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되면 비가 오는 날씨의 못된 심보 한번 고약하다. 빗소리를 들으며 Thom Yorke의 솔로 앨범 [The Eraser]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내가 Radiohead의 앨범들 중 가장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4집 [Kid A]. 하지만,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즐겨 듣는 것은 다르다. 4집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비교적 손이 잘 안가게 되는 건 사실이고, 듣기는 2집과 3집을 가장 많이 듣는 듯 하다. 2집은 개인적인 추억이 서린 곡들이 많아서 자주 찾게 되고, 3집은 말이 필요 없다.
Thom Yorke의 솔로 앨범을 듣다 보니, 드는 엉뚱한 생각. 혹시 Thom Yorke는 [Kid A]와 [Amnesiac] 두 앨범을 내고 나서 다른 멤버들에게 뒤통수를 몇 대 맞은 것은 아닐까? Radiohead의 급진성은 [Hail to the Thief] 정도로 잠시 타협하고 실험은 솔로 앨범에서 계속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소라가 '난 행복해'를 부르며 1집을 들고 나왔을 때 참 독특한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TV에 나올 때면 항상 변함없이 굳은 얼굴로 서서 비음이 심한 신선한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친구가 무슨 TV 쇼에 출연한 걸 봤는데 이소라에게 무엇인가를 시켰더니, 못하겠다고 하면서 울더란다. 얼마 후에는 이소라가 그렇게 밝힌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ㅡㅡ;;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과 남성 편력이 뭔 상관이 있겠으며,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설마... 했지만 조금 깨긴 깼다. 또 얼마 후에는 이소라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마다 앨범을 하나씩 낸다는 소리도 들었다. 역시 설마...
아무튼 나는 '밤의 음악 도시'와 '이소라의 프로포즈' 덕분에 이소라를 매우 좋아했다. 노래도, 앨범도, 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듯한 이소라 그녀도.
몇달 전에 우연히 이소라가 라디오 DJ를 그만 두었다는 소리를 듣고, 매우 아쉬웠다. 요샌 거의 듣지도 못했지만... 게다가 가끔이라도 10시부터 12시 사이에 MBC라디오를 틀면 들리는 박명수의 목소리. 한숨나온다. 왜 그만둔걸까... 전에도 몸이 안좋다는 이유로 며칠 쉬거나, 한동안 중단한 적은 있었는데.
이소라가 실연을 당할 때마다 앨범을 낸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4집을 낼 무렵에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기는 한 것 같다. 우선 양장본처럼 예쁘게 만들어진 4집 [꽃]의 앨범에 앨범 정보나 가사 외에 글이라곤 달랑 이것 뿐이다.
꽃
피어라 피어
피는게 네 일인걸
지는 건 걱정일랑 말고
피어라 피어
그리고 거의 마지막 장 시디가 붙어있는 페이지의 맞은 편엔 너무나 간단한 'Thanks to 김현철, 조규찬, 고찬용...' 이전 3집 앨범 역시 말은 몇마디 없었지만, 이리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다. 이소라의 사진도 담겨있고. 한마디로 4집 앨범을 찬찬히 훑어보며 드는 느낌은 '나좀 잠시 내버려두세요.'다.
결정적으로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소라가 부른 '제발', 얼마나 슬픈 기분이 들어 두 번이나 노래를 중단했을까. 입대했던 시절이라 저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누군가가 편지로 가사를 적어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가사를 읽어내려가면서 너무 마음 아팠던 기억. 문득 마음이 여린 이들이 살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