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 영화가 개봉한다고 할 때부터 단지 라디오가 들어가는 제목과 최정윤이 나온다는 사실에(...>.<) 보고싶다고 생각했었지만, sparkstar님의 리뷰에 결정적으로 꽂혀버려 관람했던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참 웃으면서, 찡하게 봤는데 주말에 TV에서 다시 해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여동생과 다시 한 번 봤습니다. 아무래도 영화관보다 작은 화면이다보니 생생함은 덜했지만 아, 그래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자기가 찍고 싶은 영화를 언제나 콕콕 찝어 찍을 수 있는지 그 바닥을 잘 몰라서 모르겠지만, 제가 봤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이 감독은 스러져 가는 것들, 몰락해 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황산벌에서는 백제의 몰락을 그렸고, 왕의 남자에서는 시대적으로는 연산군의 몰락과 우리 시대와 관련해서는 전통 문화의 상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라디오스타에서는 제목 그대로 오디오의 몰락과 특히 락 및 밴드의 쇠퇴를 아쉬워하는 듯 하네요.
중간중간에 삽입된 정말 옛날 노래같지 않은 세련된 노래인 비와 당신을 들으며, 그리고 영화 내내 "안녕하세요. 88년도 가수왕 최곤입니다"로 자신을 소개하는 박중훈을 보면서 정말 88년도 가수왕이 최곤이었나? 찾아봤더니 아니더군요. ㅡㅡ;; 제가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상당히 많이 들었던지라 88년도 가수왕의 노래 정도면 한 번정도는 들어봤어야 정상인데 전혀 기억에 없었거든요. 88년에는 주현미씨가 신사동 그 사람 이라는 노래로 가수왕을 차지했다고 합니다(네이버 지식in 참고). 최곤이 방송 중에 말하던 경쟁자들, 이승철, 이남이, 박남정씨 등에 관한 내용은 사실이더라구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사람보다야 겉으로는 물론 나아보이겠지만, 한 단계 자신의 목표를 이룬 사람은 그 성공때문에 치루어야 할 대가가 분명 존재합니다. 이건 로마인 이야기 2권의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는 문장이지요. 최곤(박중훈)은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지만 88년도 한 번의 가수왕의 희열을 잊지 못하는, 그리고 밴드를 하던 자신을 꼬셔 가수의 길로 이끈 오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뒤치닥거리를 아무 거리낌없이 받는 철부지입니다. 대마초 사건에 걸려들어 카페에서 스테이지나 채우는 신세지만 자신이 아직도 스타라고 믿고,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삽니다. 그런 최곤은 카페에서의 폭행건 때문에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되고 합의금을 구하기 위한 민수의 노력 덕에 강원도 영월에서 12시 프로 DJ를 맡게 됩니다. 물론 자신이 아직 스타 가수라고 생각하는 최곤이 지방에서 DJ나 하는걸 달가워할 리 없죠. 여기에 원주에서 방송 사고를 치고 잠시 쫓겨내려온 여PD 강석영(최정윤)이 가세하면서 콩가루 방송(?)이 시작됩니다.
선곡표 무시, 원고 무시의 대책 없는 DJ에 매니저 민수만 신났을 뿐, PD도 지국장도 포기한 방송 진행도 모자라 최곤은 급기야 다방 커피까지 방송 부스 안으로 배달시키지만, 졸지에 즉석 게스트가 된 커피 배달부 김양의 엄마에게 띠우는 사연이 영월 주민들의 눈물을 적시고 거기에 최곤의 꾸밈없고 천방지축인 진행이 신선하다는 호응을 얻으면서 방송은 인기 폭발, 급기야는 서울에서 전국 방송을 앞두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미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는 상업주의의 마수는 최곤에게도 예외없이 손을 뻗치기 시작합니다. 최곤과 민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런지...
솔직히 영화는 관심을 확 끌만한 러브 스토리나 갈등도 없고 대충 보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솔직히 말해 어떨 때 보면 얄미운 다큰 철부지 최곤역을 자연스레 연기한 박중훈과 오버스런 연기로 웃음을 자아내는 안성기의 연기 빼고는 볼 게 없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유난히 제 마음을 끄는건 제가 아마 라디오 전성 시대의 끄트머리에 학생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겁니다. TV보다 공부하면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더 친숙해 밤 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울고 웃었던, 정말 쟁쟁한 스타들은 TV만큼이나 라디오에 앞다퉈 출연해서 더 진솔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해야 뜬다고 생각했던 시대이지요. 오디오가 비디오에 비해 경쟁력이 그다지 뒤지지 않았습니다.
