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아까 내 손가락을 자네에게 펴 보였어. 자네는 다섯 개로 보았지. 기억하나?
네.
오브라이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다섯 개지. 다섯 손가락이 보이나?
네.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았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하기 전, 한순간 다섯개로 보인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생각도 들이 않았다. 그러더니 다시 정상적인 상태가 돌아왔다...오브라이언의 새로운 가르침이 그의 텅 빈 곳을 채워 절대적인 진리로 믿게끔 되고 둘 더하기 둘이 필요에 따라 셋도, 다섯도 되는 걸로 보이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이번에 읽을 때는 가능한 한 끊어지지 않게 정독하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책을 들다 놓다 하다보니 이번에도 날림 독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듯 싶습니다.

  1. 포르투갈에서 베링 해협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북부지역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2. 다른 두 나라보다 작고 서쪽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중국과 그 남쪽 지역, 일본 제도 및 (변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만주, 몽고, 티벳 등을 장악한 이스트아시아
  3.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대서양 제도 및 아프리카의 남부를 장악한,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

이 세 개의 전체주의적인 초국가가 소모적인 전쟁을 계속하며, 한편으로는 국민들을 통제하는 20세기 후반의 세계가 1949년에 조지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입니다.

오세아니아는 영사[각주:1]를 주 철학으로 하는 대형[각주:2]의 지도 아래 극단적으로 통제받는 나라입니다. 모든 인간은 당에 충성해야 하고 심지어는 성관계까지도 당에 충성할 소모품을 생산할 목적으로만 허용되며 일상 생활에서도 가정마다 비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당의 가르침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하고, 동시에 감시당합니다. 경제와 과학 기술은 다른 두 국가와의 전쟁을 위한 용도로만 유지, 발전되고 철학, 문학, 예술 등은 거의 말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당의 진리성에서 근무하는 말단 당원입니다. 아, 일단 당의 네 부서들을 소개하자면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거짓말을,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아사(餓死)를 담당하고 있습니다.[각주:3] 당의 부서들 명칭이 반어적이죠. 여기서 윈스턴이 일하는 진리성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언어, 역사를 당의 목적에 맞게 수정하고 뉴스와 기사들을 조작하는 곳입니다. 윈스턴은 당원이기는 하지만 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소문으로만 듣던 형제단의 일원이 되어 당을 전복시키는데 참여하기를 꿈꿉니다.

전쟁과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주위가 온통 미치광이들 뿐인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윈스턴은 어느날 내부 스파이라고 의심하던 줄리아라는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뒤이어 이전부터 형제단일 것이라고 추측했던 오브라이언이라는 고위 당원을 통해 형제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오브라이언은 형제단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골드스타인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책을 윈스턴에게 주고 윈스턴은 외딴 빈민가에 몰래 방을 구해 줄리아와 사랑을 나누며 틈틈히 그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행복도 잠시, 윈스턴과 줄리아에게는 차라리 죽음보다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도 애초에 사회주의자였다고 하죠. 하지만 그는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풍자한 동물농장과 이 1984년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그가 20세기 사회주의의 문제점만을 경고하려 했다고만 생각한다면 이 소설을 반 정도만 이해한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조지 오웰이 경고한 미디어 조작을 통한 정보 왜곡이나 전자 감시, 전쟁을 통한 여론 환기 등은 오늘날의 심지어 선진 국가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점들이니까요.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갈수록 번영하고 권력의 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체의 발달로 인해 정보 전달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으로 이 소설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습니다.

(과거의) 지배집단들은...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을 문제삼으며, 그들의 백성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는 무관심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어떠한 권력이든 시민들을 끊임업시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었고, 영화와 라디오로 이것은 더욱 촉진되었다. 텔레비전의 발전으로 하나의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의사에 완전히 복종하고 모든 국민의 의사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각주:4]


조지 오웰이 경고하던 어두운 미래는 다행히 오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편히 앉아서 이런 잡다한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소설 속의 사회에서는 펜으로 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조지 오웰의 지나친 비관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주(東洲) 이용희(李用熙) 선생은 미래의 세계정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소설보다는 살만하게 된 건 조지 오웰이 틀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조지 오웰과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했기 때문일런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정부의 전자 시스템을 비판할 때 누구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Big Brother라는 명칭을 들먹이는 것, 이런 것들만 봐도 조지 오웰의 통찰력을 높이 사야 하지 않을런지요. 더구나 이 책의 미래는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전쟁관이라든가, 정치 공학적인 측면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이 정말 자주 눈에 띱니다. 덕분에 다음에 올릴 독서기가 정말 깁니다. 빼놓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요.

이번에 읽으면서 물론 이 소설이 러브 스토리는 아니지만 윈스턴이 줄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이 참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이미 한 번 읽어서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그 부분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서 슬펐습니다. 사랑은 세상을 밝게 비추기도 하고 파멸의 늪에 빠지게도 하나봅니다. 결국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소설에서의 윈스턴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는 대형[각주:5]의 커다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택한 유형(流形)이여!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1. INGSOC(England Socialism), 영국식 사회주의 [본문으로]
  2. Big Brother [본문으로]
  3. p. 221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에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본문으로]
  4. p. 209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에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본문으로]
  5. Big Broth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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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3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7.02.24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맞습니다. 1949년입니다 ;; 제목에는 맞게 써놓고 오타가 났네요 ^_^;;

      저는 부끄럽게도 고등학교 때 논술 대비로 줄거리만 외우다가 대학교 때 처음 읽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신대로 문체가 간결한데도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생생해서 정말 소름끼치게 만들죠. ㅠ.ㅠ
      말씀하신 부분도 그렇고 현대에 대한 통찰력이 정말 여러 부분에 보여서 하나의 글에 다 담지 못했습니다.

  2. Favicon of http://sparkstar.tistory.com BlogIcon sparkstar 2007.02.24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지 오웰이라 하면 딱 기억나는 것이 '동물농장'이군요.
    사실 이 동물농장도 뭐랄까 조금 동화같은 느낌이었는데 머리커지고 나서 보니 참 무시무시한 내용이더군요...
    요즘에 무슨 책 읽을까 고민했는데 1984년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실 이거 읽어보지도 않아서 뭐라 댓글을 못달겠네요 *^^*

    • Favicon of https://juny.tistory.com BlogIcon 빠리소년 2007.02.24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우화라는게 필요한가봅니다.
      무시무시한 내용을 그대로 뱉어버리면 논란과 저항감만 불러일으킬테니까요 :)

      저는 이제 동물농장을 읽으려 하는데, sparkstar님과 크로스? 하하!
      읽고 포스팅해주시면 저도 가서 sparkstar님의 생각을 배울텐데요. ^^

  3. ~.~ 2008.03.03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ice refl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