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어제 오후에 외출을 하면서 비가 한차례 올 거라는 일기 예보를 보았기 때문에 우산을 들고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주룩주룩 오기 시작했다. 일기 예보를 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느긋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바로 앞에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는 것도 아닌 걸 보고선 같은 방향이니 함께 쓰고 가자고 할까 하다가 그냥 비가 오는 풍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세상이 하도 험악하다 보니 괜히 작업이니, 혹은 불순한 의도니 하는 의심이 서린 눈초리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 우리 집은 초등학교 때 우리 선생님 댁과 가까웠다. 그래서 졸업하고도 몇 번 뵐 수가 있었는데, 그 선생님께 어린 따님이 있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산을 가지고 있었고, 우산을 쓰고 길을 가던 중, 그 선생님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그 아이를 쫓아가서
"우산 같이 쓰고 갈래?"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혹시나 해서 내가
"너희 집 이쪽 맞지?"
라고 물었더니,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었다. 귀여운 녀석^^ 걸어가면서 좀 친해지려고,
"이름이 뭐니?"
하고 물었더니, 그 꼬마 왈
"엄마가 그런거 모르는 사람한테 가르쳐 주지 말랬는데요?"
역시 선생님 딸다웠다. 참 똑똑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은 씁쓸했다.

앞서 걷는 그 여자를 보면서 갑자기 그 수년 전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워낙 비 맞는 걸 싫어해서 왠만하면 가벼운 3단 우산 하나쯤은 들고 다니는 나는 갑자기 오는 비에 당황하는 남자를 보면 노소를 막론하고 같이 쓰고 가는 편이다. 하지만, 여자라면 아주머니나 할머니라면 함께 쓰고 가자고 권하지만, 꼬마 아이나 젊은 처자면 모른 체 한다. 어쩌면 개인적인 성차별, 나이차별인지도 모르겠다. 또다른 의미의 소심함일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적어도 세상의 절반 이상의 남성들은 성폭력이나 원조 교제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와도, 단호히 거절할 만큼의 선량함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폭력이나 아동 성폭력의 상당수가 지인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통해 주위의 남자들을 믿어달라는 변명이나 호소 역시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성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여성과 그 가족일 것이고, 2차적인 피해자는 언제 무슨 일을 당할 지 몰라 공포심을 갖는 모든 여성들이겠지만, 단지 대부분의 가해자들과 같은 성(性)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절반 이상의 선량한 남자들 역시 간접적인 피해자가 아닐까 싶다.

