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070329 12:26 공지]

TNC측에 불필요한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글의 상당 부분을 삭제합니다. 글을 발행하고 댓글이 달리는 순간 제 글이 저만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더 큰 원칙에 따라 삭제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 건은 분명 TNC 측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까지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올린 측은 공지사항란에 도대체 최근 추천글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누구나 납득할 만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윗 스크린샷에 보면 여섯 개의 글 모두 많은 추천이나 북마크가 달린 것도 아닙니다. 일부 글의 경우 조회수조차도 그리 많지 않지요). 이올린의 존재 이유는 정말 블로거들에게 유익하고 알찬 포스트를 소개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선정적이고 관심을 끄는 제목과 내용들로 트래픽을 증가시키기 위함입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성의있는 답변이 아닐 경우, 최악의 선택으로 정통부에 오늘 새벽에 찍은 페이지 전체 스샷과 함께 신고할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부 측에서 대응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포털 사이트의 음란 게시물 때문에 정부 측 신경이 곤두서 있을텐데 저 역시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 윗 글에 언급된 블로거 분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자칫 인신 공격이 될 것 같아 생략합니다만, 부디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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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은 양극화라는 괴물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올블로그의 개편 역시 그와 비슷한 안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잡담을 쓴 적이 있다(내가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아 결국 비공개로 놔뒀지만).

올블로그와 메타블로그, 웹 2.0의 신화

최근의 올블과 관련해서 가장 동의하고 공감하는 글 중의 하나.

하지만 나는 언제나 시스템보다는 운영하고 참여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정녕 양극화를 원하는 걸까?
TAG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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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펜님의 가난의 본질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 남긴 댓글을 옮겨본다.

부의 불균등이 건강, 교육 등의 보다 근본적인 불균등으로 이어져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 저도 이것이 가난한 자의 꿈을 꺾는 진정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은 그럴듯한 이 괴물은 기득권자들에게 낮은 확률의 역전의 기회도 뺏기지 않을 무슨 결정적인 보구를 선사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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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블로그에도 가뭄에 콩나듯 정치 이야기를 쓰곤 한다.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모른다. 내가 정치 이야기를 끼적이는 경우는 '아.. 저 인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치가 떨리거나, 무엇인가를 배울 때가 있을 경우(대부분 타산지석이니 문제지만), 두가지인 것 같다.

올 연말이 되면 온 동네가 정치 이야기로 지겹게 시끄러울 테니, 연초에 미리 화풀이하고 그때 잠잠하련다.

#2.1
예전 대학생 시절에 지극히 사적인 용무로 경복궁역 근처 조선일보의 한 사무실을 몇 번 드나든 적이 있다.[각주:1] 그 몇 번 중에 한 번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대부분이 윈도우 쪽으로 다가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는 행렬을 바라보면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허허,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제 빨갱이 세상이 되겠구먼...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정말 충격적이어서 조금의 부풀림도 없이 똑똑히 기억하는 두마디다. 몇 번 언급했다시피 난 그때나 지금이나 노무현 지지자는 아니지만, 이왕 대통령이 된 마당에 국가를 위해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머리 허옇게 센 어르신들은 대통령이 청와대에 채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노무현 탓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기왕이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응원하는 평소 성향처럼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면서 마음 속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을 편들었다. 그때 이미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이딴 식으로 나올 줄 알았지만, 정말 이딴 식으로까지 할 줄은 몰랐다.

