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p. 164
...그는 정통성이 무엇인가를 모르면서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어떤 점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납득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적 사건에 충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침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정상적이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고 새 몸뚱이를 거쳐 탈없이 그대로 나오듯, 뒤에 아무런 찌꺼기도 남기지 않으므로 그들이 무엇을 삼키든 목을 넘어간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해로움도 줄 수 없는 것이다.

p.175
그는 결코 잠들지 않는 텔레스크린을 생각했다. 그놈들이 밤낮으로 감시를 하지만 정신을 갖고 있는 한 우린 그놈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놈들이 아무리 지모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그들 손아귀 속에 잡혀 있으면 조금은 달라지겠지... 어떻든 사실은 숨겨 둘 수 없다. 심문으로 알아낼 수도 있고 고문으로 족쳐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적이 살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라 할 때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놈들은 우리 감정을 바꿔 놓을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도 아무리 원해 봤자 그들의 감정을 바꿔 놓을 수 없다. 그들이 우리가 한 행동이며 말이며 사상을 빼놓지 않고 세세히 다 캐낼 수 있다 하더라도 깊은 속마음은, 우리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신비로운 속마음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p.192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각주:1]

p.193
제3장
전쟁은 평화 세개 초국가간의 국경은 곳에 따라 자의적이기도 하고 전황에 따라 변동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리적 구분을 따랐다. 유라시아는 포르투갈에서 베링 해협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오세아니아는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대서양 제도 및 아프리카의 남부를 장악한다. 이스트아시아는 다른 두 나라보다 작고 서쪽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중국과 그 남쪽 지역, 일본 제도 및 변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만주, 몽고, 티벳 등을 장악한다.

p.194
이들 세 초국가는 다른 한 초국가와 서로 동맹을 맺어가며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있고 또 지난 25년간 그렇게 되어 왔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20세기 초엽에서처럼 그렇게 절망적이고 전멸적인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파괴시킬 수도 없는 교전국가 간의 한정된 목표를 위한 싸움으로 실질적인 전쟁의 동기도 없고 진짜 이데올리기의 차이로 갈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전쟁은, 대부분 고도로 훈련받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따라서 사상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전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반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변경이나 해로의 전략지점을 지키는 유동요새 부근에서 일어난다. 문명의 중심지역에서는 전쟁이란 만성적인 소비재의 결핍과 때때로 몇십 명을 죽이는 로켓탄의 폭발을 의미한다. 전쟁의 성격은 실질적으로 변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의 중요성 순위가 바뀐 것이다...

현대의 전쟁 성격을 이해하려면(몇 년 만큼씩 전쟁 상대국은 바뀌지만 전쟁은 늘 똑같은 양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결정적일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알아두어야 한다. 세 개의 초국가는 다른 두 나라의 연합으로도 결코 정복될 수 없다. 그들의 실력은 서로 비슷비슷하고 자연적 방위조건이 철벽같기 때문이다.

p.195
둘째로 싸워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서로 맞아들어가는 소비경제가 확보되어 전시대(前時代) 전쟁의 주요원인이었던 시장쟁탈이 끝났고 반면 원료획득 경쟁이 이제 생사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p.196
현대전쟁의 기본목적은 그 이중사고의 원칙에 의하여 내부당원은 이를 인정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한다.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기계를 완전히 소모시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1914년 이전의 세계, 더욱이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상상 속의 미래와 비교해 보면 벌거벗고 굶주리고 초라한 세계다. 20세기 초의 미래사회관은 분명히 풍부하고 여가가 있으며, 질서있고 효율적이며, 마치 유리와 강철과 하얀 콘크리트로 된 번쩍이는 영구적인 세계라고 대부분의 식자들이 믿었다. 과학과 기술은 놀랄 만한 속도로 발전하며 또 그렇게 진보하고 있는 중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장기적인 전쟁과 혁명으로 빈곤이 초래되는 한편 과학과 기술의 발전토대가 될 경험적 사고방식이 엄청난 통제사회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전반적으로 오늘의 세계는 50년 전보다 더 원시적이다.

p. 197
기계란 것이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사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고된 노동이 불필요해지고, 따라서 불평등이 사라졌다고 확신했다. 기계가 그 목적에 적절히 사용됐더라면 기아, 과로, 쓰레기, 문맹, 그리고 질병은 몇 세대 안에 근절됐을 것이다. 사실 기계가 그런 목적에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때로는 분배할 수 없는 부(富)를 생산하는 과정에 따라 그 부산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50년간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이 상당히 향상되긴 했다.

그러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급사회를 파괴할 위험(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가 파괴이다)을 초래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 권력은 소수 특권계급이 장악하는 사회를 물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회는 장기간 안정적일 수 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안정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향유된다면 빈곤으로 우매해야 정상적일 대중들이 점점 깨이고 혼자 사색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고 보면 조만간, 소수의 특권층은 특권적이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되고 따라서 그들을 없애 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아 계급사회는 가난고 무지를 기반으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p. 198
...재화(財貨)의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대중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만족할 만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이런 방법은 자본주의의 최종단계인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상당히 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군사적 약세를 초래했고 이로 말미암은 궁핍은 명확히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반대현상이 불가피하게 일어났다. 문제는 세계의 부를 실제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재화는 생산돼야 하지만 분배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 계속적인 전쟁이다.

전쟁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 생산을 파괴하는 것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기공장이 소비품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전쟁규모는 국민의 수요를 최소한도로 맞춰주고 그 잉여물자를 완전 소모할 수 있는 범위로 늘 계획된다. 실제로 국민의 수요량은 언제나 과소평가되고 그 결과 생활 필수품은 반도 모자라는 만성적인 상태가 계속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리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집단들마저 곤궁한 상태로 붙들어 두는 것이 적절한 정책이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궁핌한 상태여야 작은 특혜가 더욱 커 보이고 그래서 한 집단과 다른 집단간의 차이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p. 199
전쟁은, 후술하겠지만 필요한 파괴행위를 할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이를 용납하게끔 수행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세계의 잉여노동력을 성당이나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나, 구멍을 팠다 도로 메우는 데나, 방대한 재화를 생산했다가 불로 태워 버리는 데 허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이 방법은 계급사회에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 주기는 하겠지만 감정적 기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관계되는 것은 꾸준히 일하는 한 그들의 태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대중의 사기가 아니라, 당 자체의 사기이다. 말단 당원이라도 경쟁심과 근면성, 약간의 지성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공포와 증오, 아첨, 승리에의 도취감에 빠진 경솔하고 맹목적인 열광이 물론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전쟁상태에 어울리는 정신 상태를 가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는 실제로는 관계없으며 결정적인 승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황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필요한 것은 전쟁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보편적으로 당이 그 당원에게 요구하는 지성의 분열은 전쟁 분위기에서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으며 사실 당원의 지위가 오르면 오를수록 그 분열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전쟁에의 열망과 적에 대한 증오감이 가장 강렬한 곳이 내부당이다.

