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1984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3.07 2+2=5 (Live) / Radiohead 8
  2. 2007.02.26 '1984년' 독서기
  3. 2007.02.23 1984년(원제 'Nineteen Eighty-Four', George Orwell, 1949) 5


제목: 01. 2+2=5

 노래: Radiohead
 앨범: 6집 [Hail To The Thief]


사실 Radiohead 6집의 이 곡 때문에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The Lukewarm.) (미온파.)


Are you such a dreamer?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To put the world to rights? 너 그정도로 몽상가야?
I'll stay home forever 나같으면 영원히 집에서 나오지 않을걸
Where two & two always makes up five 둘 더하기 둘이 언제나 다섯이 되는 그곳에서

I'll lay down the tracks 나는 길을 만들거야
Sandbag & hide 그리고 모래주머니로 막고 숨을 거야
anuary has April's showers 1월엔 4월의 소나기가 내리고
And two & two always makes up five 둘 더하기 둘은 언제나 다섯이 된다지

IT'S THE DEVIL'S WAY NOW 이젠 끔찍해질거야
THERE IS NO WAY OUT 도망칠 곳은 없어
YOU CAN SCREAM & YOU 비명을 질러도 고함을 쳐도
IT IS TOO LATE NOW 이젠 너무 늦었어

BECAUSE 왜냐면
YOU HAVE NOT BEEN PAYING ATTENTION 너흰 지금까지 전혀 신경도 안쓰고 있었으니까

I try to sing along 나도 함께 따라 노래해 보려 해도
I get it all wrong 내가 부르는 건 하나도 맞지가 않아
Eezeepeezeeeezeepeeezee 이이지이이피이이지이이이이지이이피이이이지이이
NOT 아니
I swat em like flies but 마치 파리인 양 찰싹찰싹 때려 쫓아 보려 해도
Like flies the buggers 진짜 파리들처럼 그 놈들은
Keep coming back 자꾸만 몰려들어

NOT 아니
Maybe not 아마 아닐거야
"All hail to the thief" "모두들 저 도둑에게 경배를"
"But I'm not!" "그치만 난 아냐!"
"Don't question my authority "내 권위에 의문을 품거나
or put me in the dock" 나를 피고석에 앉히지 말 것"
cozimnot! 왜냐면난아니니까!

Go & tell the king that 가서 왕에게 전해,
The sky is falling in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고
When it's not 실은 아닌데도
May not. 아마 아닐거야.

(ahh diddums.) (아 랄라.)


가사 및 해석 출처 : 6집 앨범 [Hail to the Thief] 첨부 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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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64
...그는 정통성이 무엇인가를 모르면서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어떤 점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납득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적 사건에 충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침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정상적이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고 새 몸뚱이를 거쳐 탈없이 그대로 나오듯, 뒤에 아무런 찌꺼기도 남기지 않으므로 그들이 무엇을 삼키든 목을 넘어간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해로움도 줄 수 없는 것이다.

p.175
그는 결코 잠들지 않는 텔레스크린을 생각했다. 그놈들이 밤낮으로 감시를 하지만 정신을 갖고 있는 한 우린 그놈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놈들이 아무리 지모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그들 손아귀 속에 잡혀 있으면 조금은 달라지겠지... 어떻든 사실은 숨겨 둘 수 없다. 심문으로 알아낼 수도 있고 고문으로 족쳐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적이 살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라 할 때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놈들은 우리 감정을 바꿔 놓을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도 아무리 원해 봤자 그들의 감정을 바꿔 놓을 수 없다. 그들이 우리가 한 행동이며 말이며 사상을 빼놓지 않고 세세히 다 캐낼 수 있다 하더라도 깊은 속마음은, 우리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신비로운 속마음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p.192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각주:1]

p.193
제3장
전쟁은 평화 세개 초국가간의 국경은 곳에 따라 자의적이기도 하고 전황에 따라 변동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리적 구분을 따랐다. 유라시아는 포르투갈에서 베링 해협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오세아니아는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대서양 제도 및 아프리카의 남부를 장악한다. 이스트아시아는 다른 두 나라보다 작고 서쪽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중국과 그 남쪽 지역, 일본 제도 및 변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만주, 몽고, 티벳 등을 장악한다.

