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시오노 나나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5.09.19 로마인 이야기 12권 독서기
  2. 2005.09.18 로마인 이야기 2권 독서기

Tertii Saeculi Crisis 위기로 치닫는 제국

독자들에게·15

'위기'의 질적 차이에 대하여 16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와 시종일관 대처에 쫓길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차이...어렵더라도 로마인 본래의 사고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시대와 눈앞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본질까지 바꾼 결과 더욱 심각한 위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차이라고 해도 좋다.


제1부 로마 제국·3세기 전반

제1장(서기 211~218년)
카라칼라 황제(211~217년 재위)


누구나 로마 시민!

p.32

공정한 세제야말로 선정의 근간...선정이란 정직한 사람이 억울한 꼴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인간은 자기 주머니를 직접 공격하는 정책에는 과민 반응을 일으키게 마련이고, 이것이 폭동이나 반란으로 발전한 뒤에는 군사력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다.


p.36

권리라는 것은 일단 주었다가 다시 빼앗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득권’과 ‘취득권’

p.38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는 사회가 이질분자, 즉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인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p.40

인간은 자기 본질에 바탕을 둔 행위를 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 법이다.


‘취득권’의 ‘기득권’화가 미친 영향

p.42

인간은 공짜로 얻은 권리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국 방위


로마의 인플레이션

p.51

계급간의 격차를 완전히 철폐하면 오히려 계급간의 유동성이 사라져버리는 법이다.


파르티아 전쟁


기동부대

p.62

정책이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도 통찰한 뒤에 생각하고 실시해야 한다. 깊은 통찰과 정반대되는 극에 있는 것이 얕은 생각이다.


메소포타미아로

p.66

로마인은 예로부터 강화는 이긴 뒤에 맺는 것이고 지고 있는 동안은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다.


p.67

강대한 권력을 부여받은 이상 그에 따른 의무도 커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지위가 높을수록 개인적인 자유는 제한된다" 이런 사고 방식이 일개 시민이라면 허용되는 일도 지위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의 바탕이 되어 있었다.


p.69

로마인도 내란이 일어나면 로마인끼리 싸웠다. 아무도 외국을 내란에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내란이라는 이름의 세력다툼은 몇 번이나 일어나지만, 외국과 결탁하여 같은 로마의 라이벌을 밀어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로마인의 특질로 꼽아도 좋을 듯하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 당장 동포의 지지를 잃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암살
마크리누스 황제(217~218년 재위)
철수
시리아의 여자
제위 탈환

제2장(서기 218~235년)
엘라가발루스 황제(218~222년 재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222~235년 재위)
법학자 울피아누스
6년간의 평화
충신 실각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
사산조 페르시아
부흥의 기치
페르시아 전쟁(1)
병사들의 파업
일차전
게르만 대책
라인 강변

제3장(서기 235~260년)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황제(235~238년 재위)
실력과 정통성
원로원의 반격
1년에 황제 다섯 명
실무가 티메시테우스
동방 원정
고대의 지정학
필리푸스 아라부스 황제(244~249년 재위)
로마 건국 천년제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
기독교도 탄압(1)
야만족의 대침입
고트족
석관
야만족과의 강화
게르만족, 처음으로 지중해에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 재위)
기독교도 탄압(2)

제2부 로마 제국·3세기 후반

제1장(서기 260~270년)
페르시아 왕 샤푸르
포로가 된 황제
페르시아에서 벌인 인프라 공사
갈리에누스 황제(253~268년 재위)
미증유의 국난
갈리아 제국
팔미라
삼분된 제국
하나의 법률
‘방위선’의 역사적 변화
군의 구조 개혁
스태그플레이션
‘장롱 저금’?
불신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268~270년 재위)
고트족의 내습

제2장(서기 270~28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275년 재위)
반격 개시
통화 발행권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다키아 포기
제노비아 여왕
일차전
이차전
팔미라 공방전
갈리아 회복
개선식
제국 재통합
비어 있는 황제 자리
타키투스 황제(275~276년 재위)
프로부스 황제(276~282년 재위)
야만족 동화 정책
카루스 황제(282~283년 재위)
페르시아 전쟁(2)
벼락

제3장 로마 제국과 기독교

연표·428
참고문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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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나의 점수 : ★★★★★

역사는 과정에 있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면,
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만큼 당사국 국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Bellum Hannibalicum 한니발 전쟁]

독자 여러분께

p.9

역사는 과정에 있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면, 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만큼 당사국 국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에서는 뛰어난 그리스인인데,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데다 한니발이라는 희대의 명장까지 갖고 있던 카르타고인인데, 왜 로마인에게 패했을까.

