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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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

L. Log/잡담 2006. 12. 6. 21:58
영화 '달콤한 인생'의 영어 제목은 'A Bittersweet Life'다. 굳이 직역하자면 '달콤-쌉싸름한 인생' 정도? 이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달콤한 인생'이란 한국어 제목은 반어적이고 극적이지만, 영어 제목은 더 적나라한 반면 우리의 인생을 닮아있다. 술중에 달콤-쌉싸름한 인생을 닮은 술은 단연 소주가 아닐까? 쓴 맛 투성이인 것 같지만, 어떤 날은 정말 단 맛이 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단 맛이 날때가 언제나 기분 좋은 때는 아니다. 아직 20대인 내가 느끼기에도 소주란 녀석은 정말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술이 무서운 달이 돌아왔다. 하긴 불황이다, 뭐다 해서 주위에서도 이런 말이 무색해지기도 하고 나 역시 술을 마시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술을 좋아한다는 말도 점점 옛말이 되어가긴 하지만, 역시 12월에 상대적으로 술자리가 많은 건 틀림없지 않을까.

술은 처음 배울 때가 중요하다는 말은 절대로 옳은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아버지나 어른들이 주시는 술 한두잔 정도 밖에 마시지 못했던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이 소주란 녀석은 너무나 썼다. 결국 나는 소주를 혀에도 닿지 않도록 목구멍으로 털어넣는 방법으로 이 녀석을 상대했다. 선배들이 말했다.
"얘 소주 잘 마시네?"
하지만, 내 독특한 술버릇 덕에 내 속은 더 망가졌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주의 단맛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술을 털어넣는 버릇이란 좀처럼 버리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냈었다.

소주의 도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하더라. 여느때처럼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넣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너도 술을 목구멍에 털어넣냐?"
친구는 갑자기 희한한 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다. 그날은 내내 소주를 입안에 머금고 혀로 굴려보다가 삼켰다. 쓴맛은 더했지만, 뒤끝은 더 편한 것도 같다.

지금까지 나는 가급적이면 삶의 쓰디씀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견딜 수 밖에 없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억지로 목구멍에 털어넣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고통과 쓰디씀과 대면해서 맞서 견뎌보는 것도 필요하고 질게 뻔한 게임에 기꺼이 몸을 던져보는 것도 자신을 위해 좋았을 텐데, 그런 면에서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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