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 본 영화 중에 가장 배꼽을 잡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순진하고 주변머리 없으면서도 깐깐하고 고집은 있는 박용우(황대우)와 세련되보이지만 실은 푼수에 살벌하기까지 한 최강희(이미나, 실은 이미자)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는 조연 조은지(백장미)까지,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은 스토리이지만 캐릭터들은 생동감있고 대사를 뱉어낼 때마다 뒤로 넘어가는 그런 영화였다. 갈등 곡선의 아슬아슬한 오르내림도 보는 시간 대부분 몰입하게 만들고, 낯뜨거운 대사들도 가끔 숨어있지만 비슷한 류의 미국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급하고 지저분할 정도까지 선을 넘지는 않는다.
대한 2, 30대의 반응은 너무나 뜨거운 것 같아서 찬사는 이쯤 해두자. 끝날 때까지 정신 없이 웃고 난 후에 되새기다 보니 감독이 관객에 대한 비꼼을 숨겨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죄와 벌 몰라요? 토스토예프스키?
도스트인지, 토스트인지 그거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저 장면을 보면서 깔깔대며 웃는 관객 중에 솔직히, '죄와 벌'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 얼마나 될까? 내 경우엔 수능이 끝난 뒤 딱 한 번 읽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 가장 힘들었던 책 중 하나인 것 같다. 처음에 주인공이 노파를 죽일 때까지는 그런대로 참고 읽었으나, 점점 내면 묘사가 길어지니 마치 행간의 최면에 걸린 듯 정말 힘들었다. 솔직히 줄거리만 대충 기억나지 명문장 하나 기억 안난다.
2. 혈액형에 따른 성격 구분
미나가 별자리 이야기를 하자 대우의 눈치를 살피는 대우의 친구, 하지만 미나는 별자리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무사히 넘어가는 듯 싶다. 그런데 다시 자신은 AB형이라며 혈액형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자 발끈한 대우.
그게 뭐가 과학적이에요? 죄다 헛소리지!
헛소리요?
백인들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우생학에서 처음 출발한 게 바로 혈액형 이론입니다! 독일에 유학한 일본 사람 하나가 그걸 처음 들여왔고, 정작 독일 사람들은 그 이론을 폐기했는데 나중에 일본 작가 하나가 지 주위 사람 2,300백명 대상으로 조사해서 책 하나 냈는데 그걸 계속 우려먹고 있는 거라구요! 전세계적으로 혈액형 믿고 있는 나라가 일본하고 한국밖에 없단 말입니다.
나 역시 혈액형 이야기를 맹신하다시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는 짜증나지만, 겉으로는 그냥 별 반응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 상당수는 혈액형 성격학을 맹신하고 혈액형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겠지. 맹신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처음 만나도 혈액형으로 상대방을 재단하려 드는 이들 보면 정말이지 친하고 싶지 않다.
3. 거꾸로 걸려있는 몬드리안의 그림
어느 집에나 웬지 거실에 하나 걸어놓으면 있어 보일 것 같은 그림. 대우가 바꿔달 때까지 저게 거꾸로 걸려있는 줄 나도 몰랐다. 아니, 그 그림에 신경도 안썼다는 게 더 정확하지만 ;;
그밖에도 영화 내내 관객들을 찔리게 할 만한 대사와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너무나 교묘해고 코믹해서 대부분은 웃느라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만, 그리고 깨닫더라도 다음 스토리에 몰입해서 잊을 정도로만. 게다가 결말마저 관객들이 은근히 기대하는 대로는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대우의 모습은 천연 기념물에 가깝고, 미나의 모습이 상당수의 요즘 젊은이, 우리들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고추장남, 된장녀 논란에서처럼 옆에 두꺼운 책 하나 끼고 외모와 돈으로만 자신을 치장할 줄 알지 머리는 채우려 하지 않는... 결론은, 항상 공부하자. 나 역시 머리 비었다는 소리는 듣기 싫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