p. 200
오늘날 오세아니아에는 옛날 의미의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어에는 '과학'이란 말이 없다... 모든 유용한 기술은 정지하고 있거나 퇴보한다. 책은 기계로 저술되는 반면 토지는 말로 경작되고 있다... 당의 2대 목표는 전세계를 정복하는 것과 모든 독립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근절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아내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 예고 없이 몇 초 안에 수억만 명을 어떻게 죽이는가 하는 것이다.

p. 203
...공공연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이해되고 또 그에 의해 전개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즉 3대 초국가의 생활조건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오세아니아의 주철학(主哲學)은 '영사(INGSOC,England Socialism)'라 했고, 유라시아의 그것은 '신 볼셰비즘(Neo-Bolshevism)', 이스트아시아는 '죽음숭배(Death-Worship)'라고 번역되는 중국말이지만 더 정확히는 '자기말살(Obliteration of Self)'에 해당될 것이다. 오세아니아의 시민은 다른 두 나라의 철학이나 성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서는 안되었지만 그것들은 도덕과 양식에 대한 야만적 폭행이니 저주하라는 교육만 받을 뿐이다. 실제로 이 세 걔의 철학은 다른 것이 거의 없었고 그것이 지탱하는 사회체제에도 전혀 차이가 없었다. 어디든 똑같은 피라미드 형의 구조가, 반신적인 지도자에 대한 똑같은 숭배가, 계속적인 전쟁의 의한, 또 그를 위한 똑같은 경제체제가 있다. 이에 따라 세 초국가가 다른 하나를 정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래 봤자 아무 이득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세 나라가 대립을 계속하는 한 마치 세 개의 솥다리처럼 서로 의지하여 서 있는 것이다.

p. 204
그러므로 옛날의 전쟁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한낱 사기이다. 그것은 뿔의 각도가 틀려 상대방에 서로 상처를 줄 수 없는 반추동물의 싸움과 같다... 전쟁은 잉여 소비재를 소모시키고 계급사회가 필요로 하는 독특한 정신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지배자들이 비록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전쟁의 파괴력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서로 싸웠고 승자는 언제나 패자를 약탈했다. 우리 시대에는 결코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지배집단의 그 백성에 대한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은 영토의 정복이나 반항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전쟁'이란 단어는 잘못된 것이다. 늘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실은 전쟁이 없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세 초국가가 서로 전쟁을 하는 대신 영구적인 평화에 동의하고 타국의 땅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 경우 외적 위험으로부터 오는 영향은 영원히 없어질망정 그 자체 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똑같다. 대부분의 당원들은 희미하게 이해할 뿐이지만 이것이 당의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란 말의 진의(眞意)이다.

p. 207
제 1장
무지는 힘 유사 이래, 아마도 신석기 말 이후로 인민은 상, 중, 하의 3계급으로 나뉘어 왔다. 그들은 여러 갈래로 갈리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무수하게 태어나고 그들의 상대적 인구수와 상호간에 대한 태도가 시대마다 달랐지만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p. 208
이러한 세 집단의 목표는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것이다. '상층' 계급의 목표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중간층' 계급의 목표는 '상층'의 지위로 오르는 것이다. 하층계급이 목표를 가졌다면(이들은 고생을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외에 다른 것을 거의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본성이다) 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 역사를 통해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해 일어난다. 상층계급은 장기간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효과적인 통치 능력, 또는 그 두 가지를 다 잃어버릴 때가 온다. 그리하여 중간층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가장하여 하층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상층을 전복시킨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하층을 다시 옛날의 노예신분으로 몰아넣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중간층은 다른 한 계층, 또는 그 두개의 계층에서 충당되고 그리하여 투쟁은 다시 시작된다. 이 세 개의 계층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일시적으로라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부(富)가 늘고 상호간의 태도가 부드러워졌고 개혁이나 혁명이 있었지만 인간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는 한 치도 진보한 게 없다. 하층계급의 눈으로 보면 역사적 변화라는 것은 그들의 주인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p. 209
19세기 말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 유형이 반복되고 있음을 명백히 관찰했다. 그리하여 역사를 순환과정으로 해석하고 불평등은 인간생활에 있어 부동(不動)의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학파도 생겨났다. 물론 이러한 주위에는 언제나 지지자가 있었지만 다음에 얘기하는 방향으로 괄목할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사회에 계급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특히 상층계급의 이론이었다... 중간층은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하는 한 언제나 자유, 정의, 평등이란 말을 사용했다... 과거에 중간층은 평등의 깃발 아래 혁명을 일으켰고 그리하여 전날의 전제(專制)를 전복시키자마자 새로운 전제를 내세웠다. 이러다가 새로이 생긴 중간층은 실제적으로 미리 전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19세기 초에 나타난 사회주의는 고대의 노예반란으로부터 기원을 잡는 일련의 사상계열의 마지막 단계로서, 과거의 유토피아주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00년경 이후부터 사회주의는 변형되어 자유와 평등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더욱더 노골적으로 포기했다. 그리하여 금세기 중엽, 오세아니아에서는 '영사(英社)'로 유라시아에서는 '신 볼셰비즘'으로, 이스트아시아에서는 이른바 '죽음숭배'로 나타난 새로운 운동은 '부자유(不自由)'와 '불평등'을 항구화하자는 의식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들의 목적은 발전을 중지시키고 어느 선택된 순간으로 역사를 동결시키자는 것이다... 전처럼 중간층계급이 상층계급을 전복하고 스스로 상층계급으로 오른 다음 의식적인 전략을 통해 영원히 자기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귀족정치는 주로 관리, 과학자, 기술자, 노동운동가, 광고전문가, 사회학자, 교사, 언론인, 직업적 정치가들로 이루어졌다. 독점산업과 중앙집권으로 세계가 살벌해지자 중류 봉급자와 상급 노동자 출신인 이들이 규합,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과거의 권력자들과 비교하여 이들은 욕심이 적고 덜 사치스러우며 순수한 권력에 대한 갈망은 더 컸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반대파를 타도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었다. 이 마지막 차이점이 중요하다. 지배집단들은...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을 문제삼으며, 그들의 백성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는 무관심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어떠한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업시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었고, 영화와 라디오로 이것은 더욱 촉진되었다. 텔레비전의 발전으로 하나의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의사에 완전히 복종하고 모든 국민의 의사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50년대와 60년대의 혁명기가 지나자 사회는 전처럼 상, 중, 하로 재편성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층계급은 그들의 선배와는 달리 본능에 의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았다. 과두정치를 유지하는 안전한 기반은 오직 집산주의(集産主義)뿐이라고 이제껏 생각해왔다. 부와 권력은 그 둘을 함께 소유할 때 용이하게 보호된다. 금세기 중엽에 행해진 소위 '사유재산의 폐지'란 실제로 전보다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 재산을 집중시키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계급이 제거되면 사회주의가 오리라고 오래 전부터 예측되어 왔다. 물론 자본주의자들은 제거되었다... 초기 사회주의에서 성장하여 그 말투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영사'는 실상 사회주의의 계획 중 중요한 조항을 수행했고, 그 결과는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온 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영구화였다.