비가 더더욱 세차게 내리자 앞서 걷던 여학생은 이제서야 뛰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고 중년이 되면, 우산을 함께 쓰고 가자고 권하는 여성들의 연령 커트라인은 한참 더 위로 올라갈 것이다.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진다는 데, 왜 사람에 대한 공포심은 더해만 가느냐고 세상만 탓하면서, 그런 핑계를 대면서 어쩔 수 없다는 양, 남들을 도울 기회를 하나씩 하나씩 외면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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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업 2007.02.24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부산 영도 섬마을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1989년생)-뱀띠-
    저는 아빠에게 버림받은 후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아 늘 몸과 맘이 좋지
    않은 엄마와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철부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희 아빠는 저와 동생이 어렸을 때 무책임하게도 저희와 엄마를 버리고,
    빚만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헤어지기 전 그러니까
    아빠의 사업이 잘 되었을 때는 방이 많은 큰 집에서 살았고 부모님 또한
    사이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아빠의 사업 실패로 부도가 나게 되었고 저희 집에는
    예전의 웃음과 화목보다는 빚을 독촉하는 빚쟁이들의 협박과 욕설이 집안의
    어두운 공기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가족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또다시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 더 작은 집으로 계속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난에
    빚에 쫓겨 이사를 하다 보니 영도의 작은 영구임대 아파트까지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 갑작스럽게
    닥쳐온 가난과 부모님의 이혼, 그로 인해 엄마가 겪는 마음의 상처와 병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희 집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아빠의 몫까지 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아빠와 빚쟁이들로 인한 깊은 마음의
    상처는 엄마를 엄마의 조그마한 역할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집은 늘 가난하고 밝음보다 어둠이 더
    많았습니다.
    엄마는 이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자와 해외로 이주를 해버린 남편에
    대한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빚을 갚으라는 빚쟁이들의 수많은 협박과
    괴롭힘으로 마음과 몸이 모두 병들게 되어 심할 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무료급식을 먹고 복지관의 도움을 받고
    하면 친구들이 거지라고 막 놀려대고 하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숨만 늘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오히려 수급자로 도움 받는
    것이 큰 다행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수급자로 국가와
    복지관의 도움을 받지 못 했다면, 저희 엄마는 더 많이 아팠을 것이고 난 나의
    꿈을 키우기 위한 노력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나의 동생 또한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 날에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했던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큰 울타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음악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부에서 보조받는 돈만으로 생활하기
    힘든 형편에 돈 많은 부잣집 자녀도 하기 어렵다는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음악이 너무나 좋습니다. 대학 진학 또한 음악을
    전공해서 음악교수나 작곡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주었던 음악처럼 저 또한 그런 음악을 만들어 세상이 힘들거나 외로운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작은 힘이 되고 싶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너희 집 가정형편에 너무 사치스럽다는 말을 할 때 나의 욕심
    때문에 세상에 상처가 많은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음악을 하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생각을 했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곧 나의 삶의 희망을 접으라는 뜻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에게 ‘형편이 어려우니 다른 것을
    했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잡아 주면서 ‘내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엄마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힘든 형편이지만 내 아들이
    하고 싶다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하는 엄마의 따뜻한 말에
    저는 저희 가정형편에 사치스러운 음악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어렵게
    내린 나의 꿈인 만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백 번, 천 번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혼자서 알아 가는 것보다 레슨을 통해 배우고 알아
    가는 것이 많은데 저희 집안 형편상 이러한 부분들이 해결되지 못해 저는
    학교에서 단체로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매달 10만원씩
    수업료를 내야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수업료를 내는 것이 힘들어 몇 달
    연체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참 부끄러웠지만 이렇게라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하지만 저희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신가
    봅니다. 매달 밀리는 레슨비 고지서에 맘이 많이 무거운지 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십니다. 사실 이 수기를 쓰게 된 큰 이유도 학교에서
    하고 있는 레슨비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입니다.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버스를 왕복 네 번을 갈아타야 합니다. 한 달
    교통비가 너무나 부담이 되어서 교통비가 오르고부터는 부산역에서 학교까지
    걸어다닙니다. 물론 좀 더 일찍 나와야 하고 다리도 아프고 힘들지만 버스를
    타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은 편안한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더 일찍 나와서
    좀 더 걷고 다리가 아픈 만큼 급할 때 버스를 한 번 더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차비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어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물론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매우 슬퍼하시겠지만 말이예요. 동생교육비, 제 교육비,
    생활비, 엄마 병원비만으로도 생활이 벅차고 어려운데, 저의 레슨비와
    차비까지 부담되게 하는 것이 굉장히 죄송스럽고 맘이 아픕니다. 형편은 어려운데
    저와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많고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일이 많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엄마의 건강상태 등등으로 많은 것이 힘겨우신지 어머니께서는 요즘
    들어 부쩍 더 많은 약을 드십니다. 많이 힘겨우신지 정신과 상담 횟수가
    많아지고 약도 더 많이 드시는 것 같아 맘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도 기도로 늘
    강인하게 저희를 키워주시는 엄마를 보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런 엄마를 가끔 속상하고 힘들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저희
    엄마는 가진 것 없는 형편에도 저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으시면서 저의 뒷바라지를 하고 계십니다. 요즘은 물가가
    올라 집안 형편이 더 많이 어려워졌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가에 왠지
    모를 슬픔이 수십 가지의 잔주름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웃을 때나
    눈물을 흘릴 때 언제나 나타나는 엄마 눈가의 잔주름을 보면 저도 모르게 괜실히