민수가 천문대에서 최곤에게 하는 명대사,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라는 대사는 참 멋질 지 몰라도 이 영화를 버디 영화가 아니라 옛것의 몰락을 아쉬워하는 영화로 본 제게는 그다지 남지 않는 대사입니다. 전 오히려 민수가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최곤을 위해서울로 떠났던 민수가 비오는 날 양복을 빼입고 우산을 기타 삼아
띵가딩가띵띠리리리링~ 한번 보고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라고 신중현의 미인을 부르며 나타나죠. 그리고는 자신의 백을 최곤에게 던집니다. 깜짝놀란 최곤은 엉겁결에 백을 잡기 위해 비속으로 뛰어들다가는 당했다 싶었는지 다시 백을 휙 팽개쳐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성기는 자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최곤에게 우산을 씌워주죠. 지금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둘 사이의 화해와 미래를 이렇게 단 몇 컷으로 깔끔하면서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둘은 다시 가수로서의 부활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내디딜 겁니다. 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비가 내리는 질퍽한 세상이라 해도 말이죠. 하지만 저는 이 마지막 컷이 완전한 해피엔딩이라던 친구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둘이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스타의 자리로 돌아가기는 힘들겁니다. 이미 그들의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래도 그 비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둘의 엔딩컷을 보면서 역시 희망이란 가장 달콤한 마약과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만의 별점 ★★★★☆
배우로서의 박중훈과 안성기, 극중 인물로서의 최곤과 민수의 유사성에 관한 내용은 sparkstar님의 리뷰를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라디오스타에 관한 리뷰를 몇 개 읽어본 중에 이처럼 날카로운 지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잠깐 영화에 너무 빠져 산 것 같아서 조금 자제하려고 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보는 시간이 아까웠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셋이 함께 길을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한 명 있다는 말처럼, 명작이든 범작이든, 심지어 졸작이라도 되새겨 볼만한 점들은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책도 물론 마찬가지이고,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영화를 보면 그런 되새김의 시간 없이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긴 듯한 더부룩한 느낌이 난다. 차라리 안보느니만 못하다는 결론. 그러던 중 이번에는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제목은 '그해 여름', 예전에 좋아했던 강타의 '그해 여름'이란 곡이 생각나서 이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런 경사가!
나는 슬픈 사랑을 오랜 동안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굉장히 진지하게 보는 편이다. 동감, 클래식... 이런 류의 영화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끝없이 변주되는데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한 사람, 한사람의 슬픈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객관적이려 노력해도 냉정하게 감상을 적기가 쉽지가 않다.
'번지 점프를 하다'나 '달콤한 인생'을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병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수애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싫어할 이유는 없었지만 왜 예쁘다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랬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좋은 모습을 보려고 노력하면서 봤다.
모든 젊은이들이 박정희 정권하의 시국을 논하고 미국인이 최초로 달에 착륙한 1969년, 시국에 관심도 없고 매일 술만 퍼먹는 찌질한 대학생 석영은 친구의 강권으로 수내리라는 마을에 농활을 가게 된다. 모기때문에 한숨도 못잔 다음날 아침, 우연히 노랫 소리에 이끌려 정인을 만나게 되고 까칠하면서도 순진한 그녀에게 점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인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농활 기간동안 정인과의 풋풋한 추억을 쌓아가며 그녀에게 빠져든 석영은 그녀를 데리고 서울에 올라오지만, 암울한 시대 상황이 둘을 행복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영화는 소설 '소나기'와 영화 '동감'과 '클래식'의 요소들을 섞어놓은 듯 하달까. 초반에 코믹스럽게 관객들의 주의를 잡아놓고 시간이 전개될수록 가슴 아프게 하는 요즘 멜로의 공식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병헌(윤석영 역)을 좋아하는 여자 관객이라면, 아니 남자 관객이라도 아주 자지러질 정도로 이병헌의 연기는 괜찮았고, 또 망가지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수애(서정인 역) 역시 캐릭터 설정상 망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재미있고 예쁘게 보았다. 특히, 그녀가 은근히 중독성 있는 노래.
개나리 고오~개는 눈물의 고개
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정말 쓰러졌다(이 노래가 얼마나 중독성이 있는지는 영화를 보다보면 안다). 뿐만 아니라 오달수(석영의 친구), 정석용(마을 아저씨) 등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 중간 중간 배꼽을 잡게 한다. 영화의 끝 부분은 수애의 나레이션이 아니라, 조금 상투적이더라도 편지 같은 것을 이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 감정이 고조되어 절정에 달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눈물이 찔금 날 정도였는데 말미 부분 때문에 웬지 다시 맥없이 늘어지는 듯한 느낌.