그러나 계급사회를 영속시키는 문제는 이보다 더 어렵다. 지배집단이 권력을 상실하는 길은 네 가지가 있다. 즉 외부로부터 정복당하든가, 비능률적으로 통치되어 대중이 봉기한다든가, 강력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중간계급의 세력형성을 방지하지 못한다든가, 혹은 통치할 자신이나 의욕을 잃는 것 등이다.

p. 213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대형이 있다. 대형은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모든 성공과 완성, 모든 승리와 과학적 발견, 모든 지식과 지혜, 모든 행복과 덕성이 그의 지도와 영감에서 나온다.

p. 218
과거의 가변성은 '영사'의 중심교의(敎義)다. 과거의 사건은 객관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그 자료와 기억이 뭉친 것이다. 그리고 당은 그 모든 자료와 당원의 마음속까지 충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곧 당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p. 219
'이중사고'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p. 220
과거의 모든 과두정치는 지나치게 경직됐거나 연약하였기 때문에 실권하고 말았다. 그들은 우매해지거나 오만해져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방임적으로 되거나 비겁해져서 강권을 사용해야 할 때 양보함으로써 다시 몰랐했다. 즉 의식적이었기 때문에 망했고 무의식적이었기 때문에 망했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존재시킬 수 있는 사고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 당의 업적이다. 어떤 다른 지적(知的) 기반으로 당의 통치를 영속시킬 수 없다. 누구든 지배하려면, 그리고 그 지배를 계속하려면 현실감각을 전위(轉位)시킬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배의 비결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힘과 자신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한 신념을 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사고'를 가장 교묘하게 행하는 사람들이 '이중사고'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거대한 정신적 기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클수록 미망(迷妄)이 크고, 많이 알면 알수록 착란이 심해진다. 이러한 좋은 예가 전쟁에의 열광이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아질수록 심해진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전쟁에 대해 거의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분쟁지역에 사는 예속민들이다.

p. 221
정부의 네 성(省) 이름마저 뻔뻔스레 사실을 고의로 뒤집고 있다.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거짓말을,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아사(餓死)를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우연이 아니요, 일반적인 의미의 위선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신중한 '이중사고'의 행위결과이다. 왜냐하면 모순을 조화시킴으로써만 이 권력을 영원히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도로는 과거의 현상을 재현시킬 뿐이다. 인간의 평등을 영원히 피하려면, 소위 상층계급이 자신의 지위를 영구히 보존하려면 정신의 주조(主潮)를 광적인 상태로 통제해야 한다.

...'왜' 인간의 평등을 막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면밀히 계획하여 역사를 어느 특정 순간에 동결시키는 동기는 무엇인가?

p. 222
...실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그가 이미 생각한 지식을 단순히 체계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나니 자기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소수파에 속해 있다 해서, 아니 단 혼자라 해서 그 때문에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은 엄연히 구별되어 있고 전세계와 대항하면서라도 진실에 집착하고 있다 해서 미친 것은 아니다.

p. 261
...중세에 종교재판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실패작이야. 이단자를 뿌리뽑기 위해 시작된 이 종교재판은 결국 이단을 영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어. 이단자 한 사람을 화형에 처할 때마다 다른 수천 명이 들고 일어났어. 왜 그랬겠는가? 종교재판은 그들의 적을 공개적으로 죽였기 때문이고 회개를 받지 못한 채 죽였기 때문이야... 그들은 자신의 진실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갔어. 따라서 모든 영광은 그 희생자에게로 돌아갔고 그를 죽인 종교 재판관에게는 비난만 퍼부을 뿐이야. 그 후 20세기에 이르러 소위 전체주의자라는 게 있었어.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지. 소련 사람들은 종교재판 때보다 이단자를 더욱 참혹하게 처형했어. 그들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웠다고 생각했고 사실 순교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들은 그 희생자들을 인민재판에 붙이기 전에 먼저 용의주도하게 희생자들의 위엄을 완전히 벗겨 놨지. 고문과 고독으로 그들을 녹초로 만들어 놓으면 이들은 비열, 비참해지고 무어든 다 자백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뒤에서 서로 고자질하여 자기는 모면하려 하고 살려 달라 울고불고 야단하게 돼. 그러나 이것도 몇 년 후면 똑같은 결과가 다시 일어나. 죽은 사람이 순교자가 되고 그들에 대한 경멸도 잊어버리는 거지. 그럼 왜 그런가? 첫째로 그들의 자백이 강제에 의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 여기서 나오는 모든 자백은 진실이야. 우리가 진실로 만드는 거야. 무엇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우리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그들에 대해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기록된 이름도, 살아 있는 사람의 뇌속에서 기억도 없어져. 미래에서처럼 과거에 있어서도 완전히 없어지는 거야. 결국 전혀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거지.[각주:2]

p. 262
...우린 소극적인 복종이나 비굴한 굴복으로도 만족하지 않아. 자네가 우리한테 결국 항복한다 해도 그것은 자네의 자유의지로 돼야 해. 우린 이단자가 우리한테 반항한다고 해서 그들을 처형하는 게 아니야. 우리한테 반항하는 한 그를 처형하지 않는다. 우린 그를 전향시켜 그의 속마음을 장악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외양만이 아니라 진짜로 그의 마음과 영혼까지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야.[각주:3]