    힘들었던 삶이 슬퍼지려 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 지급했던 레슨비를 석 달 전부터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레슨비를 내지 못 하거나 체납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3이 되면 피아노 레슨비, 작곡 레슨비도 부담해야 제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텐데... 꿈과 이상, 희망도 좋지만
    막상 부딪히는 현실 앞에선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는
    벌써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것저것 많은 것들로 고민하시고 걱정도 하시지만
    막상 제가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면 혹시라도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저에겐
    언제나 ‘일규아, 힘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저희 엄마 또한 어렸을 때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것이 그렇게 한이 되고 상처가 되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고 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고통이 많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엄마는 그런 고통을 최대한
    저희들에게 감추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쩌면 요즘 약을 더 많이 드시고 정신과
    상담을 자주 받으러 다니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미운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엄마의 힘겨움이 조금이나마 덜할텐데 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련과 원망 섞인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엄마가 바라는 것도 제가 잘 되는 것이고 저 또한 저의 꿈을
    이루고 싶은 의지가 많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서 엄마가 그동안 힘들어하고 가슴앓이 했던 것을
    보상해드리고 엄마의 삶에 음지를 없애고 양지를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우리 가정과 제가 잘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들과, 나처럼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든든한 힘이 되고
    싶습니다. 가끔 저도 시험기간에 놀고 싶기도 하고 공부하는 것이
    싫어지기도 하지만, 엄마의 얼굴만 떠올리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이러면 안되지... 내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으면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는거야’하는 생각들이 저로 하여금 손에 연필을 쥐게 하고
    친구들에게 머물러 있던 눈을 책으로 돌려놓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
    시험에서는 전교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모두 저희 엄마 덕분입니다.
    저는 지금 부산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학등록금은
    장학금을 받고 다닐 생각인데, 그렇지 않으면 저희 가정형편에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많이 미숙하지만 감사하게도 작곡선생님께서 저의 사정과 환경을 다
    알고 이해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엄마에게
    말씀해 드리니까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비록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성공시대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엘리트가 되어 이 사회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채워져
    있었다면 오히려 나태해질 것이고 주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며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을 찾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하루 감사하고 즐겁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힘든 환경이 아니었다면 내가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음악을 주고 싶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까?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노력하는 삶을 배워 갈 수 있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며 생활하려 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부딪히는 현실 앞에 난 연습환경이 더 좋았으면, 나도
    예고에 다니는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피아노 작곡레슨을 받아봤으면
    하는 생각에 완전히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좀 못 입고, 못
    먹는 것은 차라리 그때뿐이지만 배움의 기회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는
    생각.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을 못 배우는 것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것보다 더 마음의 고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집에도 피아노 한 대가
    있어서 마음대로 연습하고 창작도 마음대로 해보고 싶지만 현재 나의 형편으로
    그러한 것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의 힘든
    환경이 나를 좀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 변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꿈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이 사치라고
    이야기해서 정말 사치인줄 알았고 저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의 꿈은 사치가 아니라 제가 충분히 이루어 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어려운 여건과 환경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수기를 쓰면서 그동안 수없이
    다져왔던 제 자신에 대한 다짐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처음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생활수기를 써보라고 하셨을 때 엄두도 나지
    않고 글 솜씨도 없어 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서툴지만
    나름대로 저의 생각을 적은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자라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런 친구들을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기에
    그들의 꿈은 절망이기보다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칡흙같은
    어둠에서 한 발짝 한 발짝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나가고 그 희망을 또 다른 절망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그래서 가끔 자신감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저는 제 꿈을 실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더 힘을 낼
    것입니다. 비록 등에 날개는 없지만 제 자신의 한 발짝 노력에 저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날개가 조금씩조금씩 만들지는 것 같습니다. 그 날개가
    만들어지면, 저는 제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철부지 동생아 ! 우리 아버지처럼 힘들다고 서로를 버리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그동안 누리지 못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제발,
    도와주세요.
    *돈준다넷/포인트백(추천인)shinillku
    :포인트백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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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저의 수기를 모두 마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저희 가족에겐, 아주 큰 힘이 됍니다.
    (도와주신)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조선일보는 공정성을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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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한번,
    사기가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돈준다넷/포인트백(가입/추천해 주시는 모든분들꼐,
    이 자리를 빌어,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좌백님의 황당한 영화라는 포스트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에고 돈 아까우셨겠다... 이 포스트를 보다 보니 나의 황당 영화 관람기가 떠올랐다. 말 그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후훗...