#2.2
백년 가는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누구의 말이 무색하게 열린우리당이 창당한지 몇년이나 지났다고 만약의 경우 세갈래로 찢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코미디도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계파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포부는 어디로 갔는지 위기가 닥치자 사수파니 김근태 계열이니 정동영 계열이니 갈기 갈기 찢어질 판이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지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 문을 두드리고 있단다. 몇년 전 열린우리당은 무엇인가 다를 거라는 어떤 이들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었지만 맞지 않기를 바랬던 예감이었기에 누구에게 자랑할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정치인이 하는 말은 누가 하더라도 한두 수 쯤 새겨들으련다. 이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수단이 급조된다면 결과 역시 좋을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2.3
어떤 블로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업적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타파, 참 중요하다. 그런데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꼭 무능함을 증명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꼭 경제나 부동산 정책에서의 무능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분야에서도 충분히 무능한 듯 보이지만, 이전 정권들에서의 누적된 문제들도 없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치 문제, 언론 문제 등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철학을 모르겠다. 대통령의 Think Tank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삼국지에서 제갈 공명이 유비에게 방통은 일개 마을, 또는 군이나 다스리고 앉았을 수준의 인재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반대의 상황으로 정말 될 줄 몰랐던, 그래서 그런건지 정말 준비 안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맞이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훗날을 위해 이런 학습효과가 필요한지도.
  1.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자면 조선일보를 위하거나 조선일보에 득이 되는 용무는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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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연말의 여성부 파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맹세하건데, 성매매라고는 눈길도 주지 (못한 게 아니라) 않은 이로써 남자이지만 비교적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과연 여성부의 '성매매 예방 다짐 이벤트'인지 뭔지는 송년의 대화거리였다. 이것이 BBC기사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재미있는 건 적어도 내 주위의 반응들을 살펴보면, 여성부를 성토하는 남자들과 별 반응을 나타내기를 회피하거나 관심없는 여자들, 그리고 (주로 나와 친한 벗들인)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의 세 부류로 나눠지는 것 같다.

분명 여성부가 한 행태는 뻘짓거리 맞다. 내가 성매매를 할려고 마음 먹었으면 안하겠다고 도장 찍고 지원금 받아서 성매매하러 갔겠다. 예전의 내 견문으로 미루어볼 때 저 이벤트 하자고 제안한 사람, 공무원인지 시민인지는 몰라도 좋은 아이디어 냈다고 무슨 상품권이나 포상이라도 하나 받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부 부처의 여느 뻘짓거리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에 폐지해야 할 정부 부처 천지인데...

내가 이 희대의 쇼에서 정말 주목하는 건 남성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여성부를 성토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성들의 성매매에 대한 옹호의 감정을 잠재적으로 투영하는 것일까. (대부분 여친이 없는 경우겠지만) 대학생 남자들이 군대 가기 전날 송별회를 위해 학우들이 모여 술 마시다가 여학생들이 먼저 자리를 뜨면 선배들이 그를 데리고(?) 가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알기로는 여학생들도 다 안다. 솔직히 대학교에 입학한 나에겐 충격이었다. 여기저기서 잠재적 성구매자 취급하네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내 친한 벗들이나 소수를 제외하고 내 주위에서도 성매매에 대해 완전히 결백한 사람이 거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남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희귀종 취급한다. 내 주위가 성적으로 너무 문란한 걸까? 아니, 난 내 주위 환경이 상당히 도덕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성부가 한국을 세계적으로 망신시켰다고 생각하면서, 국가에서 근절하려 하는 성매매가 이렇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묵인화 되고 있는 현실이 더 망신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내가 보기엔 어느 정부 부처나 자행하고 있는 탁상 행정인데 유난히 여성부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작년 '된장녀' 혹은 '노현정'사건 때 어느 블로그에서 우연히 본 문구가 생각난다. 올블이나 IT업계 종사자들 중에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라고.

여성부가 뻘짓을 하기는 했지만 성매매의 폐해를 자각하고 근절하자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론이 여성부에 대한 집단 공격으로 끝나버렸다. 한국의 토론 문화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에너지 낭비 현상이다.

내가 너무 도덕적으로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란걸까...?

덧 하나. 싸잡아서 남성들에게 던지는 글이지만 아직도 많으리라 바라마지 않는, 성매매에 대해 결백한 남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나 역시 남성이다.