p.194
이들 세 초국가는 다른 한 초국가와 서로 동맹을 맺어가며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있고 또 지난 25년간 그렇게 되어 왔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20세기 초엽에서처럼 그렇게 절망적이고 전멸적인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파괴시킬 수도 없는 교전국가 간의 한정된 목표를 위한 싸움으로 실질적인 전쟁의 동기도 없고 진짜 이데올리기의 차이로 갈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전쟁은, 대부분 고도로 훈련받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따라서 사상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전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반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변경이나 해로의 전략지점을 지키는 유동요새 부근에서 일어난다. 문명의 중심지역에서는 전쟁이란 만성적인 소비재의 결핍과 때때로 몇십 명을 죽이는 로켓탄의 폭발을 의미한다. 전쟁의 성격은 실질적으로 변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의 중요성 순위가 바뀐 것이다...

현대의 전쟁 성격을 이해하려면(몇 년 만큼씩 전쟁 상대국은 바뀌지만 전쟁은 늘 똑같은 양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결정적일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알아두어야 한다. 세 개의 초국가는 다른 두 나라의 연합으로도 결코 정복될 수 없다. 그들의 실력은 서로 비슷비슷하고 자연적 방위조건이 철벽같기 때문이다.

p.195
둘째로 싸워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서로 맞아들어가는 소비경제가 확보되어 전시대(前時代) 전쟁의 주요원인이었던 시장쟁탈이 끝났고 반면 원료획득 경쟁이 이제 생사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p.196
현대전쟁의 기본목적은 그 이중사고의 원칙에 의하여 내부당원은 이를 인정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한다.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기계를 완전히 소모시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1914년 이전의 세계, 더욱이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상상 속의 미래와 비교해 보면 벌거벗고 굶주리고 초라한 세계다. 20세기 초의 미래사회관은 분명히 풍부하고 여가가 있으며, 질서있고 효율적이며, 마치 유리와 강철과 하얀 콘크리트로 된 번쩍이는 영구적인 세계라고 대부분의 식자들이 믿었다. 과학과 기술은 놀랄 만한 속도로 발전하며 또 그렇게 진보하고 있는 중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장기적인 전쟁과 혁명으로 빈곤이 초래되는 한편 과학과 기술의 발전토대가 될 경험적 사고방식이 엄청난 통제사회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전반적으로 오늘의 세계는 50년 전보다 더 원시적이다.

p. 197
기계란 것이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사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고된 노동이 불필요해지고, 따라서 불평등이 사라졌다고 확신했다. 기계가 그 목적에 적절히 사용됐더라면 기아, 과로, 쓰레기, 문맹, 그리고 질병은 몇 세대 안에 근절됐을 것이다. 사실 기계가 그런 목적에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때로는 분배할 수 없는 부(富)를 생산하는 과정에 따라 그 부산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50년간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이 상당히 향상되긴 했다.

그러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급사회를 파괴할 위험(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가 파괴이다)을 초래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 권력은 소수 특권계급이 장악하는 사회를 물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회는 장기간 안정적일 수 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안정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향유된다면 빈곤으로 우매해야 정상적일 대중들이 점점 깨이고 혼자 사색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고 보면 조만간, 소수의 특권층은 특권적이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되고 따라서 그들을 없애 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아 계급사회는 가난고 무지를 기반으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p. 198
...재화(財貨)의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대중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만족할 만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이런 방법은 자본주의의 최종단계인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상당히 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군사적 약세를 초래했고 이로 말미암은 궁핍은 명확히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반대현상이 불가피하게 일어났다. 문제는 세계의 부를 실제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재화는 생산돼야 하지만 분배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 계속적인 전쟁이다.