p. 265
아까 내 손가락을 자네에게 펴 보였어. 자네는 다섯 개로 보았지. 기억하나?
네.
오브라이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다섯 개지. 다섯 손가락이 보이나?
네.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았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하기 전, 한순간 다섯개로 보인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생각도 들이 않았다. 그러더니 다시 정상적인 상태가 돌아왔다...오브라이언의 새로운 가르침이 그의 텅 빈 곳을 채워 절대적인 진리로 믿게끔 되고 둘 더하기 둘이 필요에 따라 셋도, 다섯도 되는 걸로 보이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p. 272
윈스턴, 자네는 개인이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겠나? 세포의 쇠멸은 그 유기체의 활력을 의미해. 손톱을 잘랐다 해서 목숨이 끊기던가?
p. 308
그는 대형의 커다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택한 유형(流形)이여!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1.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준 책 제목 [본문으로]
  2. 오브라이언 [본문으로]
  3. 오브라이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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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내 손가락을 자네에게 펴 보였어. 자네는 다섯 개로 보았지. 기억하나?
네.
오브라이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다섯 개지. 다섯 손가락이 보이나?
네.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았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하기 전, 한순간 다섯개로 보인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생각도 들이 않았다. 그러더니 다시 정상적인 상태가 돌아왔다...오브라이언의 새로운 가르침이 그의 텅 빈 곳을 채워 절대적인 진리로 믿게끔 되고 둘 더하기 둘이 필요에 따라 셋도, 다섯도 되는 걸로 보이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이번에 읽을 때는 가능한 한 끊어지지 않게 정독하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책을 들다 놓다 하다보니 이번에도 날림 독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듯 싶습니다.

  1. 포르투갈에서 베링 해협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북부지역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2. 다른 두 나라보다 작고 서쪽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중국과 그 남쪽 지역, 일본 제도 및 (변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만주, 몽고, 티벳 등을 장악한 이스트아시아
  3.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대서양 제도 및 아프리카의 남부를 장악한,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

이 세 개의 전체주의적인 초국가가 소모적인 전쟁을 계속하며, 한편으로는 국민들을 통제하는 20세기 후반의 세계가 1949년에 조지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입니다.

오세아니아는 영사[각주:1]를 주 철학으로 하는 대형[각주:2]의 지도 아래 극단적으로 통제받는 나라입니다. 모든 인간은 당에 충성해야 하고 심지어는 성관계까지도 당에 충성할 소모품을 생산할 목적으로만 허용되며 일상 생활에서도 가정마다 비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당의 가르침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하고, 동시에 감시당합니다. 경제와 과학 기술은 다른 두 국가와의 전쟁을 위한 용도로만 유지, 발전되고 철학, 문학, 예술 등은 거의 말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당의 진리성에서 근무하는 말단 당원입니다. 아, 일단 당의 네 부서들을 소개하자면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거짓말을,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아사(餓死)를 담당하고 있습니다.[각주:3] 당의 부서들 명칭이 반어적이죠. 여기서 윈스턴이 일하는 진리성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언어, 역사를 당의 목적에 맞게 수정하고 뉴스와 기사들을 조작하는 곳입니다. 윈스턴은 당원이기는 하지만 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소문으로만 듣던 형제단의 일원이 되어 당을 전복시키는데 참여하기를 꿈꿉니다.

전쟁과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주위가 온통 미치광이들 뿐인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윈스턴은 어느날 내부 스파이라고 의심하던 줄리아라는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뒤이어 이전부터 형제단일 것이라고 추측했던 오브라이언이라는 고위 당원을 통해 형제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오브라이언은 형제단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골드스타인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책을 윈스턴에게 주고 윈스턴은 외딴 빈민가에 몰래 방을 구해 줄리아와 사랑을 나누며 틈틈히 그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행복도 잠시, 윈스턴과 줄리아에게는 차라리 죽음보다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도 애초에 사회주의자였다고 하죠. 하지만 그는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풍자한 동물농장과 이 1984년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그가 20세기 사회주의의 문제점만을 경고하려 했다고만 생각한다면 이 소설을 반 정도만 이해한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조지 오웰이 경고한 미디어 조작을 통한 정보 왜곡이나 전자 감시, 전쟁을 통한 여론 환기 등은 오늘날의 심지어 선진 국가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점들이니까요.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갈수록 번영하고 권력의 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체의 발달로 인해 정보 전달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으로 이 소설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습니다.

(과거의) 지배집단들은...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을 문제삼으며, 그들의 백성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는 무관심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어떠한 권력이든 시민들을 끊임업시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었고, 영화와 라디오로 이것은 더욱 촉진되었다. 텔레비전의 발전으로 하나의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의사에 완전히 복종하고 모든 국민의 의사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각주:4]


조지 오웰이 경고하던 어두운 미래는 다행히 오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편히 앉아서 이런 잡다한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소설 속의 사회에서는 펜으로 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조지 오웰의 지나친 비관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주(東洲) 이용희(李用熙) 선생은 미래의 세계정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소설보다는 살만하게 된 건 조지 오웰이 틀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조지 오웰과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했기 때문일런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정부의 전자 시스템을 비판할 때 누구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Big Brother라는 명칭을 들먹이는 것, 이런 것들만 봐도 조지 오웰의 통찰력을 높이 사야 하지 않을런지요. 더구나 이 책의 미래는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전쟁관이라든가, 정치 공학적인 측면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이 정말 자주 눈에 띱니다. 덕분에 다음에 올릴 독서기가 정말 깁니다. 빼놓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요.

이번에 읽으면서 물론 이 소설이 러브 스토리는 아니지만 윈스턴이 줄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이 참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이미 한 번 읽어서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그 부분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서 슬펐습니다. 사랑은 세상을 밝게 비추기도 하고 파멸의 늪에 빠지게도 하나봅니다. 결국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소설에서의 윈스턴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는 대형[각주:5]의 커다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택한 유형(流形)이여!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1. INGSOC(England Socialism), 영국식 사회주의 [본문으로]
  2. Big Brother [본문으로]
  3. p. 221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에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본문으로]
  4. p. 209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에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본문으로]
  5. Big Broth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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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3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7.02.24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맞습니다. 1949년입니다 ;; 제목에는 맞게 써놓고 오타가 났네요 ^_^;;

      저는 부끄럽게도 고등학교 때 논술 대비로 줄거리만 외우다가 대학교 때 처음 읽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신대로 문체가 간결한데도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생생해서 정말 소름끼치게 만들죠. ㅠ.ㅠ
      말씀하신 부분도 그렇고 현대에 대한 통찰력이 정말 여러 부분에 보여서 하나의 글에 다 담지 못했습니다.