덧 둘. 다른 나라는 통계적으로 한국보다 성매매율이 더 높다는 자료를 들이대시며 망신이 아니라고 하실 분들. 그 나라 문제는 그 나라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지, 거기서 한국의 문제가 왜 옹호되는지. 그럼 A라는 나라는 굶어 죽을 정도로 못살고 한국은 조금 더 잘사니 우리는 A라는 나라 보면서 만족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 통계 속의 한 성매매 여성이 내 지인이라고 생각해보라. 통계는 통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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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Log/잡담 2007. 1. 4. 20:29
며칠 전 새벽 영화 음악 라디오 프로를 들으며 마우스를 따닥거리다가 아나운서의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모든 로드무비는 성장영화다.
흥미로운 명제다. 로드무비가 형성되고 발전하게 된 영화사적 배경은 생략하더라도, 인간의 성장을 다루기 위해 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한다니!

그 명제를 듣다가 곁길로 빠져버린 생각. 아닌게 아니라 정말 여행은 우리를 성장시켜 준다. 우리의 외적인 그리고 내적인 시야를 넓혀준다. 여행은 무엇인가를 버리기 위해 떠나는 이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얻고 온게 해주며,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이들에게는 버릴 줄 아는 미덕을 배우게 해준다. 목적지에서 사진을 박는 정도의 의미에서의 여행이 아니라 여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정말 멋진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는 것은 피안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현실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과 과감히 맞서 싸워야 하는게 옳지만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도피처를 꿈꾼다. 술이나 담배같은 기호품이든, 유희든, 여행이든... 역마살이나 방랑벽이라는 단어는 삶의 양념이 되어야 할 여행이 도리어 인생을 과도하게 침범해버린 경우에 사용된다.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켜주고 휴식을 주는건 맞지만, 현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행에서의 행복감은 뒤로 한채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받으며 현실과 싸워나거나 타협한다.

사람이 진정 성장하려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이 도가니탕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저 바깥 세상에서가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모든 로드무비는 성장영화일런지 몰라도, 모든 여행이 사람을 성장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엔 사람을 퇴행시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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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

L. Log/잡담 2006. 12. 6. 21:58
영화 '달콤한 인생'의 영어 제목은 'A Bittersweet Life'다. 굳이 직역하자면 '달콤-쌉싸름한 인생' 정도? 이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달콤한 인생'이란 한국어 제목은 반어적이고 극적이지만, 영어 제목은 더 적나라한 반면 우리의 인생을 닮아있다. 술중에 달콤-쌉싸름한 인생을 닮은 술은 단연 소주가 아닐까? 쓴 맛 투성이인 것 같지만, 어떤 날은 정말 단 맛이 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단 맛이 날때가 언제나 기분 좋은 때는 아니다. 아직 20대인 내가 느끼기에도 소주란 녀석은 정말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술이 무서운 달이 돌아왔다. 하긴 불황이다, 뭐다 해서 주위에서도 이런 말이 무색해지기도 하고 나 역시 술을 마시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술을 좋아한다는 말도 점점 옛말이 되어가긴 하지만, 역시 12월에 상대적으로 술자리가 많은 건 틀림없지 않을까.

술은 처음 배울 때가 중요하다는 말은 절대로 옳은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아버지나 어른들이 주시는 술 한두잔 정도 밖에 마시지 못했던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이 소주란 녀석은 너무나 썼다. 결국 나는 소주를 혀에도 닿지 않도록 목구멍으로 털어넣는 방법으로 이 녀석을 상대했다. 선배들이 말했다.
"얘 소주 잘 마시네?"
하지만, 내 독특한 술버릇 덕에 내 속은 더 망가졌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주의 단맛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술을 털어넣는 버릇이란 좀처럼 버리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냈었다.

소주의 도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하더라. 여느때처럼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넣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너도 술을 목구멍에 털어넣냐?"
친구는 갑자기 희한한 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다. 그날은 내내 소주를 입안에 머금고 혀로 굴려보다가 삼켰다. 쓴맛은 더했지만, 뒤끝은 더 편한 것도 같다.