전쟁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 생산을 파괴하는 것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기공장이 소비품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전쟁규모는 국민의 수요를 최소한도로 맞춰주고 그 잉여물자를 완전 소모할 수 있는 범위로 늘 계획된다. 실제로 국민의 수요량은 언제나 과소평가되고 그 결과 생활 필수품은 반도 모자라는 만성적인 상태가 계속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리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집단들마저 곤궁한 상태로 붙들어 두는 것이 적절한 정책이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궁핌한 상태여야 작은 특혜가 더욱 커 보이고 그래서 한 집단과 다른 집단간의 차이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p. 199
전쟁은, 후술하겠지만 필요한 파괴행위를 할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이를 용납하게끔 수행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세계의 잉여노동력을 성당이나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나, 구멍을 팠다 도로 메우는 데나, 방대한 재화를 생산했다가 불로 태워 버리는 데 허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이 방법은 계급사회에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 주기는 하겠지만 감정적 기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관계되는 것은 꾸준히 일하는 한 그들의 태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대중의 사기가 아니라, 당 자체의 사기이다. 말단 당원이라도 경쟁심과 근면성, 약간의 지성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공포와 증오, 아첨, 승리에의 도취감에 빠진 경솔하고 맹목적인 열광이 물론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전쟁상태에 어울리는 정신 상태를 가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는 실제로는 관계없으며 결정적인 승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황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필요한 것은 전쟁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보편적으로 당이 그 당원에게 요구하는 지성의 분열은 전쟁 분위기에서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으며 사실 당원의 지위가 오르면 오를수록 그 분열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전쟁에의 열망과 적에 대한 증오감이 가장 강렬한 곳이 내부당이다.

p. 200
오늘날 오세아니아에는 옛날 의미의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어에는 '과학'이란 말이 없다... 모든 유용한 기술은 정지하고 있거나 퇴보한다. 책은 기계로 저술되는 반면 토지는 말로 경작되고 있다... 당의 2대 목표는 전세계를 정복하는 것과 모든 독립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근절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아내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 예고 없이 몇 초 안에 수억만 명을 어떻게 죽이는가 하는 것이다.

p. 203
...공공연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이해되고 또 그에 의해 전개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즉 3대 초국가의 생활조건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오세아니아의 주철학(主哲學)은 '영사(INGSOC,England Socialism)'라 했고, 유라시아의 그것은 '신 볼셰비즘(Neo-Bolshevism)', 이스트아시아는 '죽음숭배(Death-Worship)'라고 번역되는 중국말이지만 더 정확히는 '자기말살(Obliteration of Self)'에 해당될 것이다. 오세아니아의 시민은 다른 두 나라의 철학이나 성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서는 안되었지만 그것들은 도덕과 양식에 대한 야만적 폭행이니 저주하라는 교육만 받을 뿐이다. 실제로 이 세 걔의 철학은 다른 것이 거의 없었고 그것이 지탱하는 사회체제에도 전혀 차이가 없었다. 어디든 똑같은 피라미드 형의 구조가, 반신적인 지도자에 대한 똑같은 숭배가, 계속적인 전쟁의 의한, 또 그를 위한 똑같은 경제체제가 있다. 이에 따라 세 초국가가 다른 하나를 정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래 봤자 아무 이득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세 나라가 대립을 계속하는 한 마치 세 개의 솥다리처럼 서로 의지하여 서 있는 것이다.

p. 204
그러므로 옛날의 전쟁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한낱 사기이다. 그것은 뿔의 각도가 틀려 상대방에 서로 상처를 줄 수 없는 반추동물의 싸움과 같다... 전쟁은 잉여 소비재를 소모시키고 계급사회가 필요로 하는 독특한 정신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지배자들이 비록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전쟁의 파괴력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서로 싸웠고 승자는 언제나 패자를 약탈했다. 우리 시대에는 결코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지배집단의 그 백성에 대한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은 영토의 정복이나 반항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전쟁'이란 단어는 잘못된 것이다. 늘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실은 전쟁이 없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세 초국가가 서로 전쟁을 하는 대신 영구적인 평화에 동의하고 타국의 땅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 경우 외적 위험으로부터 오는 영향은 영원히 없어질망정 그 자체 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똑같다. 대부분의 당원들은 희미하게 이해할 뿐이지만 이것이 당의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란 말의 진의(眞意)이다.

