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어제 오후에 외출을 하면서 비가 한차례 올 거라는 일기 예보를 보았기 때문에 우산을 들고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주룩주룩 오기 시작했다. 일기 예보를 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느긋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바로 앞에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는 것도 아닌 걸 보고선 같은 방향이니 함께 쓰고 가자고 할까 하다가 그냥 비가 오는 풍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세상이 하도 험악하다 보니 괜히 작업이니, 혹은 불순한 의도니 하는 의심이 서린 눈초리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 우리 집은 초등학교 때 우리 선생님 댁과 가까웠다. 그래서 졸업하고도 몇 번 뵐 수가 있었는데, 그 선생님께 어린 따님이 있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산을 가지고 있었고, 우산을 쓰고 길을 가던 중, 그 선생님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그 아이를 쫓아가서
"우산 같이 쓰고 갈래?"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혹시나 해서 내가
"너희 집 이쪽 맞지?"
라고 물었더니,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었다. 귀여운 녀석^^ 걸어가면서 좀 친해지려고,
"이름이 뭐니?"
하고 물었더니, 그 꼬마 왈
"엄마가 그런거 모르는 사람한테 가르쳐 주지 말랬는데요?"
역시 선생님 딸다웠다. 참 똑똑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은 씁쓸했다.

앞서 걷는 그 여자를 보면서 갑자기 그 수년 전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워낙 비 맞는 걸 싫어해서 왠만하면 가벼운 3단 우산 하나쯤은 들고 다니는 나는 갑자기 오는 비에 당황하는 남자를 보면 노소를 막론하고 같이 쓰고 가는 편이다. 하지만, 여자라면 아주머니나 할머니라면 함께 쓰고 가자고 권하지만, 꼬마 아이나 젊은 처자면 모른 체 한다. 어쩌면 개인적인 성차별, 나이차별인지도 모르겠다. 또다른 의미의 소심함일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적어도 세상의 절반 이상의 남성들은 성폭력이나 원조 교제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와도, 단호히 거절할 만큼의 선량함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폭력이나 아동 성폭력의 상당수가 지인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통해 주위의 남자들을 믿어달라는 변명이나 호소 역시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성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여성과 그 가족일 것이고, 2차적인 피해자는 언제 무슨 일을 당할 지 몰라 공포심을 갖는 모든 여성들이겠지만, 단지 대부분의 가해자들과 같은 성(性)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절반 이상의 선량한 남자들 역시 간접적인 피해자가 아닐까 싶다.

비가 더더욱 세차게 내리자 앞서 걷던 여학생은 이제서야 뛰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고 중년이 되면, 우산을 함께 쓰고 가자고 권하는 여성들의 연령 커트라인은 한참 더 위로 올라갈 것이다.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진다는 데, 왜 사람에 대한 공포심은 더해만 가느냐고 세상만 탓하면서, 그런 핑계를 대면서 어쩔 수 없다는 양, 남들을 도울 기회를 하나씩 하나씩 외면해 나갈 것이다.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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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님의 황당한 영화라는 포스트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에고 돈 아까우셨겠다... 이 포스트를 보다 보니 나의 황당 영화 관람기가 떠올랐다. 말 그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후훗...

내가 어릴 때 소년 중앙라는 잡지가 인기있었다. 엄하셨던 아버지께서 왠일인지 소년 중앙은 꼬박꼬박 사주셨었는데, 거기서 '가디안'이라는 영화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줄거리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적어보자면,
아이를 낳은 아내를 위해 새로 이사온 집에 보모던가? 파출부던가를 구하게 되는데, 한 여자가 아이를 제물로 삼기 위해 원래 오기로 되어있던 파출부를 의문사 시키고 아이를 빼앗기 위해 부부와 사투를 벌인다는...

