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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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8 일리아스를 읽고 있습니다. (5)
1. 간만에 일리아스를 다시 꺼내들어 짬짬이 읽고 있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읽는 거라 페이지는 잘 나가지 않고 있지만, 역시 멋진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틀리군요. 읽을 때의 관심사나 화두가 무엇인지, 심리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달라집니다.

2. 일리아스는 일리아드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일리아드는 라틴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가깝고, 일리아스가 그리스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서사시이니, 그리스식 발음을 따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쨋거나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의 이야기라는 뜻이고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별명이라고 합니다.


3. 비슷한 이야기로 제가 산 번역본은 천병희님이 번역하신 종로서적의 책인데요, 위키 백과 사전에도 올라 있는 책입니다. 이 번역본의 고유명사 표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면 책 머리부분에 설명해 놓은 것처럼 트로이아가 아니라, 트로이에로, 여신 헤라가 아닌 헤레로, 하데스가 아닌 아이데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티카 방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원전대로 이오니아 방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티카 방언은 이오니아 방언의 하위 방언이기는 하지만 특히 수세기 동안 아테네 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언이었다고 하네요. 일리아스는 아테네가 그리스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기 이전의 일일 뿐더러 주.로. 이오니아 방언으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니 천병희님의 표기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그리스어 / 위키 백과) 하지만, 주로 아티카 그리스어에서 차용했을 영어식 고유명사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조금 헷갈리기도 하네요.

아테네가 오랫동안 그리스 세계의 맹주였기 때문에, 오늘날엔 일리아스에 나오는 고유명사들 마저도 아테네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아티카 방언의 표기를 따른다는 점은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절감하게 되고요. 비슷하게 앞으로 남한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남한과 북한이 각각 다른 많은 단어들 역시 남한식으로 통일될 가능성이 많겠죠? 개인적으로 북한의 단어들은 참 기발하고, 예쁜 단어들이 많은 것 같은데 많이 사라지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4. 일리아스는 총 24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 10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약 50일 동안 일어난 공방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 분노해 전쟁에 나가지 않기로 선언하는 부분에서부터, 전우의 죽음에 분노해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출전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최고의 장수 헥토르를 죽이고 복수하지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부성에 감동해 헥토르의 시체를 넘겨주고,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장면까지가 일리아스의 이야기입니다. 10년간의 아킬레우스의 대활약과 트로이의 멸망이라는 매력적인 부분이 빠지고서도 이렇게 훌륭하다니, 참 놀랍지 않나요?

5. 서사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생생한 심리와 장면 묘사란... 정말 서양 문학의 원류라고 할 만합니다. 아직 5권을 읽는 중이지만, 1권의 처녀 하나를 둘러싼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신경전과 4권의 전투 장면은 정말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정서적 핍진성에 대해 서사장르의 한계라는 점을 들어 변호하는 편이지만, 이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긴 수천 년을 사랑받은 서사시와 몇십 년도 채 안된 블록버스터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가요? ^^;;

6.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서사시답게 역시 관용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기억에 남는 표현들로는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당시에는 볼이 예쁜 것이 미인의 기준이었을까요?)", "걸음이 날랜 아킬레우스(아가멤논과 싸운 뒤 진중에서 놀고 있을 때에도 이런 표현이 나오니, 참...;;)", "포이보스[각주:1] 아폴론", "...창자가 모두 땅위로 쏟아졌고 어둠이 그의 두 눈을 덮었다(정말 장수의 죽음을 묘사할 때는 어김없이 수시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등이 생각나네요.

7. 2권을 읽다보면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과 이끌고 온 군세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군세를 병력이 아니라 끌고 온 군선의 수로 표현하는 것이 특이한데요. 그 끄트머리 부분에 역주로 한 배마다 85명이었던가? 그렇게 쳐서 병력이 약 10만이라는 계산을 해놓았습니다. 트로이 전쟁이야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듯 하지만, 그 많은 그리스 도시국가왕국들의 왕과 10만이라는 대병력이 10년동안 자리를 비우고도 본토는 무사했을까요? 게다가 오뒤세이아를 봐도 상당수의 그리스군에게 편한 귀국길이 아니지요. 어느 정도가 과장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또 어쩌면 그점이 훗날 소수의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잡게 된 한가지 요인이었을지. 좀더 조사해 보아야겠습니다.

8. 읽다가 궁금한 점이나, 흥미로운 점이 생기면 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1. Phoibos, 아폴론 신의 별명으로 "빛나는 자", "정결한 자"라는 의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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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 2006.09.19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조조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ㅋ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6.09.19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그렇긴 해요 :) 그래도 100만을 10년 동안 끌고 다닌 건 아니잖아요? 또 나중에 고구려를 침략한 수, 당의 군사 역시 100만이 넘는 걸 보면 무조건 과장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듯 한데...

      제가 흥미로운 건 당시 그리스는 중국이나 페르시아와 같이 많은 수를 징병할 수 있는 전제 왕권이 아니라는 거죠. 경제 활동이야 노예가 대신한다 해도, 전쟁을 담당한 귀족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왕국들에서 (10만의 병력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후유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이는 '아트레우스가의 비극'이나 , '오뒤세이아'에서 이타카 섬의 왕인 오뒤세이아가 죽었다고 믿고, 그의 아내에게 무례하게 굴면서 정혼하는 무뢰한들의 모습들이 그 후유증이 생각 외로 컸음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제가 알아보면서 착각했던 사실이 있긴 한데, 포스트로 정리해야 할 듯 하네요^&^

    •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 2006.09.19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그건 그래요. 그리스 사람들이 애국심이 투철했나...^^;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6.09.19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나중에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 한데, 저 시대에는 그런 듯도 하고요.
      역사를 보다 보면 희한한게 전성기 때는 뭘 해도 잘되고, 국민들의 애국심도 투철한데 망하려 할 때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죠. 애국심도 결핍되고요.

  2. Favicon of http://sudous.egloos.com BlogIcon Theodore 2007.12.05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랍어 시간에 배웠던 첫 일리아스의 구절
    Menin aeide thea, 분노를 노래하소서.
    수많은 아카이아인들을 까마귀밥으로 만든....
    일리아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분노인데, 정말로 엄청난 분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