p. 207
제 1장
무지는 힘 유사 이래, 아마도 신석기 말 이후로 인민은 상, 중, 하의 3계급으로 나뉘어 왔다. 그들은 여러 갈래로 갈리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무수하게 태어나고 그들의 상대적 인구수와 상호간에 대한 태도가 시대마다 달랐지만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p. 208
이러한 세 집단의 목표는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것이다. '상층' 계급의 목표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중간층' 계급의 목표는 '상층'의 지위로 오르는 것이다. 하층계급이 목표를 가졌다면(이들은 고생을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외에 다른 것을 거의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본성이다) 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 역사를 통해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해 일어난다. 상층계급은 장기간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효과적인 통치 능력, 또는 그 두 가지를 다 잃어버릴 때가 온다. 그리하여 중간층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가장하여 하층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상층을 전복시킨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하층을 다시 옛날의 노예신분으로 몰아넣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중간층은 다른 한 계층, 또는 그 두개의 계층에서 충당되고 그리하여 투쟁은 다시 시작된다. 이 세 개의 계층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일시적으로라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부(富)가 늘고 상호간의 태도가 부드러워졌고 개혁이나 혁명이 있었지만 인간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는 한 치도 진보한 게 없다. 하층계급의 눈으로 보면 역사적 변화라는 것은 그들의 주인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p. 209
19세기 말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 유형이 반복되고 있음을 명백히 관찰했다. 그리하여 역사를 순환과정으로 해석하고 불평등은 인간생활에 있어 부동(不動)의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학파도 생겨났다. 물론 이러한 주위에는 언제나 지지자가 있었지만 다음에 얘기하는 방향으로 괄목할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사회에 계급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특히 상층계급의 이론이었다... 중간층은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하는 한 언제나 자유, 정의, 평등이란 말을 사용했다... 과거에 중간층은 평등의 깃발 아래 혁명을 일으켰고 그리하여 전날의 전제(專制)를 전복시키자마자 새로운 전제를 내세웠다. 이러다가 새로이 생긴 중간층은 실제적으로 미리 전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19세기 초에 나타난 사회주의는 고대의 노예반란으로부터 기원을 잡는 일련의 사상계열의 마지막 단계로서, 과거의 유토피아주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00년경 이후부터 사회주의는 변형되어 자유와 평등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더욱더 노골적으로 포기했다. 그리하여 금세기 중엽, 오세아니아에서는 '영사(英社)'로 유라시아에서는 '신 볼셰비즘'으로, 이스트아시아에서는 이른바 '죽음숭배'로 나타난 새로운 운동은 '부자유(不自由)'와 '불평등'을 항구화하자는 의식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들의 목적은 발전을 중지시키고 어느 선택된 순간으로 역사를 동결시키자는 것이다... 전처럼 중간층계급이 상층계급을 전복하고 스스로 상층계급으로 오른 다음 의식적인 전략을 통해 영원히 자기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귀족정치는 주로 관리, 과학자, 기술자, 노동운동가, 광고전문가, 사회학자, 교사, 언론인, 직업적 정치가들로 이루어졌다. 독점산업과 중앙집권으로 세계가 살벌해지자 중류 봉급자와 상급 노동자 출신인 이들이 규합,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과거의 권력자들과 비교하여 이들은 욕심이 적고 덜 사치스러우며 순수한 권력에 대한 갈망은 더 컸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반대파를 타도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었다. 이 마지막 차이점이 중요하다. 지배집단들은...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을 문제삼으며, 그들의 백성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는 무관심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어떠한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업시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었고, 영화와 라디오로 이것은 더욱 촉진되었다. 텔레비전의 발전으로 하나의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의사에 완전히 복종하고 모든 국민의 의사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50년대와 60년대의 혁명기가 지나자 사회는 전처럼 상, 중, 하로 재편성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층계급은 그들의 선배와는 달리 본능에 의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았다. 과두정치를 유지하는 안전한 기반은 오직 집산주의(集産主義)뿐이라고 이제껏 생각해왔다. 부와 권력은 그 둘을 함께 소유할 때 용이하게 보호된다. 금세기 중엽에 행해진 소위 '사유재산의 폐지'란 실제로 전보다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 재산을 집중시키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계급이 제거되면 사회주의가 오리라고 오래 전부터 예측되어 왔다. 물론 자본주의자들은 제거되었다... 초기 사회주의에서 성장하여 그 말투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영사'는 실상 사회주의의 계획 중 중요한 조항을 수행했고, 그 결과는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온 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영구화였다.

