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나만의 징크스

L. Log/잡담 2006. 8. 24. 20:26
언제 쓰기로 한 글인데, 이제 올릴까요? toice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toice님의 징크스에 관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서 '나도 한 번 써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 봐도 남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징크스가 잘 떠오르지 않더군요.

1. 오래달리기는 언제나 2등만 한다.
전에 제 막내 동생의 핸드폰에 관한 일화에서 썼듯이 저는 운동에 그리 재능이 있거나 즐겨하는 편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달리기를 잘해서 운동회 계주 같은 곳에도 나가서 순위를 엄청 뒤집곤 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버지께서 매일 학교가 파한 후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집에 도착하지 않으면 혼을 내곤 하셨습니다. 당연히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농구, 축구 등은 생각할 수도 없었죠. 그런 스파르타식 생활이 제가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하던 고1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야 밤 11시까지 학교에 붙어 있어야 하니 뭐... 아버지가 어떻게 하실래야 하실 수도 없었고요.

아무튼 운동은 별로였지만, 체력장 같은 기초 체력은 내신 점수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켰습니다. 특히 달리기는 자신 있었는데, 특히 오래 달리기가 그랬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밤에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집 근처에 있는 개천 주변을 시간을 재면서 전력으로 달리곤 했습니다. 매일 매일 몇 초씩 기록을 단축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면서요. 그러다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체력장 오래달리기 시간, 어이 없게도 거짓말 안보태고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에서 2등을 했다는... ㅡㅡ;;

고만 고만한 실력끼리의 오래달리기는 별거 없습니다. 초반에 별 아이들이 다 있죠. 100미터 달리기 하듯 치고 나가는 아이들, 설렁설렁 뛰는 아이들, 초반에는 딱 중간만 뛰면 됩니다. 그러다가 한바퀴 정도 뛰고 나면 바로 앞에 있는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명, 한 명 치고 나갑니다. 개중에 유난히 저항이 거센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엔 조금 내버려 둡니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뒤에서 누군가가 추월할 것 같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거든요. 잠시 뒤에 다시 추월하면 십중팔구 뒤쳐집니다. 그런 식으로 추월하다 보면 뭐... 1등이 됩니다만, 저의 경우는 결국 막판 스퍼트하는 한 명에게 추월당하더군요. 1학년 때는 '아무래도 평소 운동을 즐겨하지 않으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3년 내내 2등을 하니 약이 오르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오래달리기 시합 같은 것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만, 한동안 동생들이나 같은 동네의 아는 동생과 자주 조깅을 하곤 했습니다. 그덕인지 얼마전 친구들과 평창에 놀러가서 그쪽 아이들과 축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들이야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치고, 저는 공격에서 수비까지 날아다니는데, 친구들은 별로 뛰지도 않고서 죽으려고 하더군요. 몇 년 전만 해도 저보고 약해 빠졌다고 하던 녀석들이... 규칙적인 운동을 생활화합시다. ㅡ.ㅡb

2. 좋아하는 곡을 들으면 잠에서 깬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는 워크맨을 몸에 달고 살았습니다. 테이프 뿐만 아니라, 라디오도 참 즐겨들었습니다. 잘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어폰을 꽂은 채로 잠들 때가 참 많았는데요. 신기한 건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곡을 들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에서 깨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잠든 상태인 지라 좋아하는 곡이 나와도 깨지 않는 경우가 있었을런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만, 분명한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듣고 깨는 경우는 없다는 거지요.

한번은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시고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어서 하루종일 병수발을 들고 저녁에 병문안 왔던 친구와 소주를 한 잔 한 뒤, 병실에서 잠든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는 상태로요. 하루종일 병수발에 소주까지 마셨으니, 얼마나 고단했겠습니까. 눕자 마자 잠에 빠져들었는데, 움찔 잠에서 깨어보니 이어폰에서 제가 좋아하던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가 나오더군요. 시계를 보니 세 시가 약간 넘어 있었습니다. 시끄럽고 밝은 노래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겠지만 남들은 들으면 졸음이 온다는 Radiohead의 노래들, 발라드 등, 제가 듣고 잠을 설치는 곡들이란 이런 종류입니다.

요새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잠드는 객기를 부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잠들었다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깨는 건 마찬가지더군요. 요샌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데, 유난히 모기 소리와 (좋아하는) 음악 소리에 민감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3. 지하철 계단을 올라갈 때면 항상 지하철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출퇴근할 때 체크인을 하고 계단을 올라갈 때 쯤이면 꼭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물론 구분하기 쉬우라고 상행선은 "띠리리리리~~", 하행선은 "띵딩딩딩딩~~" 한다든지 하는 신호음을 내주기도 하는데요. 배차 간격이 좁은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다 보면 양쪽에서 지하철이 오는 경우가 많아 계단을 오르면서 지하철이 오는 신호음이나 지하철이 "끼이익~" 하는 소리를 들으면 필사적으로 뛰게 됩니다. 한가하다면 다음 지하철 타고 말겠지만, 붐비는 시간이라면 정말 짜증나는 일이죠. 저만 항상 그런건 아니겠지만, 괜히 약오르기도 하고.

하지만, 지하철에 이력이 나다 보니 저만의 노하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플랫폼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지하철의 브레이크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면 맞은편 지하철이 도착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 생각에는 바퀴 소리가 플랫폼 아래쪽에서 나는 소리라 만약 자신이 탈 쪽의 지하철이 도착한다면 이쪽 플랫폼에 막혀서 맞은편으로 반사되는 듯 합니다. 맞은편 지하철이라면 반대로 이쪽으로 소리가 반사되고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처음엔 다들 웃는데, 확인해 보고 나서는 신빙성 있다고들 하더군요. 이 노하우 덕분에 저는 지하철 바퀴 소리가 크게 들리면 후다닥 뛰어가는 주위 사람들을 안됐다는 듯 바라보며 느긋이 걸어갑니다. 만약 작게 들린다면? 저도 죽어라 뛰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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