 맡았었고 거기 동주의 시 한 편이 실렸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갓 편입해온 학생에게 그 일이 돌아간 것은 <은진중학교>에서 먼저 숭실에 나가 있던 이영헌(李永獻, 현 장로회 신학대학 교수)이가 문예부장이 되면서 동주에게 그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때 동주는 내게도 시를 한 편 써 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 편 써 내었더니 <이게 어디 시야> 하면서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시는 나와 관계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었다. 동주가 살아 있어서 내가 하는 성서번역을 도와주었다면(살아 있다면 기꺼이 도와 주었을 것이다) 나는 영영 시를 써보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각주:2]

  이것은 윤동주 자신의 시의 변모와 관련해서도 아주 흥미있는 일화다. 그가 위의 시 「공상」을 학교 잡지에 싣던 무렵에, 문익환의 시를 보고는 <이게 어디 시야>라는 매우 야무진 무안을 주며 되돌려주었다는 것은, 당시 그 자신의 <시관(詩觀)>이랄까 하는 것을 뚜렷이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시관>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것은 그가 <시>라고 자부한 그 자신의 「공상」이란 시에서 연역해낼 수 밖에 없다.
  「공상」이라는 시를 다시 곰곰이 뜯어 읽어보자. 그가 <화려하고 조숙한 느낌의 수사들을 사용해서 엮은 그물로 어떤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맵씨 있게 낚는 것>을 <시>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아무래도 그런 인상을 부인할 수 없다. 「공상」뿐만 아니라 1936년 10월 이전의 시들은 대개 그런 분위기이다.

...

  이렇게 일관된 일련의 시적 경향들은 1935년 10월에 이르기까지 윤동주가 생각했던 <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마도 문익환의 시는 이런 기준과 구도에 도저히 미치지 못했기에 그의 눈에 <시>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학소년 취향의 관념적이고 또 상당한 현학취미를 보이는 <어려운> 시들은 1935년 10월을 끝으로 그뒤로는 일제히 자취를 감춘다.
  1. 『숭실대학교 90년사』, p.257. [본문으로]
  2. 문익환, 「하늘  바람  별의 詩人 尹東柱」, 『월간중앙』, 1976. 4, p.3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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