  2. Favicon of http://sparkstar.tistory.com BlogIcon sparkstar 2007.02.24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지 오웰이라 하면 딱 기억나는 것이 '동물농장'이군요.
    사실 이 동물농장도 뭐랄까 조금 동화같은 느낌이었는데 머리커지고 나서 보니 참 무시무시한 내용이더군요...
    요즘에 무슨 책 읽을까 고민했는데 1984년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실 이거 읽어보지도 않아서 뭐라 댓글을 못달겠네요 *^^*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7.02.24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우화라는게 필요한가봅니다.
      무시무시한 내용을 그대로 뱉어버리면 논란과 저항감만 불러일으킬테니까요 :)

      저는 이제 동물농장을 읽으려 하는데, sparkstar님과 크로스? 하하!
      읽고 포스팅해주시면 저도 가서 sparkstar님의 생각을 배울텐데요. ^^

  3. ~.~ 2008.03.03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ice reflction~



제목: 윤동주 평전(개정판)
저자: 송우혜
출판: 세계사
출간: 1998년 08월 13일 출간





머리말

p.11
  <칸트나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은 그들의 생애, 즉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하는 것은 아예 문제삼지 않고, 다만 그들의 저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주관적인 사상가의 경우는 다른다. 그의 생애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의 저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저서는 모두 저자의 생활체험의 표현이며 고백이고 또 자서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고 심취했던 철학자였기도 하거니와, 생애를 모른다면 그 저작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둘은 꼭같은 패턴의 사람들이었다.

1 시인의 출생

2 지사들의 마을 명동

3 해란강의 심장 용정(龍井)

4 송몽규 이야기

p.105
  그가 최초로 날짜를 명시해서 둔 작품은 <1934년 12월 24일>에 쓰여진 것으로 기록된 「삶과 죽음」「초한대」「내일은 없다」의 세 작품이다. 윤동주의 시집에 첨부된 연보에 의하면, 이 세 작품이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다>라고 지적되어 있다.

5 평양에서의 7개월

p.140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시」를 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서시」의 앞부분
  윤동주의 시를 분석할 때 가장 빈번하게 논의되는 것이 곧 <부끄럼의 미학>이라는 명제이다. 사실 그의 시에서도 특히 <부끄럼>이란 정서에 의탁해서 우리 삶의 고뇌를 슬퍼하고 반추하는 구절들은 참으로 뛰어나다. 윤동주가 마련한 이런 통로들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의 생이 지닌 한계를, 그리고 그 슬픔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독법의 하나를 구비하게 된 것이다... 윤동주 이전엔 이토록 자기의 전 존재를 던져서 사람의 삶이 업보처럼 지니게 마련인 근원적인 부끄럼과 마주선 존재가 없었다. 우리는 무수한 세대를 기다려서야 드디더 이 구절을 얻은 것이다.
  이 구절에 이르면 우리는 드디어 깨닫게 된다. <부끄럼>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의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한 양식이라는 것을. 그렇다! <부끄럼>이란 것은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에 다름아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정직하게 부끄럼에 마주서자면 그의 전 존재, 그의 전 중량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서본 경험이 없는 한 이토록 가슴을 치는 절창은 솟아날 수 없는 것이다.

p.143-4
  이것은 그가 자신의 실패와 그 수치 앞에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섰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얼버무려 스스로를 위로하며 슬쩍 넘어갈 수 있었으면 그는 그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러지를 않았다. 수치 앞에서 정직했고 성실했다. 그가 그럴 수 있다는 건 아마도 그가 청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것은 신의 축복이다. 정결한 마음이란 것은 아무에게나 허용된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타고나야 소유할 수 있는 천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50
  문학소년 취향의 관념적이고 또 상당한 현학 취미를 보이는 <어려운> 시들은 1935년 10월을 끝으로 그 뒤로는 일제히 자취를 감춘다.

p.151
...시에 있어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쉬운 말로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감정을 엮어가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의 특색과 내음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p.152
  그가 보인 변화, 특히 관념적인 말로 화려하게 엮던 문학청년 취향의 어려운 시를 버리고 느닷없이 동시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윤동주의 연구가들은 설명하기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이 현상을 두고 <그가 당시 유아적 퇴행현상을 보였다>고까지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열쇠가 따로 있다. 바로 『정지용 시집』이다.
  ... 정지용은 윤동주가 평생을 두고 가장 좋아한 시인이다. 지금도 윤동주의 유품 중에 『정지용 시집』이 남아있는데, 도처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고, 곳에 따라서는 적절한 촌평도 가해져 있는 등, 그가 얼마나 정독하던 책인지를 알 수 있다.

6 다시 용정으로 돌아오다

7 젊음의 정거장, 서울 연희 전문학교

p.192
  처음엔 의과를 안 간다고 몹시 언짢아하셨긴 하지만, 아버지도 서울의 연전학생인 오빠가 귀향하자 몹시 자랑스러워하셨지요. 첫 여름방학에 오빠가 귀향해서 교회고 어디고 여러 어른들께 인사드리러 다닐 때 사각모자를 안 쓰고 나가면 아버지는 냅다 소릴 지르시는 거예요. <모자 쓰고 가라!> 하고요. 하하! 그러면 오빠는 마지못해 쓰고 나가서는 길에서 벗어 담 안으로 던져버리고 가거나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놓고 가더군요. 하하......
동생 윤혜원
8 6첩방의 고장, 일본

9 체포, 재판, 복역, 옥사

10 시인윤동주지묘(詩人尹東柱之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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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Hyun/ヒョン/贤 2006.11.21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학년 때 뭔 발표였는진 모르겠는데 중간에 윤동주의 〈서시〉를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도 관심 있어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ㅋ

    암턴, 윤동주의 삶이 성서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면, 저 '부끄럼'이란 건 참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낱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제가 〈설일〉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시가 바로 〈서시〉랍니다. ㅎㅎ

    저도 윤동주 평전 같은 책을 한 권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6.11.21 0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잘 기억하신 듯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윤동주님을 '기독교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물론 초기부터 기독교적 사상이 함축된 시를 쓴 것은 아니지만요.
      제가 아직 다 읽지 못해서 이 포스트는 완결한 것이 아니랍니다. 뒷부분에 아마 윤동주님의 기독교에 관한 어록도 있을 거에요^^
      저는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한국은 윤동주님, 외국은 보들레르랍니다. 참, 극과 극이죠? ^^;

      현이님의 책은 어디갔을까요? 저 역시도 어디갔는지 줄줄 새는 책이 희한하다는... '_';;


현이님이 이 글을 보실 것을 알기에 좋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점 뿐만 아니라 세부점에서도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자녀가 정말 좋은 글을 쓰게 하고 싶으면 어린 시절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세뇌시킬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들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녀의 호기심에 대한 적절하면서 균형잡힌 대답은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식 수준이지요.

