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과 애니로 인기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영화, 만화책이나 애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보았다. 아,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인 대학생 야가미 라이토(후지와라 타츠야)가 원래는 천재 고등학생이었다는 것, 달랑 하나 빼고는.
만화책이나 애니를 영화화한 것 치고 괜찮은 영화 없다지만,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선 아주 형편없지는 않았던 듯 싶다. 만화나 애니를 보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보는 도중 중간중간 끊기고 비약되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긴 스토리를 짧은 시간에 담아내려니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를 본받아 법관이 되려는 천재 모범생 라이토는 죄를 짓고도 법망을 피해 죄값을 치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있음을 알고 분노한다. 그런 그에게 비오던 어느날 우연히 Death Note, 말하자면 살생부가 주어진다. 죽이고 싶은 자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내고, 그 노트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이름이 적힌 자는 죽게 된다는 것. 라이토는 그 노트를 이용해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범죄자들을 처벌한다. 또한 그 노트 사용법에는 그 이외에도 여러가지 옵션(?)이 적혀있고 이 여러가지 옵션들이 가져오는 예기치 못한 결과들 때문에 일본 경시청과 FBI 등 수많은 수시기관들이 단서도 잡지 못하던 중, 역시 천재 탐정인 L(류자키, 마츠야마 켄이치)의 활약으로 단서를 하나 하나 잡아가게 되고, 라이토와 L은 생명을 건 두뇌싸움을 벌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심판자, '키라'(키라, 키라 할 때마다 자꾸 건담 시드가 생각나는 '_'a)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진다. 키라가 정의의 심판자라는 쪽과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인명을 살상하는 흉악범이라는 쪽. 키라의 정체를 밝히려는 L과 수사기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키라를 흉악범이라고 단정하자 라이토는 내심 반발한다. 하지만 혐의를 벗기 위해 점점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이는 라이토를 보며 Death Note의 원주인이면서 라이토를 따라다니는 사신 류크는 결국 사신보다 더 사신답다는 말을 한다.
선량하고 두뇌가 뛰어난 한 인간에게 정의를 수호하고 죄를 심판할 권한, 말하자면 신의 권한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면 이 세상의 악은 사라질 수 있을까? 집단은 분명 불가능하고 생각한다. 니부어의 '도덕적인 인간, 비도덕적인 집단'이라는 주장처럼 집단에게 권력이 주어질 때 어떻게 절대적으로 부패하는지는 더 실험해볼 필요도 없음을 역사가 증명해준다. 중세 기독교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희생시켰는지, 타락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백성을 위하여 정권을 잡았다는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얼마나 비윤리적인 범죄들을 저지르는지.
하지만, 그 권력이 절대적으로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면 그 권력은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어쨋건 나는 불완전한 인간의 인간성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단순한 실수로 인한 것은 제외하더라도, 결국은 라이토와 같은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 영화 초반부에 라이토가 구하게 되는 여자 아이돌 스타, 버스 광고에 요란하게 붙어있기까지 하고 중간에 자주 나오길래 조금 눈에 거슬렸는데, 역시 마지막에 속편의 암시를 위한 것이었다.
◆ 영화의 결말 부분에 처음으로 라이토를 만난 L이 콘소메를 먹고 있는 장면, L은 라이토의 속임수를 눈치 챈 것일까? 아니면 라이토와 L의 취향이 같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