그러나 계급사회를 영속시키는 문제는 이보다 더 어렵다. 지배집단이 권력을 상실하는 길은 네 가지가 있다. 즉 외부로부터 정복당하든가, 비능률적으로 통치되어 대중이 봉기한다든가, 강력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중간계급의 세력형성을 방지하지 못한다든가, 혹은 통치할 자신이나 의욕을 잃는 것 등이다.

p. 213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대형이 있다. 대형은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모든 성공과 완성, 모든 승리와 과학적 발견, 모든 지식과 지혜, 모든 행복과 덕성이 그의 지도와 영감에서 나온다.

p. 218
과거의 가변성은 '영사'의 중심교의(敎義)다. 과거의 사건은 객관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그 자료와 기억이 뭉친 것이다. 그리고 당은 그 모든 자료와 당원의 마음속까지 충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곧 당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p. 219
'이중사고'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p. 220
과거의 모든 과두정치는 지나치게 경직됐거나 연약하였기 때문에 실권하고 말았다. 그들은 우매해지거나 오만해져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방임적으로 되거나 비겁해져서 강권을 사용해야 할 때 양보함으로써 다시 몰랐했다. 즉 의식적이었기 때문에 망했고 무의식적이었기 때문에 망했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존재시킬 수 있는 사고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 당의 업적이다. 어떤 다른 지적(知的) 기반으로 당의 통치를 영속시킬 수 없다. 누구든 지배하려면, 그리고 그 지배를 계속하려면 현실감각을 전위(轉位)시킬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배의 비결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힘과 자신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한 신념을 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사고'를 가장 교묘하게 행하는 사람들이 '이중사고'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거대한 정신적 기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클수록 미망(迷妄)이 크고, 많이 알면 알수록 착란이 심해진다. 이러한 좋은 예가 전쟁에의 열광이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아질수록 심해진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전쟁에 대해 거의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분쟁지역에 사는 예속민들이다.

p. 221
정부의 네 성(省) 이름마저 뻔뻔스레 사실을 고의로 뒤집고 있다.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거짓말을,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아사(餓死)를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우연이 아니요, 일반적인 의미의 위선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신중한 '이중사고'의 행위결과이다. 왜냐하면 모순을 조화시킴으로써만 이 권력을 영원히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도로는 과거의 현상을 재현시킬 뿐이다. 인간의 평등을 영원히 피하려면, 소위 상층계급이 자신의 지위를 영구히 보존하려면 정신의 주조(主潮)를 광적인 상태로 통제해야 한다.

...'왜' 인간의 평등을 막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면밀히 계획하여 역사를 어느 특정 순간에 동결시키는 동기는 무엇인가?

p. 222
...실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그가 이미 생각한 지식을 단순히 체계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나니 자기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소수파에 속해 있다 해서, 아니 단 혼자라 해서 그 때문에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은 엄연히 구별되어 있고 전세계와 대항하면서라도 진실에 집착하고 있다 해서 미친 것은 아니다.

