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철없던 시절에는 영화관도, 함께 영화보는 사람도 따져가면서 영화를 보았다. 강북의 몇몇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시끄러운 사람들에 질려버린 적이 몇 번 있어서, 그 시절에는 거의 강남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속물 근성이 아니라 정말 강남 영화관들이 훨씬 조용했다. 나도 강북에 살았지만 그건 인정해야 했다. 지금이야 장소 여하를 떠나서 개념 없는 이들이 한둘 이상은 꼭 있더라만...

그 후에 한때 피씨방에서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은 어떤 의미에서(?) 참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랬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매일 저녁 그날 기분따라 땡기는 샌드위치와 거의 예외 없이 포도 쥬스(한 700ml정도 되려나... 유리병에 든 게 몇 ml정도 될까?)를 사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아침에 돌아올 때는 이제 막 문을 연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하나씩 빌려왔다.

그러다 보니 거의 혼자서 비디오를 볼 수 밖에 없던지라 좀 심심했으리라 생각될 수도 있는데, 혼자 보는 게 은근히 매력있었다. 보는 도중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보고 나서도 다른 이의 생각을 듣지 않고, 혼자 멋대로 영화를 본다는 것. 솔직히 누군가를 만나 시간 때우기용으로 영화 관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요즘에는 참 그리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아직도 생생한 영화 시청 후의 느낌이라면 텔미썸딩을 빌려온 날은 너무 잔인하고 또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링 일본판을 빌려온 날은 상상할수록 엄습해 오는 공포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나고,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피곤기가 가득한 눈으로 봐서 더더욱 나른하고 달콤한 둘의 사랑과 죽음에 더욱 슬픔을 느낀 듯 하며, 시티 오브 엔젤을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한동안 사용할 새가 없었던 곰플레이어를 사용해보니, 뭔가 엄청난 업그레이드를 하더라. 업그레이드를 하고 났더니, 곰 TV라는 곳에서 무료로 영화를 볼 수가 있었다. 이게 왠 떡이냐~ 물론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한은 있었지만, 옛날 영화부터 최근 영화까지 두루 있어서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영화들이 점점이 눈에 띠었다.

지금까지 본 건 '토탈 이클립스'와 '라빠르망', '황산벌', '이퀄리브리엄' 등등 다수. 보고 싶었지만, 못본 영화도 있었고, 그냥 그날 끌려서 본 영화들도 있었고, 전에 너무 재미있게 보거나 혹은 너무 산만하게 봐서 다시 본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 꾸준히 볼 엄두도 여유도 안난다는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일까 ㅠ.ㅠ

생각하면 우습다. 이~따만한 영화관에서 집안의 TV, 이젠 컴퓨터 모니터까지. 갈수록 내가 주로 영화를 보는 화면은 작아진다. 공짜를 찾아서, 편리함을 찾아서... 이러다 내 마음까지 좁아지는 건 아닐까. 아닐꺼야.

보는 건 좋은데, 이 이글루를 채워야 할 영화 후기들은 자꾸 핑계를 대며 미뤄지고 있다. 정말로 적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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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님의 황당한 영화라는 포스트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에고 돈 아까우셨겠다... 이 포스트를 보다 보니 나의 황당 영화 관람기가 떠올랐다. 말 그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후훗...

내가 어릴 때 소년 중앙라는 잡지가 인기있었다. 엄하셨던 아버지께서 왠일인지 소년 중앙은 꼬박꼬박 사주셨었는데, 거기서 '가디안'이라는 영화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줄거리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적어보자면,
아이를 낳은 아내를 위해 새로 이사온 집에 보모던가? 파출부던가를 구하게 되는데, 한 여자가 아이를 제물로 삼기 위해 원래 오기로 되어있던 파출부를 의문사 시키고 아이를 빼앗기 위해 부부와 사투를 벌인다는...

그 줄거리가 어린 나이에 무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스릴러 풍에 뭔가 으시시할 것 같은... 하지만, 비디오가 교육에 도움이 안된다는 아버지 엄명에 따라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난 언젠가 보고 싶은 영화로 '가디안'을 어린 기억 속에 담아두어야 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여동생과 외삼촌댁에 놀러갔는데, 외삼촌이 돈을 주시며 보고 싶은 비디오를 하나 빌려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때 정말 순진했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다른 유명한 영화를 알 리 없었고, 언제나 뇌리에 꽂혀있었던 그 '가디안'이라는 비디오를 빼든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어찌어찌 해서 비디오를 빌려들고 외삼촌네로 한걸음에 달려와 비디오를 틀었는데, 처음 부분은 줄거리대로 흘러갔다. 문제는... 중간 부분에 야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길~게... 여동생과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거의 비디오의 절반은 눈을 가리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꺼버려야 했다. 외삼촌도 무지 황당하셔서 고작 하신다는 한 마디.
"영구와 땡칠이 같은 거나 빌려오지..."
정말 순진해서 빨간 비디오란 게 뭔지도 몰랐을 때의 웃음 나오는 기억이다. 빨간 비디오라는 건 비디오가 새빨간 색이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줄 알았으니까 ;;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두가지.
  1. 외삼촌네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린 꼬마 둘에게 그걸 빌려준 걸까?
  2. 그리고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얼추 타이밍이 맞는 시기에 외삼촌네 장남이 태어났다. 그럼 혹시 그 녀석은 내 덕택에 태어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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