남북 분단과 군사 정권이라는 시대 상황이 얼마나 슬픈 비극들을 만들어냈을까. 비록 '그해 여름'의 이야기는 영화 스토리지만 웬지 있음직하다. 서울에서의 석영의 찌질한 행동을 보면서 화가 나려고 했다가도, 과연 어떤 편이 둘을 위해 더 나았을까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70년대에 바침'이라는 곡의 가사처럼, 무엇이 옳았었고 틀렸었는지 그때는 그리 쉽지 않았으리라.
너무 예쁜 시골을 담은 영상과 주, 조연을 막론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특히 이병헌의 망가지는 연기는 다시 말하건데, 정말 일품이었다. 이병헌은 드라마보다 영화에서의 모습이 더 낫다.
◆ 영화에서 가장 예뻤던 장면은 읍내 시장길을 알려달라는 핑계로 버스를 타고 나온 석영과 정인이 레코드점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려고 유리창에 귀를 대고 듣던 장면. 눈을 감고 듣던 수애가 눈을 뜨면 이병헌은 눈을 감아버리는 쌍팔년도 장난이지만, 그렇게 예뻐 보일수가 없었다.
◆ 마을 사람들이 미국인이 달에 착륙하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신기해하던 날 석영과 정인이 앉아있던 연꽃 연못도 정말 눈부시게 예쁜 장면이었다. 어디서 찍은 걸까, 정말 한 번 가보고 싶다.
얼마전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다시 보면서 마음을 정말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 길지 않은 몇 년 동안 나도 모르게 자극적이고 현란한 영상과 전개에 길들여졌나보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보면서도 생각을 붙잡아 두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철없던 시절에 비해 생각이 너무 많아진 건지도 모른다.
홍콩, 신문 편집장인 차우(양조위) 부부와 비서일을 하고 있는 리첸(장만옥) 부부는 같은 날 이웃으로 이사오게 된다. 둘의 배우자는 출장이나 다른 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매우 잦다. 집앞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앞의 좁디좁은 복도를 오르내리면서 짧은 고갯짓으로 인사하던 그들. 어느날 그들은 서로의 배우자의 넥타이, 핸드백이 상대방에게도 있음을 발견하고, 동병상련일까?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간다. 차우는 무협 소설을 쓰고 있다면서 리첸에게 자신의 소설을 봐달라고 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집주인과 이웃들의 눈치를 피해 방을 하나 구해 무협 소설을 쓰는 차우와, 곁에 앉아 그것을 읽는 리첸.
둘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소설을 매개로 만나며, 식사를 하며 리첸은 차우를 남편인 양 남편의 애인에 대해 질문하는 예행연습을 하기도 하고, 차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울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리첸: I didn't think you'd fall in love with me.
차우: I didn't either.
I was only curious to know how it started.
Now I know... Feeling can creep up just like that.
...
Will you do me one favor?
I want to be pepared...
날 사랑했다는 말인가요?
나도 모르게...
처음엔 그런 감정이 아니었소.
조금씩 조금씩, 당신을 느끼고 있었소.
...
부탁이 있어요.
미리 이별 연습을 해두죠...
둘의 관계에 대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차우는 리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벽에 머리를 마주 기대며, 일본에 있는 리첸의 남편이 리첸을 위해 라디오에 신청한 화양연화를 듣는 두 사람. 벽만 없었더라면 서로의 머리를 기대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것을... 딱 벽 만큼의 거리가 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거리다. 차우는 그녀가 함께 떠나주기를, 리첸 역시 표가 한 장 더 있는지 묻고 싶지만, 그저 허공에 말하듯 중얼거릴 뿐이다.
차우: In the old days,
If someone had a secret they didn't want to share...
You know what they did?
친구: Have no idea.
차우: They went up a mountain, found a tree...
Carved a hole in it...
And whispered the secret in to the hole.
Then they covered it with mud.
And leave the secret there forever.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알아?
알게 뭐야.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곤...
진흙으로 봉했대...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그렇게 차우와 리첸은 헤어진다.
1966년 어수선한 홍콩[각주:1], 리첸은 예전 그들이 살았던 집을 찾아간다. 집주인은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가려고 하고 리첸은 차우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듯 창가에 서서 눈물을 보이다가는, 집주인에게 집세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그 집을 찾은 차우는 자신의 셋방에 살고 있는 낯선 남자로부터 이전 집주인은 이사갔으며, 옆집에는 아이가 있는 한 여인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차우는 옆집 문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인연은 영원히 어긋난다.