p. 261
...중세에 종교재판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실패작이야. 이단자를 뿌리뽑기 위해 시작된 이 종교재판은 결국 이단을 영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어. 이단자 한 사람을 화형에 처할 때마다 다른 수천 명이 들고 일어났어. 왜 그랬겠는가? 종교재판은 그들의 적을 공개적으로 죽였기 때문이고 회개를 받지 못한 채 죽였기 때문이야... 그들은 자신의 진실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갔어. 따라서 모든 영광은 그 희생자에게로 돌아갔고 그를 죽인 종교 재판관에게는 비난만 퍼부을 뿐이야. 그 후 20세기에 이르러 소위 전체주의자라는 게 있었어.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지. 소련 사람들은 종교재판 때보다 이단자를 더욱 참혹하게 처형했어. 그들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웠다고 생각했고 사실 순교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들은 그 희생자들을 인민재판에 붙이기 전에 먼저 용의주도하게 희생자들의 위엄을 완전히 벗겨 놨지. 고문과 고독으로 그들을 녹초로 만들어 놓으면 이들은 비열, 비참해지고 무어든 다 자백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뒤에서 서로 고자질하여 자기는 모면하려 하고 살려 달라 울고불고 야단하게 돼. 그러나 이것도 몇 년 후면 똑같은 결과가 다시 일어나. 죽은 사람이 순교자가 되고 그들에 대한 경멸도 잊어버리는 거지. 그럼 왜 그런가? 첫째로 그들의 자백이 강제에 의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 여기서 나오는 모든 자백은 진실이야. 우리가 진실로 만드는 거야. 무엇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우리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그들에 대해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기록된 이름도, 살아 있는 사람의 뇌속에서 기억도 없어져. 미래에서처럼 과거에 있어서도 완전히 없어지는 거야. 결국 전혀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거지.[각주:2]

p. 262
...우린 소극적인 복종이나 비굴한 굴복으로도 만족하지 않아. 자네가 우리한테 결국 항복한다 해도 그것은 자네의 자유의지로 돼야 해. 우린 이단자가 우리한테 반항한다고 해서 그들을 처형하는 게 아니야. 우리한테 반항하는 한 그를 처형하지 않는다. 우린 그를 전향시켜 그의 속마음을 장악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외양만이 아니라 진짜로 그의 마음과 영혼까지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야.[각주:3]

p. 265
아까 내 손가락을 자네에게 펴 보였어. 자네는 다섯 개로 보았지. 기억하나?
네.
오브라이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다섯 개지. 다섯 손가락이 보이나?
네.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았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하기 전, 한순간 다섯개로 보인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생각도 들이 않았다. 그러더니 다시 정상적인 상태가 돌아왔다...오브라이언의 새로운 가르침이 그의 텅 빈 곳을 채워 절대적인 진리로 믿게끔 되고 둘 더하기 둘이 필요에 따라 셋도, 다섯도 되는 걸로 보이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p. 272
윈스턴, 자네는 개인이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겠나? 세포의 쇠멸은 그 유기체의 활력을 의미해. 손톱을 잘랐다 해서 목숨이 끊기던가?
p. 308
그는 대형의 커다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택한 유형(流形)이여!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1.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준 책 제목 [본문으로]
  2. 오브라이언 [본문으로]
  3. 오브라이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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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내 손가락을 자네에게 펴 보였어. 자네는 다섯 개로 보았지. 기억하나?
네.
오브라이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다섯 개지. 다섯 손가락이 보이나?
네.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았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하기 전, 한순간 다섯개로 보인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생각도 들이 않았다. 그러더니 다시 정상적인 상태가 돌아왔다...오브라이언의 새로운 가르침이 그의 텅 빈 곳을 채워 절대적인 진리로 믿게끔 되고 둘 더하기 둘이 필요에 따라 셋도, 다섯도 되는 걸로 보이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이번에 읽을 때는 가능한 한 끊어지지 않게 정독하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책을 들다 놓다 하다보니 이번에도 날림 독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듯 싶습니다.

  1. 포르투갈에서 베링 해협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북부지역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2. 다른 두 나라보다 작고 서쪽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중국과 그 남쪽 지역, 일본 제도 및 (변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만주, 몽고, 티벳 등을 장악한 이스트아시아
  3.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대서양 제도 및 아프리카의 남부를 장악한,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

이 세 개의 전체주의적인 초국가가 소모적인 전쟁을 계속하며, 한편으로는 국민들을 통제하는 20세기 후반의 세계가 1949년에 조지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입니다.