하지만 저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주장이고, 과연 어릴 때부터 '짜라투스트라'를 읽는다고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어질까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연습시킨다고 한국의 모짜르트가 나올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바보스런 부모 아래서는 천재도 바보가 되기 십상입니다. 정말 천재라면 부모가 그렇게 시키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고, 천재가 아니라면 지레 질려서 오히려 부모가 강요하는 그 분야에 거부감을 느낄 확률이 높습니다.

어린 자녀에게 책을 즐겨 읽는 습관을 들게 하고 싶으시면, 저희 부모님처럼 그저 디즈니 명작 동화 한 질을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감히 말하건데 저는 저 디즈니 명작 동화 한질이 적어도 대학까지의 인생을 좌우했습니다. 저 동화집이 계기가 되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동화에서도 인간의 편견이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도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시험에서 외국어 영역의 상당한 지문은 읽어볼 필요도 없이 답을 고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특히 고등학교 영어 문제, 상당한 지문을 저 디즈니 명작 동화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싶은 이야기에서 지문을 따왔더군요).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제 앞으로의 인생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책을 읽는 습관을 통해 제가 선호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나 글도 진득하니 읽어보아야 하는 이유를 배웠거든요.

좌뇌/우뇌 문제 역시 뭐든지 지나치게 쪼개서 바라보려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인 논거는 아니지만, 관련된 최근의 한가지 사건을 들어보렵니다. 얼마전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훑어보신 분들은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분께서 위기의 원인 중 한가지로 '극도의 분과주의'를 꼽으셨는데 저는 거기에 공감합니다. 오늘날 그렇게 과를 쪼개대서 그 분야의 천재나 전문가가 더 많이 나오고 있나요? 전문적으로 그렇게 잘 나눠서 가르치셔서 지식은 많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이 양산되고 있나요? 기술이 중요한 줄만 알고 정작 사람은 뒷전인 사람들은요? 학자라면서 자신만의 것을 탐구하거나 세상을 좀더 좋게 바꿔보려는 생각은 안하고 케케묵은 책과 사상들만 파고 있는 사람들은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뉴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습득하면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명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요?

인간이라 함은 며칠 전의 글에서 썼듯이 머리는 차가우면서 가슴은 따뜻해야 버젓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좋은 가치란 어느 한쪽만 만족시킨다고 성립되는 것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글을 머리로만 쓴다고 가슴으로만 쓴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이님의 말씀처럼 명문은 이성을 납득시키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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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 2006.09.29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으신 말씀! ^^
    그리고, 전 《한국위인전기》였어요. ㅎㅎ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6.09.29 0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그래서 국사에 관심이 많으신 거군요? 전 세계사 쪽에 관심이 많게 된 거고(저야 거의 흥미 수준이지만).
      근데, 저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분과주의'를 언급하신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그런 말씀도 있으셨어요. 국사와 세계사마저도 지나치게 분리하려는 경향 역시 문제라고.

    •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 2006.09.29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지나치게 분리하는 건 확실히 문제죠. 왜냐하면, 모든 것은 거의 연결되어 있는데, 이걸 따로 공부하면 완전 억지가 되기 쉽거든요. 국사를 살피려면 적게는 동북아사를, 크게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살피는 게 필요하죠. ^^

1. 간만에 일리아스를 다시 꺼내들어 짬짬이 읽고 있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읽는 거라 페이지는 잘 나가지 않고 있지만, 역시 멋진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틀리군요. 읽을 때의 관심사나 화두가 무엇인지, 심리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달라집니다.

2. 일리아스는 일리아드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일리아드는 라틴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가깝고, 일리아스가 그리스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서사시이니, 그리스식 발음을 따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쨋거나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의 이야기라는 뜻이고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별명이라고 합니다.


3. 비슷한 이야기로 제가 산 번역본은 천병희님이 번역하신 종로서적의 책인데요, 위키 백과 사전에도 올라 있는 책입니다. 이 번역본의 고유명사 표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면 책 머리부분에 설명해 놓은 것처럼 트로이아가 아니라, 트로이에로, 여신 헤라가 아닌 헤레로, 하데스가 아닌 아이데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티카 방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원전대로 이오니아 방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티카 방언은 이오니아 방언의 하위 방언이기는 하지만 특히 수세기 동안 아테네 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언이었다고 하네요. 일리아스는 아테네가 그리스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기 이전의 일일 뿐더러 주.로. 이오니아 방언으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니 천병희님의 표기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그리스어 / 위키 백과) 하지만, 주로 아티카 그리스어에서 차용했을 영어식 고유명사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조금 헷갈리기도 하네요.

아테네가 오랫동안 그리스 세계의 맹주였기 때문에, 오늘날엔 일리아스에 나오는 고유명사들 마저도 아테네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아티카 방언의 표기를 따른다는 점은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절감하게 되고요. 비슷하게 앞으로 남한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남한과 북한이 각각 다른 많은 단어들 역시 남한식으로 통일될 가능성이 많겠죠? 개인적으로 북한의 단어들은 참 기발하고, 예쁜 단어들이 많은 것 같은데 많이 사라지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4. 일리아스는 총 24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 10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약 50일 동안 일어난 공방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 분노해 전쟁에 나가지 않기로 선언하는 부분에서부터, 전우의 죽음에 분노해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출전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최고의 장수 헥토르를 죽이고 복수하지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부성에 감동해 헥토르의 시체를 넘겨주고,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장면까지가 일리아스의 이야기입니다. 10년간의 아킬레우스의 대활약과 트로이의 멸망이라는 매력적인 부분이 빠지고서도 이렇게 훌륭하다니, 참 놀랍지 않나요?

5. 서사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생생한 심리와 장면 묘사란... 정말 서양 문학의 원류라고 할 만합니다. 아직 5권을 읽는 중이지만, 1권의 처녀 하나를 둘러싼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신경전과 4권의 전투 장면은 정말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정서적 핍진성에 대해 서사장르의 한계라는 점을 들어 변호하는 편이지만, 이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긴 수천 년을 사랑받은 서사시와 몇십 년도 채 안된 블록버스터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가요? ^^;;

6.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서사시답게 역시 관용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기억에 남는 표현들로는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당시에는 볼이 예쁜 것이 미인의 기준이었을까요?)", "걸음이 날랜 아킬레우스(아가멤논과 싸운 뒤 진중에서 놀고 있을 때에도 이런 표현이 나오니, 참...;;)", "포이보스[각주:1] 아폴론", "...창자가 모두 땅위로 쏟아졌고 어둠이 그의 두 눈을 덮었다(정말 장수의 죽음을 묘사할 때는 어김없이 수시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등이 생각나네요.