1966년 프랑스의 드골이 캄보디아를 방문하던 때, 리첸은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는다. 사원의 구멍에 무엇인가를 속삭이는 리첸, 차마 다른이에게는 말하지 못할 무슨 비밀을 속삭였을까? 앙코르와트 사원을 떠나는 리첸, 그가 속삭이던 구멍은 풀로 막혀있다.
He remebers those vanished years.
As though looking through a dusty window pane,
the past is something he could see, but not touch.
And everything he sees is blurred and ingdistict.
그는 지나간 날들을 회상한다.
뿌옇게 먼지 낀 창을 통해 본 것처럼,
과거를 볼 수는 있겠지만, 만질 수는 없다.
모든 것이 희미하고 불투명하게만 보였다.
예전에는 단지 둘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였던 영화, 왕가위 감독이 2000년 그 영화를 만들 때 그는 97년의 홍콩의 중국 반환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외롭고 쓸쓸하던 리첸의 일상에 가장 화려한 시절을 가져다준 건 차우이지만, 그녀는 곁에 있지도 않은 바람난 남편이 신청해준 '화양연화'라는 곡을 들어야 하는, 결국 남편을 떠날 수 없는 결혼에 매인 처지다. 화양연화의 시절을 누리던 홍콩이지만,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다. 감독의 이런 의도가 들어있지 않았다면, 영화 말미에 홍콩인의 불안함을 넌지시 암시할 이유도, 드골의 캄보디아 방문 영상을 넣을 이유도 없다. 화려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미래... 선이 곱고 정적인, 다시 말해 우아한 영상이지만 과도하게 어두운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 서로의 사이에 놓인 벽에 머리를 기대며 화양연화를 듣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장만옥이 아름답다거나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그것도 이 영화의 단 한 컷. 윗 장면과 더불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말 최고였던 홍콩 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영화.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이며 명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한다고 해서 리메이크작이지만 관심있게 기다렸었다. 명배우라고 해서 이름값만 높은 외모 조금 되는 배우들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빌리 코스티건 역, 진영인의 양조위와 같은 역할),
맷 데이먼(콜린 설리반 역, 유건명의 유덕화와 같은 역할),
잭 니콜슨(프랭크 코스텔로 역, 보스 한침의 증지위와 같은 역할),
마틴 쉰(퀸넌 역, 황국장의 황추생과 같은 역할),
알렉 볼드윈(엘러비 역) 등
한 연기 한다는 배우들이다. 기대 할 만도 했다.
말하면,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다고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영화 자체는 무간도만 못했다. 작게는 정말로 평균 1분에 한번 꼴은 나오는 'fucking'이라는 욕이 거슬리는 것에서부터 무간도에서 정말 일품이었던 심리 묘사와 치밀한 갈등 전개가 이 영화에서는 부족하다. 정말 동양과 서양의 차이인 것일까? 이 영화에서는 그냥 모든 것을 쉽게쉽게 보여준다. 게다가 속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듯한 조금은 어이없는 결말까지.
무간도는 죽지않고 영원히 고통이 이어지는 지옥인 '무간지옥'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만큼 3부작을 통틀어 주된 인물은 아무래도 유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편만 놓고 보면 진영인이라고 할 수 있겠고, 각 편마다 진영인, 한침등 몇몇 인물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며 비중있게 다루기도 하지만, 3편 전체에 걸쳐 내부의 자신의 편마저 죽이고 자신의 정체를 감추며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숨기며 고통받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고뇌끝에 점점 미쳐가는 유덕화의 모습이 제목에 가장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디파티드의 키맨은 아무래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아일랜드인 조직의 보스에게 접근해 신임을 얻어가지만, 차츰 온갖 범죄와 살인에까지 가담해야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신경 안정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찰을 맡은 그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그 외의 캐릭터들은 솔직히 말해 잘 그려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맷 데이먼의 연기는 조금 밋밋했고 잭 니콜슨은 오버스럽기만 할 뿐, 예전에 보여주던 광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마틴 쉰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듯, 배나온 몸으로 도망하던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였을까? 그보다는 치밀하고 거미줄처럼 얽힌 퍼즐을 맞추듯 한 부분을 감추었다가 때로는 시간을 거슬러 맞춰 보여주기도 하던 원 3부작을 단 한 편에 시간순으로 정렬하기 바빴던 데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대부분 스토리를 나열하기에 급급했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은 있다. 미국 사회에서의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범죄 조직의 대립, 그리고 무간도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돈'에 관한 인물들의 집착은 다민족,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의 모습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무간도의 두 주인공이 의리와 출세라는 지극히 동양적이고 이상적인 가치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디파티드는 좀더 까놓고 솔직히 이야기한달까.