그 줄거리가 어린 나이에 무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스릴러 풍에 뭔가 으시시할 것 같은... 하지만, 비디오가 교육에 도움이 안된다는 아버지 엄명에 따라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난 언젠가 보고 싶은 영화로 '가디안'을 어린 기억 속에 담아두어야 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여동생과 외삼촌댁에 놀러갔는데, 외삼촌이 돈을 주시며 보고 싶은 비디오를 하나 빌려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때 정말 순진했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다른 유명한 영화를 알 리 없었고, 언제나 뇌리에 꽂혀있었던 그 '가디안'이라는 비디오를 빼든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어찌어찌 해서 비디오를 빌려들고 외삼촌네로 한걸음에 달려와 비디오를 틀었는데, 처음 부분은 줄거리대로 흘러갔다. 문제는... 중간 부분에 야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길~게... 여동생과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거의 비디오의 절반은 눈을 가리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꺼버려야 했다. 외삼촌도 무지 황당하셔서 고작 하신다는 한 마디.
"영구와 땡칠이 같은 거나 빌려오지..."
정말 순진해서 빨간 비디오란 게 뭔지도 몰랐을 때의 웃음 나오는 기억이다. 빨간 비디오라는 건 비디오가 새빨간 색이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줄 알았으니까 ;;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두가지.
  1. 외삼촌네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린 꼬마 둘에게 그걸 빌려준 걸까?
  2. 그리고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얼추 타이밍이 맞는 시기에 외삼촌네 장남이 태어났다. 그럼 혹시 그 녀석은 내 덕택에 태어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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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바침

L. Log/잡담 2006. 4. 21. 08:52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이 포스트의 제목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의 제목에서 따왔다. 정글 스토리 OST에 수록된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

고등학교 때 N.EX.T와 신해철에 심취해 있던 친구녀석 덕분에 이 앨범을 들을 수 있었다. 정글스토리 - 기억이 맞다면 윤도현이 그 영화에 나오던가 했다 - 라는 영화는 망했던 걸로 아는데, 신해철이 만든 이 OST는 참 좋았었다. 언제인가 웹진에서 본 평도 아주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가사중에 있는 총소리가 나던 해에 태어난 나로서는 너무 어린 시절이었기에 그 총소리에 이어 시작된 80년대에는 그렇게 절실했던 낭만이 넘쳐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기 시작하는 건, 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고 군사정권이 물러나면서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뭔가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최루탄 가스에 코 밑에 치약을 바르던 것도 점점 빈도가 잦아들었고,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이나 옷차림은 이전과 달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중,고등학생이 된 9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과는 다른 뭐랄까... 낭만이란게 있었다.

삐삐란 것도 정말 귀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져오면 압수당하던 시절, 약속이 있으면 미리 전화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제시간에 도착하는게 예의였고, 서태지의 새 앨범이 나오면 누구보다도 더 빨리 사서 듣기 위해 발매일에 레코드 가게에 달려가 사서는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워크맨을 반복해서 돌리곤 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잽싸게 녹음버튼을 눌러 나만의 편집앨범을 만들고, 좋아하는 아이가 있으면 어렵사리 수줍게 고백했고, 편지로 속마음을 나누곤 했다.

참 지금에 비하면 번거롭고 유치한 시절이었는데, 그 때가 참 멋스러워 보이고 그리울까... 요새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불쌍해 보이고 그 낭만의 시대를 끝자락이나마 누려본 게 행운이라 느껴진다.

요즈음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네크로필리아라는 단어때문일까... 나만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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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방울에 소주 한 잔.
소주 한 잔에 쓰디쓴 추억 하나.
쓰디쓴 추억에 눈물 한 방울.
그래서 결국...
비 한 방울은 눈물 한 방울.

시야가 흐려오는 건
술기운 탓일까. 추억 탓일까.
뺨을 흐르는 건
비 한 방울일까. 눈물 한 방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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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고개를 돌립니다.
벼르고 별렀던 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웬일인지 눈물만 글썽입니다.

다른 말은 하나도 못하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준비했던 숱한 말들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말만 부지런히 되뇌였는데
그대는 웬일인지 찻잔만 매만집니다.

이제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임을.
내 사랑을 받아줄 수 없는 그대의 현실,
그것과 나는 이제 한판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누가 나가떨어지든간에 한판 거창하게
싸움을 벌여볼 것입니다.
- 이정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에서...

예전에 좋다고 생각했던 시 중의 하나... 오랜 동안 잊고 있었지만, 어제 우연히 이 시집을 들춰보다가 기억해내었다. 이 결심을 잊지 말걸...

- 060312일
written by JS 0603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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