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고 한국의 '오심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심에게 이단 옆차기 한 줄로... ㅇ.ㅇ;;
북한은 여자 축구팀도 전투적이구나...
[060728금 17:43 추가]
다른 기사들이나 댓글 보니 그냥 발로 찬 거라던데, 어찌 된 일일까...
또 낚시성 기사?
참고로, 1935년 이래 도르트문트에서 치러진 독일의 전적이 무패라는 기록 역시 깨졌다(독일의 비장의 무기 도르트문트).
이번 대회 이탈리아의 경기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2002년에 한국팀은 저런 팀을 상대로 도대체 어떻게 두 골을 우겨넣은거야? 공격적인 수비를 해서 미드필드나 수비 진영에 빈 공간이 생길 법해도 저 정도인데, 아무튼 2002년 월드컵때의 한국팀은 대단했다.
2경기 프랑스 1 : 0 포르투갈
2006년 07월 06일 목요일 04:00 Munich, FIFA 월드컵 경기장
전반 33분 앙리가 얻어낸 패널티 킥을 지네딘 지단이 여유있게 골인시켜 1:0으로 프랑스가 승리했다.
8강 잉글랜드전의 크리스티앙 호나우두가 심판에게 루니의 반칙을 일러바쳤다는 이야기때문에 오늘 경기에서는 C.호나우두가 공만 잡으면 관중들이 야유를 보냈다. 비난의 표적이 될 뻔한 루니로서는 벤치를 향한 호나우두의 윙크 하나가 천만다행이었겠다.
프랑스는 조 예선에서 졸전을 치른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지, 상당한 투지를 보여주었다. 1:0으로 앞서나가면서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수비해야 할때면 거의 모든 선수가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밤 11:50분에 시작하는 경기는 모두 보았건만, 귀차니즘으로 인해 포스팅 못하다가 단평이라도 정리해 두려고 끄적인다.
1경기 독일 2 : 0스웨덴
2006년 06월 25일 일요일 00:00 Munich, FIFA 월드컵 경기장
패널티 킥을 성공시킨 토티의 골 세레모니. 얼마 전에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7경기 브라질 3 : 0 가나
2006년 06월 28일 수요일 00:00 Dortmund, FIFA 월드컵 경기장
전반 5분 호나우두가 넣은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주눅이 들지 않은 가나의 선전.
2:0의 상황에서 공격수 기안마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추격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결국 한 골을 더 허용하고 말았지만, 경기 내내 보여준 강팀에 대한 자신만만한 공세적 플레이는 박수를 받을만 했다.
호나우두는 오늘의 골로 FIFA 월드컵 본선 통산 최다골 1위에 오르게 되었다. 현재 15골.
초등학생이던 나는 나폴레옹과 한니발에 매료되어 있었다.
어느 교실의 뒤쪽에나 있을 법한 책장에는 문고판 나폴레옹 전기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있었는데, 나는 그 두 권을 읽고 또 읽었다. 어린 시절에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두 인물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두 명 모두 알프스를 넘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까? 하지만, 알프스를 넘은 또 한 명의 위인인 카이사르는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 역시 그러하다. 그가 정치적으로는 천재였지만 군사적으로는 그리 유능한 장수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나중에 자라서 읽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에 그런 사실을 알았을 리는 없고, 사실은 먼저 좋아하게 된 한니발의 적국인 로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적인 내 호불호(好不好)적 현실 감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아서 항상 결정적인 순간 한니발을 괴롭히는 로마와, 나폴레옹을 방해하는 영국, 프러시아와 러시아에 분개했다. 저 나라들만 없었으면 저 두 인물이 꿈을 이루었을텐데. 초등학생 시절의 나만의 세계관에선 프랑스, 카르타고 같은 나라들이 우호국이었고 로마(이탈리아), 영국, 프러시아(독일), 러시아같은 나라들은 적국이었다. 얼마나 심했던지 수업 시간에라도 그 나라들이 나올라치면, 항상 그 두 인물과 연관시켜 생각하곤 했고, 프랑스나 카르타고는 무조건 좋은 나라인 줄 알았다.
더이상 초등학생은 아닌 지금의 내가 여전히 그 두 인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이유는 서로가 자신들의 생사에 더해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 전쟁에서 나타내는 압도적인 자신감과 천재성,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항상 200% 이상 발휘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외적인 조건들에 막혀 결국은 꿈을 이루지 못하는 두 고독한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과 같은 맹목적인 선호는 아니다.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두 인물을 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 정도는 느끼게 되었고, 그들의 상대방 역시 그들의 존망을 걸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프랑스나 카르타고라고 해서 선하기만 한 나라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탈리아, 영국, 독일, 러시아같은 나라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기만 한 나라는 아니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있다.
따라서 나는 두 인물을 좋아하지만, 음악은 '프렌치 팝'이나 '샹송'이 아니라 영국의 'Brit Pop'이나 'Radiohead'의 노래를 좋아하고,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룬 '로마인 이야기'를 읽곤 한다. 러시아에서 어떻게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있으며, 요즈음 독일 월드컵을 보면서 독일의 예상 밖 놀라운 실력에 혀를 내두른다.
며칠 전 있었던 대한민국:스위스전을 보고 난 후의 일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분들의 세계관과 현실 감각에 조금 안타까움을 느낀다.
"스위스는 이제부터 가상 적국이다."
"너네는 중립국이 아니라 왕따였구나. 그러니까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시계나 뚝딱 만들고 있지."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크라이나의 완승입니다!... 원흉인 스위스, 이제 응징을 받는건가요?"
스위스 축구팀이 블래터 회장에게 판정을 유리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지, 심판에게 돈을 건넸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블래터 회장이 판정을 유리하게 하도록 지시했는지, 아니면 회장에 대한 심판들의 과잉 충성이었는지 역시(심증은 많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아니, 설령 그러했다 하더라도 스위스 축구팀과 블래터 회장이 악하면 스위스 전 국민이 악인인가?
우크라이나가 완승을 해서, 이제 더이상 정의가 왜곡되는 일은 없어질 것인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왜 정치, 경제, 축구 어느 분야에서나 욕을 해댈 마녀가 필요한 건가?
축구 경기는 축구 경기일 뿐이다. 스위스에게 져서 그것도 판정 논란으로 져서 화가 나지만, 한국전에서의 스위스팀은 그들에게 굴러온 예상치 못한 떡을 꿀꺽했을 뿐이다. 크로아티아의 한 선수가 한 경기에 두 번 경고를 받고서도 시치미 떼고 뛰다가 세번 째에서야 퇴장한 것처럼. 축구에서의 스위스팀과 시계를 잘 만드는 중립국으로서의 스위스는 같은 미움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일본 축구가 매번 한국 축구에 깨진다고 해서 일본 정치가들이 "잘못했습니다. 독도 망언 이제 안할께요."라고 결코 말할리 없는 것처럼. 스위스팀이 미워 우크라이나 팀을 응원할 수 있지만, 스위스가 가상 적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니발을 좋아한다고 해서 로마를 나의 적국으로 여기는 초등학생이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