결론은 무간도를 머리에 담고 보실 거라면 보시지 말 것을 권한다. 하지만 무간도는 무간도, 미국 영화는 미국 영화로 보실 자신이 있다면 추천.
만화책과 애니로 인기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영화, 만화책이나 애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보았다. 아,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인 대학생 야가미 라이토(후지와라 타츠야)가 원래는 천재 고등학생이었다는 것, 달랑 하나 빼고는.
만화책이나 애니를 영화화한 것 치고 괜찮은 영화 없다지만,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선 아주 형편없지는 않았던 듯 싶다. 만화나 애니를 보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보는 도중 중간중간 끊기고 비약되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긴 스토리를 짧은 시간에 담아내려니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를 본받아 법관이 되려는 천재 모범생 라이토는 죄를 짓고도 법망을 피해 죄값을 치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있음을 알고 분노한다. 그런 그에게 비오던 어느날 우연히 Death Note, 말하자면 살생부가 주어진다. 죽이고 싶은 자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내고, 그 노트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이름이 적힌 자는 죽게 된다는 것. 라이토는 그 노트를 이용해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범죄자들을 처벌한다. 또한 그 노트 사용법에는 그 이외에도 여러가지 옵션(?)이 적혀있고 이 여러가지 옵션들이 가져오는 예기치 못한 결과들 때문에 일본 경시청과 FBI 등 수많은 수시기관들이 단서도 잡지 못하던 중, 역시 천재 탐정인 L(류자키, 마츠야마 켄이치)의 활약으로 단서를 하나 하나 잡아가게 되고, 라이토와 L은 생명을 건 두뇌싸움을 벌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심판자, '키라'(키라, 키라 할 때마다 자꾸 건담 시드가 생각나는 '_'a)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진다. 키라가 정의의 심판자라는 쪽과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인명을 살상하는 흉악범이라는 쪽. 키라의 정체를 밝히려는 L과 수사기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키라를 흉악범이라고 단정하자 라이토는 내심 반발한다. 하지만 혐의를 벗기 위해 점점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이는 라이토를 보며 Death Note의 원주인이면서 라이토를 따라다니는 사신 류크는 결국 사신보다 더 사신답다는 말을 한다.
선량하고 두뇌가 뛰어난 한 인간에게 정의를 수호하고 죄를 심판할 권한, 말하자면 신의 권한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면 이 세상의 악은 사라질 수 있을까? 집단은 분명 불가능하고 생각한다. 니부어의 '도덕적인 인간, 비도덕적인 집단'이라는 주장처럼 집단에게 권력이 주어질 때 어떻게 절대적으로 부패하는지는 더 실험해볼 필요도 없음을 역사가 증명해준다. 중세 기독교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희생시켰는지, 타락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백성을 위하여 정권을 잡았다는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얼마나 비윤리적인 범죄들을 저지르는지.
하지만, 그 권력이 절대적으로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면 그 권력은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어쨋건 나는 불완전한 인간의 인간성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단순한 실수로 인한 것은 제외하더라도, 결국은 라이토와 같은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 영화 초반부에 라이토가 구하게 되는 여자 아이돌 스타, 버스 광고에 요란하게 붙어있기까지 하고 중간에 자주 나오길래 조금 눈에 거슬렸는데, 역시 마지막에 속편의 암시를 위한 것이었다.
◆ 영화의 결말 부분에 처음으로 라이토를 만난 L이 콘소메를 먹고 있는 장면, L은 라이토의 속임수를 눈치 챈 것일까? 아니면 라이토와 L의 취향이 같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올해에 본 영화 중에 가장 배꼽을 잡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순진하고 주변머리 없으면서도 깐깐하고 고집은 있는 박용우(황대우)와 세련되보이지만 실은 푼수에 살벌하기까지 한 최강희(이미나, 실은 이미자)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는 조연 조은지(백장미)까지,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은 스토리이지만 캐릭터들은 생동감있고 대사를 뱉어낼 때마다 뒤로 넘어가는 그런 영화였다. 갈등 곡선의 아슬아슬한 오르내림도 보는 시간 대부분 몰입하게 만들고, 낯뜨거운 대사들도 가끔 숨어있지만 비슷한 류의 미국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급하고 지저분할 정도까지 선을 넘지는 않는다.