오세아니아는 영사[각주:1]를 주 철학으로 하는 대형[각주:2]의 지도 아래 극단적으로 통제받는 나라입니다. 모든 인간은 당에 충성해야 하고 심지어는 성관계까지도 당에 충성할 소모품을 생산할 목적으로만 허용되며 일상 생활에서도 가정마다 비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당의 가르침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하고, 동시에 감시당합니다. 경제와 과학 기술은 다른 두 국가와의 전쟁을 위한 용도로만 유지, 발전되고 철학, 문학, 예술 등은 거의 말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당의 진리성에서 근무하는 말단 당원입니다. 아, 일단 당의 네 부서들을 소개하자면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거짓말을,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아사(餓死)를 담당하고 있습니다.[각주:3] 당의 부서들 명칭이 반어적이죠. 여기서 윈스턴이 일하는 진리성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언어, 역사를 당의 목적에 맞게 수정하고 뉴스와 기사들을 조작하는 곳입니다. 윈스턴은 당원이기는 하지만 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소문으로만 듣던 형제단의 일원이 되어 당을 전복시키는데 참여하기를 꿈꿉니다.

전쟁과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주위가 온통 미치광이들 뿐인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윈스턴은 어느날 내부 스파이라고 의심하던 줄리아라는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뒤이어 이전부터 형제단일 것이라고 추측했던 오브라이언이라는 고위 당원을 통해 형제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오브라이언은 형제단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골드스타인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책을 윈스턴에게 주고 윈스턴은 외딴 빈민가에 몰래 방을 구해 줄리아와 사랑을 나누며 틈틈히 그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행복도 잠시, 윈스턴과 줄리아에게는 차라리 죽음보다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도 애초에 사회주의자였다고 하죠. 하지만 그는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풍자한 동물농장과 이 1984년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그가 20세기 사회주의의 문제점만을 경고하려 했다고만 생각한다면 이 소설을 반 정도만 이해한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조지 오웰이 경고한 미디어 조작을 통한 정보 왜곡이나 전자 감시, 전쟁을 통한 여론 환기 등은 오늘날의 심지어 선진 국가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점들이니까요.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갈수록 번영하고 권력의 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체의 발달로 인해 정보 전달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으로 이 소설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습니다.

(과거의) 지배집단들은...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을 문제삼으며, 그들의 백성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는 무관심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어떠한 권력이든 시민들을 끊임업시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었고, 영화와 라디오로 이것은 더욱 촉진되었다. 텔레비전의 발전으로 하나의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의사에 완전히 복종하고 모든 국민의 의사를 통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각주:4]


조지 오웰이 경고하던 어두운 미래는 다행히 오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편히 앉아서 이런 잡다한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소설 속의 사회에서는 펜으로 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조지 오웰의 지나친 비관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주(東洲) 이용희(李用熙) 선생은 미래의 세계정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소설보다는 살만하게 된 건 조지 오웰이 틀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조지 오웰과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했기 때문일런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정부의 전자 시스템을 비판할 때 누구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Big Brother라는 명칭을 들먹이는 것, 이런 것들만 봐도 조지 오웰의 통찰력을 높이 사야 하지 않을런지요. 더구나 이 책의 미래는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전쟁관이라든가, 정치 공학적인 측면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이 정말 자주 눈에 띱니다. 덕분에 다음에 올릴 독서기가 정말 깁니다. 빼놓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요.

이번에 읽으면서 물론 이 소설이 러브 스토리는 아니지만 윈스턴이 줄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이 참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이미 한 번 읽어서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그 부분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서 슬펐습니다. 사랑은 세상을 밝게 비추기도 하고 파멸의 늪에 빠지게도 하나봅니다. 결국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소설에서의 윈스턴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는 대형[각주:5]의 커다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택한 유형(流形)이여!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1. INGSOC(England Socialism), 영국식 사회주의 [본문으로]
  2. Big Brother [본문으로]
  3. p. 221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에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본문으로]
  4. p. 209 '과두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에서, 이마누엘 골드스타인 지음 [본문으로]
  5. Big Broth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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