지금까지 나는 가급적이면 삶의 쓰디씀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견딜 수 밖에 없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억지로 목구멍에 털어넣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고통과 쓰디씀과 대면해서 맞서 견뎌보는 것도 필요하고 질게 뻔한 게임에 기꺼이 몸을 던져보는 것도 자신을 위해 좋았을 텐데, 그런 면에서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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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기에 남아있지만, 블로그상에서 삭제되었으므로 링크를 밝히지 못하는 글.

집을 고치는 사람의 목적은 그 집을 지키려는 것일까, 부수려는 것일까? 고치려다 더 부수고 마는 능력의 문제는 별개로.
보수, 수구적이던 나라에서의 개혁이란 결국은 보수를 지키겠다는 것일까, 진보를 지키겠다는 것일까? 개혁하려다 애꿎은 서민들 다 잡는 능력의 문제는 별개로.

애초에 뻔했던 것을, 자신들이 속아 놓고 누가 누굴 욕하지? 이라크 파병도, FTA도 당연한 수순임을.
어떤 부분에선 안타까운 마음은 든다. 단지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 시간에 배우던 열성인자, 우성인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 정당의 무능함도 질릴 정도로 엄청나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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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님이 이 글을 보실 것을 알기에 좋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점 뿐만 아니라 세부점에서도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자녀가 정말 좋은 글을 쓰게 하고 싶으면 어린 시절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세뇌시킬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들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녀의 호기심에 대한 적절하면서 균형잡힌 대답은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식 수준이지요.

하지만 저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주장이고, 과연 어릴 때부터 '짜라투스트라'를 읽는다고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어질까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연습시킨다고 한국의 모짜르트가 나올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바보스런 부모 아래서는 천재도 바보가 되기 십상입니다. 정말 천재라면 부모가 그렇게 시키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고, 천재가 아니라면 지레 질려서 오히려 부모가 강요하는 그 분야에 거부감을 느낄 확률이 높습니다.

어린 자녀에게 책을 즐겨 읽는 습관을 들게 하고 싶으시면, 저희 부모님처럼 그저 디즈니 명작 동화 한 질을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감히 말하건데 저는 저 디즈니 명작 동화 한질이 적어도 대학까지의 인생을 좌우했습니다. 저 동화집이 계기가 되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동화에서도 인간의 편견이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도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시험에서 외국어 영역의 상당한 지문은 읽어볼 필요도 없이 답을 고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특히 고등학교 영어 문제, 상당한 지문을 저 디즈니 명작 동화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싶은 이야기에서 지문을 따왔더군요).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제 앞으로의 인생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책을 읽는 습관을 통해 제가 선호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나 글도 진득하니 읽어보아야 하는 이유를 배웠거든요.

좌뇌/우뇌 문제 역시 뭐든지 지나치게 쪼개서 바라보려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인 논거는 아니지만, 관련된 최근의 한가지 사건을 들어보렵니다. 얼마전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훑어보신 분들은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분께서 위기의 원인 중 한가지로 '극도의 분과주의'를 꼽으셨는데 저는 거기에 공감합니다. 오늘날 그렇게 과를 쪼개대서 그 분야의 천재나 전문가가 더 많이 나오고 있나요? 전문적으로 그렇게 잘 나눠서 가르치셔서 지식은 많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이 양산되고 있나요? 기술이 중요한 줄만 알고 정작 사람은 뒷전인 사람들은요? 학자라면서 자신만의 것을 탐구하거나 세상을 좀더 좋게 바꿔보려는 생각은 안하고 케케묵은 책과 사상들만 파고 있는 사람들은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뉴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습득하면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명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요?