대한 2, 30대의 반응은 너무나 뜨거운 것 같아서 찬사는 이쯤 해두자. 끝날 때까지 정신 없이 웃고 난 후에 되새기다 보니 감독이 관객에 대한 비꼼을 숨겨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죄와 벌 몰라요? 토스토예프스키?
도스트인지, 토스트인지 그거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저 장면을 보면서 깔깔대며 웃는 관객 중에 솔직히, '죄와 벌'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 얼마나 될까? 내 경우엔 수능이 끝난 뒤 딱 한 번 읽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 가장 힘들었던 책 중 하나인 것 같다. 처음에 주인공이 노파를 죽일 때까지는 그런대로 참고 읽었으나, 점점 내면 묘사가 길어지니 마치 행간의 최면에 걸린 듯 정말 힘들었다. 솔직히 줄거리만 대충 기억나지 명문장 하나 기억 안난다.
2. 혈액형에 따른 성격 구분
미나가 별자리 이야기를 하자 대우의 눈치를 살피는 대우의 친구, 하지만 미나는 별자리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무사히 넘어가는 듯 싶다. 그런데 다시 자신은 AB형이라며 혈액형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자 발끈한 대우.
그게 뭐가 과학적이에요? 죄다 헛소리지!
헛소리요?
백인들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우생학에서 처음 출발한 게 바로 혈액형 이론입니다! 독일에 유학한 일본 사람 하나가 그걸 처음 들여왔고, 정작 독일 사람들은 그 이론을 폐기했는데 나중에 일본 작가 하나가 지 주위 사람 2,300백명 대상으로 조사해서 책 하나 냈는데 그걸 계속 우려먹고 있는 거라구요! 전세계적으로 혈액형 믿고 있는 나라가 일본하고 한국밖에 없단 말입니다.
나 역시 혈액형 이야기를 맹신하다시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는 짜증나지만, 겉으로는 그냥 별 반응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 상당수는 혈액형 성격학을 맹신하고 혈액형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겠지. 맹신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처음 만나도 혈액형으로 상대방을 재단하려 드는 이들 보면 정말이지 친하고 싶지 않다.
3. 거꾸로 걸려있는 몬드리안의 그림
어느 집에나 웬지 거실에 하나 걸어놓으면 있어 보일 것 같은 그림. 대우가 바꿔달 때까지 저게 거꾸로 걸려있는 줄 나도 몰랐다. 아니, 그 그림에 신경도 안썼다는 게 더 정확하지만 ;;
그밖에도 영화 내내 관객들을 찔리게 할 만한 대사와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너무나 교묘해고 코믹해서 대부분은 웃느라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만, 그리고 깨닫더라도 다음 스토리에 몰입해서 잊을 정도로만. 게다가 결말마저 관객들이 은근히 기대하는 대로는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대우의 모습은 천연 기념물에 가깝고, 미나의 모습이 상당수의 요즘 젊은이, 우리들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고추장남, 된장녀 논란에서처럼 옆에 두꺼운 책 하나 끼고 외모와 돈으로만 자신을 치장할 줄 알지 머리는 채우려 하지 않는... 결론은, 항상 공부하자. 나 역시 머리 비었다는 소리는 듣기 싫다. ㅠ.ㅠ
극중 혜영(전지현)이 화가로 등장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영화가 한 폭의 수채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고요. 전지현이 나온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개봉하기도 전부터 악평을 많이 받은 듯 하지만, 과연 이 영화를 한국 관객들을 타겟으로 만들었을까요? 일본이나 중국의 한류 열풍에 편승해볼까 하고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뭐, 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우성과 이성재의 연기는 괜찮았고, 많은 이들이 보지도 않고 욕하던 전지현의 연기는 평가 보류입니다. 이 영화는 지극히 정석적이고 심심한 멜로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만한 감정 과잉의 멜로 영화가 아니라, 홍콩 감독이 만든 영화라 그런지 앞서 말한 것처럼 벽에 걸려 있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감상할 만한 영화입니다. 전 요새 한국을 거의 휩쓸고 있는 감정 과잉이라는 유행이 숨막혀서 이 영화가 오히려 신선하더군요. 이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이란 그저 Ingenue[각주:1]형이면 충분합니다. 물론 Ingenue에도 등급이 있지만요. 이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은 그저 웃을 때 싱긋 웃고, 슬픈 장면에서 눈물 흘리는 역할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 등에서 우는 연기 하나는 일품이었던 전지현이 이 영화에서 딱히 별로였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대사 연기가 필요 없는 또 한가지 이유는 혹여 영화를 볼 예정이신 분들을 위해서... 아무튼 영화는 괜찮게 보았습니다. 암스테르담이니까 네덜란드였던가요? 영상도 멋졌고 음악도 좋았습니다. 특히, 헤이의 '데이지'. 아, 전 왜 그렇게 담담하면서 슬픔을 읊조리는 곡들이 그리 좋을까요?