내가 어릴 때 소년 중앙라는 잡지가 인기있었다. 엄하셨던 아버지께서 왠일인지 소년 중앙은 꼬박꼬박 사주셨었는데, 거기서 '가디안'이라는 영화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줄거리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적어보자면,
아이를 낳은 아내를 위해 새로 이사온 집에 보모던가? 파출부던가를 구하게 되는데, 한 여자가 아이를 제물로 삼기 위해 원래 오기로 되어있던 파출부를 의문사 시키고 아이를 빼앗기 위해 부부와 사투를 벌인다는...

그 줄거리가 어린 나이에 무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스릴러 풍에 뭔가 으시시할 것 같은... 하지만, 비디오가 교육에 도움이 안된다는 아버지 엄명에 따라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난 언젠가 보고 싶은 영화로 '가디안'을 어린 기억 속에 담아두어야 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여동생과 외삼촌댁에 놀러갔는데, 외삼촌이 돈을 주시며 보고 싶은 비디오를 하나 빌려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때 정말 순진했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다른 유명한 영화를 알 리 없었고, 언제나 뇌리에 꽂혀있었던 그 '가디안'이라는 비디오를 빼든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어찌어찌 해서 비디오를 빌려들고 외삼촌네로 한걸음에 달려와 비디오를 틀었는데, 처음 부분은 줄거리대로 흘러갔다. 문제는... 중간 부분에 야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길~게... 여동생과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거의 비디오의 절반은 눈을 가리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꺼버려야 했다. 외삼촌도 무지 황당하셔서 고작 하신다는 한 마디.
"영구와 땡칠이 같은 거나 빌려오지..."
정말 순진해서 빨간 비디오란 게 뭔지도 몰랐을 때의 웃음 나오는 기억이다. 빨간 비디오라는 건 비디오가 새빨간 색이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줄 알았으니까 ;;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두가지.
  1. 외삼촌네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린 꼬마 둘에게 그걸 빌려준 걸까?
  2. 그리고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얼추 타이밍이 맞는 시기에 외삼촌네 장남이 태어났다. 그럼 혹시 그 녀석은 내 덕택에 태어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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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rborday.egloos.com BlogIcon ArborDay 2006.04.25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후. 재밌네요.
    '가디언' 끝까지 결국 못 보신건가요?

  2. Favicon of http://jskywalker.egloos.com BlogIcon 낭만카무이 2006.04.25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ㅎㅎ 결국 못봤죠.
    비디오 내용보다도,
    외삼촌이 아버지한테 이를까봐 마음 졸였다는...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이 포스트의 제목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의 제목에서 따왔다. 정글 스토리 OST에 수록된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

고등학교 때 N.EX.T와 신해철에 심취해 있던 친구녀석 덕분에 이 앨범을 들을 수 있었다. 정글스토리 - 기억이 맞다면 윤도현이 그 영화에 나오던가 했다 - 라는 영화는 망했던 걸로 아는데, 신해철이 만든 이 OST는 참 좋았었다. 언제인가 웹진에서 본 평도 아주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가사중에 있는 총소리가 나던 해에 태어난 나로서는 너무 어린 시절이었기에 그 총소리에 이어 시작된 80년대에는 그렇게 절실했던 낭만이 넘쳐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기 시작하는 건, 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고 군사정권이 물러나면서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뭔가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최루탄 가스에 코 밑에 치약을 바르던 것도 점점 빈도가 잦아들었고,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이나 옷차림은 이전과 달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중,고등학생이 된 9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과는 다른 뭐랄까... 낭만이란게 있었다.

삐삐란 것도 정말 귀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져오면 압수당하던 시절, 약속이 있으면 미리 전화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제시간에 도착하는게 예의였고, 서태지의 새 앨범이 나오면 누구보다도 더 빨리 사서 듣기 위해 발매일에 레코드 가게에 달려가 사서는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워크맨을 반복해서 돌리곤 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잽싸게 녹음버튼을 눌러 나만의 편집앨범을 만들고, 좋아하는 아이가 있으면 어렵사리 수줍게 고백했고, 편지로 속마음을 나누곤 했다.

참 지금에 비하면 번거롭고 유치한 시절이었는데, 그 때가 참 멋스러워 보이고 그리울까... 요새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불쌍해 보이고 그 낭만의 시대를 끝자락이나마 누려본 게 행운이라 느껴진다.

요즈음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네크로필리아라는 단어때문일까... 나만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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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방울에 소주 한 잔.
소주 한 잔에 쓰디쓴 추억 하나.
쓰디쓴 추억에 눈물 한 방울.
그래서 결국...
비 한 방울은 눈물 한 방울.

시야가 흐려오는 건
술기운 탓일까. 추억 탓일까.
뺨을 흐르는 건
비 한 방울일까. 눈물 한 방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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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고개를 돌립니다.
벼르고 별렀던 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웬일인지 눈물만 글썽입니다.

다른 말은 하나도 못하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준비했던 숱한 말들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말만 부지런히 되뇌였는데
그대는 웬일인지 찻잔만 매만집니다.

이제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임을.
내 사랑을 받아줄 수 없는 그대의 현실,
그것과 나는 이제 한판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누가 나가떨어지든간에 한판 거창하게
싸움을 벌여볼 것입니다.
- 이정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에서...

예전에 좋다고 생각했던 시 중의 하나... 오랜 동안 잊고 있었지만, 어제 우연히 이 시집을 들춰보다가 기억해내었다. 이 결심을 잊지 말걸...

- 060312일
written by JS 0603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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