인간이라 함은 며칠 전의 글에서 썼듯이 머리는 차가우면서 가슴은 따뜻해야 버젓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좋은 가치란 어느 한쪽만 만족시킨다고 성립되는 것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글을 머리로만 쓴다고 가슴으로만 쓴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이님의 말씀처럼 명문은 이성을 납득시키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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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다른 글을 쓰려고 했는데, 현이님의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보고 오늘은 이 문제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현이님의 블로그에 댓글로 달았듯이, 저는 제 개인적인 경험들로 인해 "남녀간에는 우정이 존재하기 힘들다(존재할 수 없다가 절대 아닙니다)"라고 생각하는 터이지만, 현이님의 글이 대부분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습니다. 이런 것은 남에게 설득하고 강요한다고 납득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 글 역시 다른 이를 설득하거나 현이님의 글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닌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을 끼적였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우선 '친구'나 '우정'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전에 친구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심지어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친구의 범주가 바뀔 수 있는데 사람마다는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겠습니까? 예를 들면 사람을 넓게 사귈 것이냐, 좁게 사귈 것이냐 하는. 거기에 남녀라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사이의 카테고리를 끼워 넣어야 하다니, 얼마나 복잡 미묘해질까요?

2. 현이님의 비유 중에 흑인과 백인 친구,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현이님도 그리 엄선한 예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의 우정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현이님 죄송해요 ㅠ.ㅠ). 우선 스승과 아버지, 제자와 아들의 우정은 스승과 아버지가 제자와 아들을 친구처럼 대해줘야 가능해지는 관계가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스승과 아버지는 제자와 아들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제자와 아들을 어느정도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제자와 아들은 천재나 성인이 아닌 한 그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에서 어느정도 일방적인 관계이지요.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 '우리 친구로 지내자.'라고 할 때 처음부터 어느 한 쪽이 흑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지요. 문제는 남녀간의 사이는 단순한 흑인과 백인의 사이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저는 애초에 만들어진 게 남자는 여자에게, 혹은 여자는 남자에게 결국엔 성적으로 끌리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종족 유지를 위해 자손을 낳기 위한 본능이든, 뭐든 말입니다. 여기서 이성에 관한 보수성, 진보성이라는 문제가 또 하나 개입하죠.

3. 점점 바뀌고는 있지만, 한국 특유의 정서와 사회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쪽이었죠. 그래서 제가 따르는 어르신들이나, 형/ 누나들에게 많이도 여쭤보고 물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대.체.로. 나이가 많으실 수록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제 블로그를 자주 들르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을 아실 것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이것 봐라, 하고 싶은 생각은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큰 요인은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에 대한 한국 사회 특유의 거부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지 나이를 먹을 수록 보수적이 되기 때문일까요? 세상이 점점 변해가는데도요?

4. 저는 "남녀 사이에 진실한 우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몇 번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 너무 일찍 그 환상에서 깨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이성과의 진실한 우정이 있어본 경험과 그런 우정이 있다고 믿었던 확신이 깨져버린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환상을 품고 사느냐 깨져버리고 현실을 깨닫느냐라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슨 여성 혐오증에 걸린 사람처럼 제가 사랑할 사람 외에는 거리감과 경계감을 드러내면서 여자들을 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제가 이따금 모여서 만나고,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하는 여자들은 뭐라고 부를 거냐고 한다면 '친구'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다른 사람에게는 잘 못하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는 - 그 녀석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는 언제나 '내 웬수'라고 표현하는, 실은 '친구'보다 '벗'이라는 표현을 더 붙여주고 싶은 - 친구들은 아닙니다. 여자가 그런 '벗'이라는 범주에 끼는 경우는 앞으로 제 평생에 제 아내가 될 사람, 한 사람밖에 없을 겁니다.

요약하면 남녀 사이의 우정 문제는 우정이라는 범주의 문제, 이성에 관한 보수성/ 진보성의 차이, 성적 본능에 관한 인식의 차이, 경험 혹은 환상의 문제라는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섵불리 강요하거나 결정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문제에서의 제 나름의 경험들과 가치관들 때문에 힘들다고 보는 거구요.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나중에 제가 틀렸다는 걸 깨닫고 생각이 바뀔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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