보면서 남녀간의 사랑이란 얼마나 사람을 쉽게 현혹시키는 감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혜영이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 개울에 빠지는 모습을 본 박의(정우성)은 개울에 떠내려가던 그녀의 가방을 건져내고 그녀를 위해 멋진 나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가방을 놓아둡니다. 그의 얼굴을 모르는 혜영은 감사의 표시로 데이지 꽃이 가득한 수채화를 그려 다리에 놓아두지요. 그 후로 암스테르담에서 전시회를 준비하며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는 일을 하는 혜영에게 매일 데이지 꽃이 배달됩니다. "Flower!"라는 외침만을 남기고요. 그런 그의 앞에 정우(이성재)가 나타나자, 혜영은 그 친절을 베푼 이가 정우였다고 믿어버립니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대입시켜버리는 것이죠. "이 남자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꽃을 배달해주던 그 남자야."라며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말입니다(물론 이성재도 잘생겼으니까 가능하겠죠?).
이런 일은 영화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실생활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특히 인터넷으로 익명의 사람들과 제한적인 소통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 요즘,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채 자신에게 건네는 다정한 채팅이나 글 한마디에 현혹당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요. 온라인 게임은 물론 블로그로도 그럴 수 있겠군요.
역시 사랑이란 감정도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와 같은 비논리와 선택의 문제일까요? '이 물건은 이점이 나에게 필요해서 꼭 사야해'라는 게 아니라, 사고 나서 이 물건이 내 맘에 드는 논리적인 이유를 찾는다는 것처럼요. 요새 주위에 누군가가 곁을 스치기라도 하면 기꺼이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된 사람처럼 구는 이들이 많아서 무난한 멜로 영화를 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헤이의 '데이지' 뮤직비디오 하나만 봐도 영화를 본 거나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그만치 디테일은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아기자기한 드라마를 기대했다가는 실망 많이 했을 듯 싶습니다.
컴퓨터 시계로 지금 새벽 2:27이군요. 지금까지 깨어 있는 이유는 SBS에서 방영해준 어느날 갑자기 3탄 'D-Day'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도 귀차니즘이 만연한 놈이라 과연 영화에 관한 포스팅을 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뭔지는 생각하기가 싫더군요. 여자 재수 기숙학원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영화인데,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 무섭다는 생각도 안들고요. 하지만, 영화를 안좋게 보려다가도 제 고등학교 시절이 오버랩되면서 심하게 공감이 가는 겁니다. 정말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기계였으면...' 하고 바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일본도 심한 듯 하니 제외하고, 외국에서도 입시에 관한 공포 영화가 만들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입시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영화적인 요소와는 관계 없이 심하게 공감하는 빠리소년입니다. 인간이 아닌 듯한 선생님들의 모습, 서로 경쟁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 과장되어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런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인기를 얻는 이유는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D-Day를 보면서 1등일 때는 같은 방의 친구들에게 공책을 빌려주던 은수라는 아이가 나중에 점점 성적이 떨어져, 공책을 빌려본 아이가 추월하게 되자 공책을 돌려달라고 하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예전에 과학고에 다니는 한 학생의 블로그에서도 서로 공책을 빌려주지 않는 자신의 급우들에 대한 글을 본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해가 가는 입장입니다. 30등이 29등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과, 2등이 1등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30등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양상과 치열함이 전혀 다릅니다.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 그 학생을 탓할 것이 아니라, 순진한 아이들을 그렇게 내모는 입시 제도와 1등 주의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누군가는 바꿔야 하는데 자신은 그런 시절을 거쳤다고 '우리 때는 더 심했어.'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에 관한 잡담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글에서 실컷 했으니 그만 하겠습니다.
등장 인물은 너무 많고, 스콧과 사비에 박사는 너무 일찍 죽고, 날개만 눈부신 엔젤은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고. 보고나서 엉망 진창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은 영화. 장편 인기 만화를 왜 영화로 압축해서는 안되는지 잘 증명한 영화라 생각한다.
