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죄다'라는 골빈해커님의 글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 글 내용도 짧고 그냥 개인적인 단상 형식으로 쓰신 듯 해서 그냥 읽고 지나칠까 했지만, '단언컨데'라는 단어가 조금 맘에 걸려 글을 써본다.
맞다. 노력도 하지 않고 결과를 바라는 경우 '가난은 죄다'라는 말이 맞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어떨까.
맞다. 노력도 하지 않고 결과를 바라는 경우 '가난은 죄다'라는 말이 맞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어떨까.
- A라는 남자는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의 수술비를 대면서 두 명의 어린 동생을 양육해야 한다. 게다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하면서 유산으로 남긴 10년 동안 갚아도 모자랄 만큼의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 B라는 남자는 철없던 시절 단 한번의 치명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정신을 차린 그는 겜방 알바라도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전과가 있는 그를 아무도 써주려 하지 않는다.
- C라는 여자는 겜방 알바를 하던 중, 전부터 추근대던 겜방 알바 사장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 그녀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지만,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남자들만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직장을 유지할 수가 없다.
- D라는 남자는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10년 전엔 '이정도 돈이면 집을 사서 우리 가족 행복할 수 있겠지.'라며 열심히 일했건만, 10년이 지난 지금 집값은 배나 뛰어 장만할 수나 있을지 고민이다. 그런 그가 만난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아버지가 부자였던 친구 녀석은 아버지의 돈을 잘 굴려 미국에도 별장을 몇 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의 경우들은 물론 꾸며낸 상황이긴 하지만, 있을 법도 한 경우들이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을 본다면 '가난은 죄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매력은 왠만큼 노력하면 누구나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위의 약자(소위, 가난한 자들 뿐 아니라)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보장 제도를 강화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모두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약자가 가난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비록 결과적으로 빈곤층에 속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더라도 네번 째 경우처럼, 출발선이 다른 데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은 어떨까.
자본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아무리 '적자 생존'의 진화론이라 해도 인간의 세계는 약자는 모두 도태되는 동물의 세계가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약자에게 친절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난은 죄가 아닐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