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조선일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1.23 최근의 잡생각 세가지 중 #2 4
  2. 2006.07.15 무엇인가를 비판하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블로그에도 가뭄에 콩나듯 정치 이야기를 쓰곤 한다.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모른다. 내가 정치 이야기를 끼적이는 경우는 '아.. 저 인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치가 떨리거나, 무엇인가를 배울 때가 있을 경우(대부분 타산지석이니 문제지만), 두가지인 것 같다.

올 연말이 되면 온 동네가 정치 이야기로 지겹게 시끄러울 테니, 연초에 미리 화풀이하고 그때 잠잠하련다.

#2.1
예전 대학생 시절에 지극히 사적인 용무로 경복궁역 근처 조선일보의 한 사무실을 몇 번 드나든 적이 있다.[각주:1] 그 몇 번 중에 한 번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대부분이 윈도우 쪽으로 다가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는 행렬을 바라보면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허허,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제 빨갱이 세상이 되겠구먼...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정말 충격적이어서 조금의 부풀림도 없이 똑똑히 기억하는 두마디다. 몇 번 언급했다시피 난 그때나 지금이나 노무현 지지자는 아니지만, 이왕 대통령이 된 마당에 국가를 위해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머리 허옇게 센 어르신들은 대통령이 청와대에 채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노무현 탓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기왕이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응원하는 평소 성향처럼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면서 마음 속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을 편들었다. 그때 이미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이딴 식으로 나올 줄 알았지만, 정말 이딴 식으로까지 할 줄은 몰랐다.

#2.2
백년 가는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누구의 말이 무색하게 열린우리당이 창당한지 몇년이나 지났다고 만약의 경우 세갈래로 찢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코미디도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계파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포부는 어디로 갔는지 위기가 닥치자 사수파니 김근태 계열이니 정동영 계열이니 갈기 갈기 찢어질 판이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지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 문을 두드리고 있단다. 몇년 전 열린우리당은 무엇인가 다를 거라는 어떤 이들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었지만 맞지 않기를 바랬던 예감이었기에 누구에게 자랑할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정치인이 하는 말은 누가 하더라도 한두 수 쯤 새겨들으련다. 이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수단이 급조된다면 결과 역시 좋을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2.3
어떤 블로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업적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타파, 참 중요하다. 그런데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꼭 무능함을 증명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꼭 경제나 부동산 정책에서의 무능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분야에서도 충분히 무능한 듯 보이지만, 이전 정권들에서의 누적된 문제들도 없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치 문제, 언론 문제 등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철학을 모르겠다. 대통령의 Think Tank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삼국지에서 제갈 공명이 유비에게 방통은 일개 마을, 또는 군이나 다스리고 앉았을 수준의 인재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반대의 상황으로 정말 될 줄 몰랐던, 그래서 그런건지 정말 준비 안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맞이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훗날을 위해 이런 학습효과가 필요한지도.
  1.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자면 조선일보를 위하거나 조선일보에 득이 되는 용무는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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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신문을 보는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거의 안보고 살지만 좀 어린 시절, 거의 몇 달 동안 여러 신문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동시에 볼 기회가 있었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일이었지만, 원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기사를 십수 종류의 신문을 통해 읽을 수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아보자 하는 마음에 여러 신문들을 훑었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안좋게 말하는 이들의 의견만 보고 들은지라 조선일보에 단순한 거부감 정도만 있었다. 말하자면 나도 단지 맹목적으로 조선일보가 싫었던 철부지 안티 중 하나였다. 그러던 나에게 몇달의 신문 읽기 중에 아직도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는 건,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의 각지의 1면 톱기사를 비교해봐도 거의 단어하나 틀리지 않는 분명 똑같은 사건들이 사설면에만 가면 서로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각 신문의 기사들만 읽어보고,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내 생각을 정리한 다음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의 사설을 읽었다. 대체적으로 내 생각은 조선일보보다는 한겨레 신문 쪽에 가까웠다. 그런 일을 한동안 하다가, 결국 나는 조선일보는 읽는 것을 관두었다. '신문을 통해 세상을 좀더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 철없는 목표는 실패로 끝났다. '신문은 사람들을 세뇌하기 딱 좋은 도구이다.'라는 결론만 얻게 되었다.

어제 정말 멋진 분의 글을 읽게 되었다. '조선일보 헤까닥 술이 덜 깬겨?'라는 글인데,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자체가 맘에 들거나 비판 내용에 탄복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태도와 자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무엇인가를 비판하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조선일보를 싫어하고 비판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조선일보에 관심(?)이 있는 분의 블로그를 본 것은 이번이 두번 째이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블로그도 많겠지만, 내가 본 한에서.

라디오에서 순진[각주:1]과 순수[각주:2]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유리컵이 있는데, 유리컵이 텅 비어 있다면 순진한 것이고, 유리컵 안에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차 있다면 순수한 것이라고.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것도 이 순진과 순수의 원리와 같지 않을까. 대상을 혐오하고 접근 자체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비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무엇 혹은 누군가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혹은 그사람)을 비판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태도는 비판이 아니라 비난, 혹은 단순히 개인적인 혐오일 뿐이다. 그런 비난과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 해서는 안되며, 다른 이들이 결코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우연히 본 글에서 좋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1.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됨. [본문으로]
  2. 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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