7. 2권을 읽다보면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과 이끌고 온 군세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군세를 병력이 아니라 끌고 온 군선의 수로 표현하는 것이 특이한데요. 그 끄트머리 부분에 역주로 한 배마다 85명이었던가? 그렇게 쳐서 병력이 약 10만이라는 계산을 해놓았습니다. 트로이 전쟁이야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듯 하지만, 그 많은 그리스 도시국가왕국들의 왕과 10만이라는 대병력이 10년동안 자리를 비우고도 본토는 무사했을까요? 게다가 오뒤세이아를 봐도 상당수의 그리스군에게 편한 귀국길이 아니지요. 어느 정도가 과장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또 어쩌면 그점이 훗날 소수의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잡게 된 한가지 요인이었을지. 좀더 조사해 보아야겠습니다.

8. 읽다가 궁금한 점이나, 흥미로운 점이 생기면 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1. Phoibos, 아폴론 신의 별명으로 "빛나는 자", "정결한 자"라는 의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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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 2006.09.19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조조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ㅋ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6.09.19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그렇긴 해요 :) 그래도 100만을 10년 동안 끌고 다닌 건 아니잖아요? 또 나중에 고구려를 침략한 수, 당의 군사 역시 100만이 넘는 걸 보면 무조건 과장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듯 한데...

      제가 흥미로운 건 당시 그리스는 중국이나 페르시아와 같이 많은 수를 징병할 수 있는 전제 왕권이 아니라는 거죠. 경제 활동이야 노예가 대신한다 해도, 전쟁을 담당한 귀족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왕국들에서 (10만의 병력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후유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이는 '아트레우스가의 비극'이나 , '오뒤세이아'에서 이타카 섬의 왕인 오뒤세이아가 죽었다고 믿고, 그의 아내에게 무례하게 굴면서 정혼하는 무뢰한들의 모습들이 그 후유증이 생각 외로 컸음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제가 알아보면서 착각했던 사실이 있긴 한데, 포스트로 정리해야 할 듯 하네요^&^

    • Favicon of http://rbyhyun.tistory.com BlogIcon 현이 2006.09.19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그건 그래요. 그리스 사람들이 애국심이 투철했나...^^;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6.09.19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나중에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 한데, 저 시대에는 그런 듯도 하고요.
      역사를 보다 보면 희한한게 전성기 때는 뭘 해도 잘되고, 국민들의 애국심도 투철한데 망하려 할 때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죠. 애국심도 결핍되고요.

  2. Favicon of http://sudous.egloos.com BlogIcon Theodore 2007.12.05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랍어 시간에 배웠던 첫 일리아스의 구절
    Menin aeide thea, 분노를 노래하소서.
    수많은 아카이아인들을 까마귀밥으로 만든....
    일리아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분노인데, 정말로 엄청난 분노이죠.

Tertii Saeculi Crisis 위기로 치닫는 제국

독자들에게·15

'위기'의 질적 차이에 대하여 16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와 시종일관 대처에 쫓길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차이...어렵더라도 로마인 본래의 사고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시대와 눈앞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본질까지 바꾼 결과 더욱 심각한 위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차이라고 해도 좋다.


제1부 로마 제국·3세기 전반

제1장(서기 211~218년)
카라칼라 황제(211~217년 재위)


누구나 로마 시민!

p.32

공정한 세제야말로 선정의 근간...선정이란 정직한 사람이 억울한 꼴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인간은 자기 주머니를 직접 공격하는 정책에는 과민 반응을 일으키게 마련이고, 이것이 폭동이나 반란으로 발전한 뒤에는 군사력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다.


p.36

권리라는 것은 일단 주었다가 다시 빼앗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득권’과 ‘취득권’

p.38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는 사회가 이질분자, 즉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인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p.40

인간은 자기 본질에 바탕을 둔 행위를 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 법이다.


‘취득권’의 ‘기득권’화가 미친 영향

p.42

인간은 공짜로 얻은 권리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국 방위


로마의 인플레이션

p.51

계급간의 격차를 완전히 철폐하면 오히려 계급간의 유동성이 사라져버리는 법이다.


파르티아 전쟁


기동부대

p.62

정책이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도 통찰한 뒤에 생각하고 실시해야 한다. 깊은 통찰과 정반대되는 극에 있는 것이 얕은 생각이다.


메소포타미아로

p.66

로마인은 예로부터 강화는 이긴 뒤에 맺는 것이고 지고 있는 동안은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다.


p.67

강대한 권력을 부여받은 이상 그에 따른 의무도 커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지위가 높을수록 개인적인 자유는 제한된다" 이런 사고 방식이 일개 시민이라면 허용되는 일도 지위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의 바탕이 되어 있었다.


p.69

로마인도 내란이 일어나면 로마인끼리 싸웠다. 아무도 외국을 내란에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내란이라는 이름의 세력다툼은 몇 번이나 일어나지만, 외국과 결탁하여 같은 로마의 라이벌을 밀어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로마인의 특질로 꼽아도 좋을 듯하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 당장 동포의 지지를 잃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암살
마크리누스 황제(217~218년 재위)
철수
시리아의 여자
제위 탈환

제2장(서기 218~235년)
엘라가발루스 황제(218~222년 재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222~235년 재위)
법학자 울피아누스
6년간의 평화
충신 실각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
사산조 페르시아
부흥의 기치
페르시아 전쟁(1)
병사들의 파업
일차전
게르만 대책
라인 강변

제3장(서기 235~260년)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황제(235~238년 재위)
실력과 정통성
원로원의 반격
1년에 황제 다섯 명
실무가 티메시테우스
동방 원정
고대의 지정학
필리푸스 아라부스 황제(244~249년 재위)
로마 건국 천년제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
기독교도 탄압(1)
야만족의 대침입
고트족
석관
야만족과의 강화
게르만족, 처음으로 지중해에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 재위)
기독교도 탄압(2)

제2부 로마 제국·3세기 후반

제1장(서기 260~270년)
페르시아 왕 샤푸르
포로가 된 황제
페르시아에서 벌인 인프라 공사
갈리에누스 황제(253~268년 재위)
미증유의 국난
갈리아 제국
팔미라
삼분된 제국
하나의 법률
‘방위선’의 역사적 변화
군의 구조 개혁
스태그플레이션
‘장롱 저금’?
불신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268~270년 재위)
고트족의 내습

제2장(서기 270~28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275년 재위)
반격 개시
통화 발행권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다키아 포기
제노비아 여왕
일차전
이차전
팔미라 공방전
갈리아 회복
개선식
제국 재통합
비어 있는 황제 자리
타키투스 황제(275~276년 재위)
프로부스 황제(276~282년 재위)
야만족 동화 정책
카루스 황제(282~283년 재위)
페르시아 전쟁(2)
벼락

제3장 로마 제국과 기독교

연표·428
참고문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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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나의 점수 : ★★★★★

역사는 과정에 있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면,
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만큼 당사국 국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Bellum Hannibalicum 한니발 전쟁]

독자 여러분께

p.9

역사는 과정에 있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면, 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만큼 당사국 국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에서는 뛰어난 그리스인인데,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데다 한니발이라는 희대의 명장까지 갖고 있던 카르타고인인데, 왜 로마인에게 패했을까.