프롤로그

제1장 제1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64년~기원전 241년

p.24

전쟁이 끝난 지 불과 20년 뒤에 과거의 적을 자기네 지도자로 선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로마인의 이같은 성향은 포에니 전쟁을 치르는 로마에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주게 된다.

p.35

항해술에 자신이 없는 로마인은 이 '까마귀'를 이용하여 해상 전투를 육상 전투로 바꾸려고 생각한 것이다...'까마귀' 같은 신무기를 생각해낸 것은 로마에 해운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p.43

과두정치는 선거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 의회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지도층을 구성하는 이들에게는 국정 제일선에서 활약할 기회를 가능한 한 평등하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과두정치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단점 가운데 하나는 총사령관을 겸임하는 집정관이 임기중에 전과를 올리려고 애쓰기가 쉽다는 점이다...이것은 로마 집정관을 속전속결형으로 만들기 쉬워서, 포에니 전쟁 같은 장기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결함이 되었다.

p.44

지중해 세계에서 최강의 해군국으로 꼽히던 카르타고도 경쟁상대인 그리스가 쇠퇴한 뒤로는 적다운 적을 만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실전 경험을 쌓지 못한 군대는 약체화를 피할 수 없다. 기원전 3세기의 카르타고는 해운국이기는 했지만, 더 이상 해군국은 아니었던 것이다.

p.47

적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사람이나 사고 책임자에게 다시 지휘를 맡기는 것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려는 온정이 아니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그 실수에서 틀림없이 교훈을 얻었으리라는 게 그 이유니까 재미있다.

p.56

하밀카르는 움직임이 봉쇄당하는 것을 꺼렸다. 주도권은 자신이 잡지 않으면 안된다.

p.61

마키아벨리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점이지만, 공화정 로마에서는 군사령관을 겸임하는 집정관에게 일단 임무를 주어 내보낸 뒤에는 원로원조차도 작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패전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걱정없이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p.63

로마는 상대가 받아들이기 쉬운 쪽으로 강화를 맺었다.


제2장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기원전 241년~기원전 219년

p.67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장래는 결정된다. 승패는 이미 판가름났으니까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문제는 거기서 얻은 경험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p.68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긴 쪽보다 진 쪽이 더 많은 압박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p.75

로마인의 남다른 점은 뭐든지 자기들이 다 하려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기네가 제일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90

투표권으로 나타나는 권리의 확산은 병역으로 나타나는 의무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로마 군단을 구성하는 시민병도 더욱 광범위한 시민권 보유층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군단 지휘관에게 귀족과 평민의 차별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더불어, 로마라는 국가의 거국일치 체제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p.92

로마인은 체계화를 좋아했지만, 융통성이 없지는 않았다.

p.97

무장으로서 최고사령관의 능력은 백인대장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부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를 정점으로 하는 로마 명장들은 모두 백인대장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그들을 수족처럼 다룰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제3장 제2차 포에니 전쟁 전기 기원전 219년~기원전 216년

p.119

한니발이 동시대인에 비해 단연 뛰어난 점은 정보의 중요성에 착안한 점이었다.

p.134

'로마 연합'을 정치 건축의 걸작이라고 평한 토인비의 주장...로마는 이 패배자들을 피지배민족이라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소키'라는 적극적인 존재로 대우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도를 비롯한 로마의 '사회간접자본'설비에서도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지만, 한니발과 대결하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로마가 가진 진정한 힘이 되었다.

p.135

한니발이 치른 전투를 추적해 보면, 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술을 철저히 공부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가 보병과 기병의 비율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p.136

전투 결과를 좌우하는 전술은 콜럼버스의 달걀인 동시에 콜럼버스의 달걀이 아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콜럼버스의 달걀이지만, 그 방식을 답습해도 누구나 반드시 같은 결과를 낳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콜럼버스의 달걀이 아니다. 그 방식을 살리느냐의 여부는 그 방식을 실제로 구사하는 인간의 재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알렉산드로스니까 성공했지, 누가 해도 성공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니발은 알렉산드로스의 선례를 참고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독자성으로 그 방식을 살렸다.

티치노-제1회전

트레비아-제2회전

p.145

이 시대의 평민 출신 집정관 중에는 강경한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명예심이나 출세욕에 사로잡혀 그러는 것은 아니다. 호민관이 평민의 대표자였던 시대보다, 평민 출신이 귀족을 포함한 로마 시민 전체의 대표인 집정관에 선출된 시대에는 자기가 평민계급의 대표자라는 것을 더 강렬하게 의식한다. 자기 출신계급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기 뒤를 이을 평민계급 출신 집정관을 위해서라도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p.148

포위전법은 적의 주력 부대를 무력화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전술의 기본이기도 했다.


트라시메노-제3회전

p.154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 각오는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식까지 지배계급의 무능에 희생되는 것을 감수할 마음은 나지 않기 때문이다.

p.171

로마인들은 이때부터 아무리 방해를 받아도 해내고야 마는 것을 "한니발은 무엇이든 통과한다"는 한 마디로 바꾸어 말하게 되었다.


칸나에-제4회전

p.173

서구의 사관학교라면 반드시 가르친다는 역사상 유명한 칸나에 전투

p.178

31세의 장군은 로마군 사령관들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들은 적장의 책략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전쟁터로 끌어내려면 그 경계심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마치 로마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p.186

로마라는 나라가 수도에만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로마라는 나라는 면과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한니발

p.190

자신이 목적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선례는 없을까 하고, 선인들의 업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법이다. 한니발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p.192

마케도니아의 젊은 장군(알렉산드로스)은 기병이 갖는 기동력을 구사하여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군사력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군 전체를 유기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적의 주력부대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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