'큐어'라는 존재로 인해 평범한 인간으로 살 기회를 얻게 된 돌연변이들, 하지만 그것은 기회가 아니라 또다른 고통일 수 있다. 영화상에서 돌연변이들은 질병에 걸린 존재들이 아니다. 하지만 'Cure(치유)'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인간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꺼림칙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된다. 치료받아 인간의 시스템 안으로 편입될 것이냐? 아니면 인간과 같아질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할 것이냐? 후자를 선택하더라도 고유성을 인정받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치유를 거부한다는 것을 인간들이 적이 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딜레마는 역사상 끊임없이 존재했던 선구자적 아웃사이더들을 생각나게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대다수의 시스템에 맞서 미래를 바꿀 것인가,
변혁도 타협도 포기한 채 영원히 아웃사이더로 살 것인가,
시스템의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여 인사이더로 거듭날 것인가?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1의 길은 가장 힘들 것이다. 보수적인 세계를 바꾼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선구자들의 대다수는 길만을 제시했을 뿐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훗날 그들의 위대함을 깨달은 이들이 다수가 된 후에야 세상이 바뀌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꿈을 여하한 방법으로 자신의 손으로 이룰 수 있다 해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는다. 자신이 가지게 된 힘을 다시 시스템을 유지하는 권력으로 사용할 것인가?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는데 어느 정도까지 타협할 것인가?
2의 길을 택한다면, 어쩌면 내부적으로 가장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유혹과는 타협하지 않았지만, 시스템의 권력의 두려움과는 타협했다는 무력감과 보기 싫은 것들을 보고 살아야 하는 절망감에 시달릴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시니컬해지는 부류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는 아웃사이더들을 양성할 수도 있겠다.
3의 길을 택한다면, 어쩌면 가장 반동적인 인사이더가 될 확률이 높다. 소외당하고 고뇌로 가득찼던 삶이 인사이더의 달콤한 꿀을 맞보게 되는 순간 자신의 죄책감을 잊기 위해서든 혹은 자신의 특권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든 시스템을 수호하는데 보통의 인사이더들보다 적극적이 될 확률이 높다.
영화 자체는 머리는 필요없이 그냥 눈으로 봐도 충분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저런 고뇌와 갈등을 담아낸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도의 갈등을 담아내기엔 영화 'X-men'의 타겟 연령층의 나이는 너무나 낮다. 결국 나치의 민족 우월주의를 보는 것 같은 '매그니토'의 미치광이 놀이판에서 수많은 캐릭터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현란한 초능력들만 선보이다 사라지는 SF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좌백님의 황당한 영화라는 포스트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에고 돈 아까우셨겠다... 이 포스트를 보다 보니 나의 황당 영화 관람기가 떠올랐다. 말 그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후훗...
내가 어릴 때 소년 중앙라는 잡지가 인기있었다. 엄하셨던 아버지께서 왠일인지 소년 중앙은 꼬박꼬박 사주셨었는데, 거기서 '가디안'이라는 영화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줄거리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적어보자면,
아이를 낳은 아내를 위해 새로 이사온 집에 보모던가? 파출부던가를 구하게 되는데, 한 여자가 아이를 제물로 삼기 위해 원래 오기로 되어있던 파출부를 의문사 시키고 아이를 빼앗기 위해 부부와 사투를 벌인다는...
그 줄거리가 어린 나이에 무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스릴러 풍에 뭔가 으시시할 것 같은... 하지만, 비디오가 교육에 도움이 안된다는 아버지 엄명에 따라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난 언젠가 보고 싶은 영화로 '가디안'을 어린 기억 속에 담아두어야 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여동생과 외삼촌댁에 놀러갔는데, 외삼촌이 돈을 주시며 보고 싶은 비디오를 하나 빌려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때 정말 순진했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다른 유명한 영화를 알 리 없었고, 언제나 뇌리에 꽂혀있었던 그 '가디안'이라는 비디오를 빼든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어찌어찌 해서 비디오를 빌려들고 외삼촌네로 한걸음에 달려와 비디오를 틀었는데, 처음 부분은 줄거리대로 흘러갔다. 문제는... 중간 부분에 야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길~게... 여동생과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거의 비디오의 절반은 눈을 가리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꺼버려야 했다. 외삼촌도 무지 황당하셔서 고작 하신다는 한 마디.
"영구와 땡칠이 같은 거나 빌려오지..."
정말 순진해서 빨간 비디오란 게 뭔지도 몰랐을 때의 웃음 나오는 기억이다. 빨간 비디오라는 건 비디오가 새빨간 색이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줄 알았으니까 ;;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두가지.
외삼촌네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린 꼬마 둘에게 그걸 빌려준 걸까?
그리고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얼추 타이밍이 맞는 시기에 외삼촌네 장남이 태어났다. 그럼 혹시 그 녀석은 내 덕택에 태어난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