프롤로그

제1장 제1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64년~기원전 241년

p.24

전쟁이 끝난 지 불과 20년 뒤에 과거의 적을 자기네 지도자로 선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로마인의 이같은 성향은 포에니 전쟁을 치르는 로마에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주게 된다.

p.35

항해술에 자신이 없는 로마인은 이 '까마귀'를 이용하여 해상 전투를 육상 전투로 바꾸려고 생각한 것이다...'까마귀' 같은 신무기를 생각해낸 것은 로마에 해운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p.43

과두정치는 선거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 의회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지도층을 구성하는 이들에게는 국정 제일선에서 활약할 기회를 가능한 한 평등하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과두정치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단점 가운데 하나는 총사령관을 겸임하는 집정관이 임기중에 전과를 올리려고 애쓰기가 쉽다는 점이다...이것은 로마 집정관을 속전속결형으로 만들기 쉬워서, 포에니 전쟁 같은 장기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결함이 되었다.

p.44

지중해 세계에서 최강의 해군국으로 꼽히던 카르타고도 경쟁상대인 그리스가 쇠퇴한 뒤로는 적다운 적을 만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실전 경험을 쌓지 못한 군대는 약체화를 피할 수 없다. 기원전 3세기의 카르타고는 해운국이기는 했지만, 더 이상 해군국은 아니었던 것이다.

p.47

적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사람이나 사고 책임자에게 다시 지휘를 맡기는 것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려는 온정이 아니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그 실수에서 틀림없이 교훈을 얻었으리라는 게 그 이유니까 재미있다.

p.56

하밀카르는 움직임이 봉쇄당하는 것을 꺼렸다. 주도권은 자신이 잡지 않으면 안된다.

p.61

마키아벨리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점이지만, 공화정 로마에서는 군사령관을 겸임하는 집정관에게 일단 임무를 주어 내보낸 뒤에는 원로원조차도 작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패전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걱정없이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p.63

로마는 상대가 받아들이기 쉬운 쪽으로 강화를 맺었다.


제2장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기원전 241년~기원전 219년

p.67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장래는 결정된다. 승패는 이미 판가름났으니까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문제는 거기서 얻은 경험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p.68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긴 쪽보다 진 쪽이 더 많은 압박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p.75

로마인의 남다른 점은 뭐든지 자기들이 다 하려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기네가 제일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90

투표권으로 나타나는 권리의 확산은 병역으로 나타나는 의무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로마 군단을 구성하는 시민병도 더욱 광범위한 시민권 보유층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군단 지휘관에게 귀족과 평민의 차별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더불어, 로마라는 국가의 거국일치 체제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p.92

로마인은 체계화를 좋아했지만, 융통성이 없지는 않았다.

p.97

무장으로서 최고사령관의 능력은 백인대장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부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를 정점으로 하는 로마 명장들은 모두 백인대장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그들을 수족처럼 다룰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제3장 제2차 포에니 전쟁 전기 기원전 219년~기원전 216년

p.119

한니발이 동시대인에 비해 단연 뛰어난 점은 정보의 중요성에 착안한 점이었다.

p.134

'로마 연합'을 정치 건축의 걸작이라고 평한 토인비의 주장...로마는 이 패배자들을 피지배민족이라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소키'라는 적극적인 존재로 대우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도를 비롯한 로마의 '사회간접자본'설비에서도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지만, 한니발과 대결하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로마가 가진 진정한 힘이 되었다.

p.135

한니발이 치른 전투를 추적해 보면, 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술을 철저히 공부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가 보병과 기병의 비율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p.136

전투 결과를 좌우하는 전술은 콜럼버스의 달걀인 동시에 콜럼버스의 달걀이 아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콜럼버스의 달걀이지만, 그 방식을 답습해도 누구나 반드시 같은 결과를 낳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콜럼버스의 달걀이 아니다. 그 방식을 살리느냐의 여부는 그 방식을 실제로 구사하는 인간의 재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알렉산드로스니까 성공했지, 누가 해도 성공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니발은 알렉산드로스의 선례를 참고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독자성으로 그 방식을 살렸다.

티치노-제1회전

트레비아-제2회전

p.145

이 시대의 평민 출신 집정관 중에는 강경한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명예심이나 출세욕에 사로잡혀 그러는 것은 아니다. 호민관이 평민의 대표자였던 시대보다, 평민 출신이 귀족을 포함한 로마 시민 전체의 대표인 집정관에 선출된 시대에는 자기가 평민계급의 대표자라는 것을 더 강렬하게 의식한다. 자기 출신계급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기 뒤를 이을 평민계급 출신 집정관을 위해서라도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p.148

포위전법은 적의 주력 부대를 무력화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전술의 기본이기도 했다.


트라시메노-제3회전

p.154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 각오는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식까지 지배계급의 무능에 희생되는 것을 감수할 마음은 나지 않기 때문이다.

p.171

로마인들은 이때부터 아무리 방해를 받아도 해내고야 마는 것을 "한니발은 무엇이든 통과한다"는 한 마디로 바꾸어 말하게 되었다.


칸나에-제4회전

p.173

서구의 사관학교라면 반드시 가르친다는 역사상 유명한 칸나에 전투

p.178

31세의 장군은 로마군 사령관들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들은 적장의 책략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전쟁터로 끌어내려면 그 경계심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마치 로마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p.186

로마라는 나라가 수도에만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로마라는 나라는 면과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한니발

p.190

자신이 목적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선례는 없을까 하고, 선인들의 업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법이다. 한니발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p.192

마케도니아의 젊은 장군(알렉산드로스)은 기병이 갖는 기동력을 구사하여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군사력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군 전체를 유기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적의 주력부대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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