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그리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1.28 Luxury
  2. 2006.09.19 트로이 전쟁 당시의 그리스 역사 3
  3. 2006.09.18 일리아스를 읽고 있습니다. 5

Luxury

L. Log/나만의 지식 KIN 2007. 1. 28. 21:15
이 글은 luxury라는 단어에 대한 언어학적인 고찰이 아니라, 개인적인 흥미에 따른 단상임을 미리 밝힙니다. 하지만 포스트에 오류가 있다면 정정 피드백 기꺼이, 고맙게 받겠습니다.

예전에 자주 갔던 레스토랑 중에 '럭서'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있었다. '럭서? 럭서가 뭘까?' 잠깐 궁금해하다가는 잊어버리곤 했는데, 왜 그 레스토랑의 인테리어가 이집트 풍인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바보... 고등학교, 대학교 초학년 그런 시절이라 그런 것 생각할 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에야 우연히 그 레스토랑의 간판을 제대로 보았고 그제서야 간판에 영단어로 Luxor라고 써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때까지 그 레스토랑의 간판은 한번도 보지 않고 럭서 하면 어느 건물, 몇층으로만 알고 있었던 거다. OTL...

얼마전 친구와 럭셔리함에 대한 심오한(실은 머리는 비었고 겉멋만 든 사람 흉보는...ㅇㅇ;;) 대화를 나누다가 luxury라는 단어가 혹시 이집트의 도시 Luxor(룩소르)에서 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영영 사전에서 찾아본 luxury의 어원은 라틴어 luxuria이다. 그런데 자세한 점은 좀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생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동방에 있는 오리엔트 문명, 특히 이집트 문명에 항상 열등감 내지는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각주:1]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그리스인들의 탐욕스러움에 대해 넌지시 언급한 바 있지만, 그리스와 로마인들에게는 저 빛나는 태양의 이집트 문명이 사치스러움과 부유한, 그저 정복과 약탈의 대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이 꽃피던 룩소르라는 도시를 그저 럭셔리한 도시로밖에 볼 수 없지 않았을까?

고도의 문명을 물질적인 부유함의 잣대로로밖에 판단할 수 없는 그리스, 로마인들의 후예들인 서구인들에게서 탄생한 저 자본주의가 물질 만능 주의를 낳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수량화하고 물질로밖에 재단할 수 없는 사고방식, 보이지 않는 머리에 든 것보다 보이는 외모와 겉치장에 충실하는 경향. 이런 것들이 과도함(excess)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luxury라는 단어에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1. 이점은 그리스 신화의 이오의 이야기나, Europe(유럽)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에우로파 등의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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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 일리아스를 읽고 있습니다를 쓰면서 제가 착각했던 부분이 있네요. 그 당시의 그리스가 흔히 말하는 고대 그리스의 전성기 시대처럼 도시국가들일 거라고 지레짐작 해버렸으니 ^^;

고대 그리스 / 위키 백과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문명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1. 에게-미노아 문명
소아시아로부터의 이주민
B.C. 3000 청동기 돌입
B.C. 2000 선형 A 문자 사용, 미노아 문명의 전성기

2. 에게-미케네 문명
오늘날의 그리스인들의 선조들이 주도한 문명
B.C. 2000년경부터 남하하여 그리스 본토에 자리잡고 원주민과 혼합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의 반도에 많은 소왕국을 건설
미케네는 펠로폰네소스의 여러 왕국 중 '황금의 미케네'로 일컬어질 정도로 맹주격(이 미케네 및 아르고스, 코린트의 왕이 아가멤논)
미케네는 미노아 문명을 흡수하면서 발전, 미노아 문명이 몰락한 후 미케네가 에게 해의 패자가 된다.

3. 도리아 족의 남하
B.C. 12세기 그리스인의 마지막 이주자인 도리아족에 의하여 미케네 문명 몰락
미케네 사회 붕괴 후 그리스 본토에는 3개 내지 4개부족으로 구성된 소왕국 형성.
도리아족의 남하에 따른 혼란과 타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여러 촌락이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심이 되는 곳에 모여들어 도시가 형성. 그 시기는 호메로스 시대가 끝나는 기원전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예외도 많다.


여기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는 시기가, B.C. 기원전 1240~30년, 일설에는 기원전 1260경입니다. 2번의 에게-미케네 문명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지요(축적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략으로 분출하는 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예외가 없나 봅니다). 그리고 다음 세기에 도리아 족의 남하로 문명이 파괴됩니다.

일리아스는 대개 B.C. 8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방랑 시인들은 철기 시대에 청동기 시대의 사건들을 읊고, 사람들은 모여 앉아 그 무용담을 듣는 식이지요. 따라서 일리아스에서 아테네 여신이 아테네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해서, 아테네가 트로이 전쟁 당시 어느 정도 세력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일리아스 2권의 그리스의 군세를 열거하는 내용 중에 아테네가 없길래, 다른 왕국들이 트로이 전쟁에 힘을 소진한 사이 서서히 패권을 잡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도리아 족의 남하를 막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이네요. 하긴 트로이 전쟁의 B.C 1200년대와 B.C 5세기의 아테네의 전성기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데서부터 너무 말이 안되는 착각이긴 하지만요.

트로이 전쟁이 트로이의 부를 노린 침략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트로이 전쟁이 오히려 그리스 청동기 왕국들에게 독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앞글의 현이님의 댓글에 썼듯이 신화에 진실이 어느 정도 녹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1. 아트레우스가의 비극

... 트로이를 함락한 이후 전리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프리아모스 왕의 딸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차지가 되었다. 귀향길에서 그가 아르골리스에 이르렀을 때,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과 그의 동료들, 카산드라를 살해했다.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이 전쟁에 나간 사이에 그의 아내를 유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그 살인을 클리템네스트라의 탓으로만 돌렸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아가멤논은 역사상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나 아르카이아의 대군주였던 듯하다. 헬레니즘 시대에 스파르타 사람들은 그에게 제우스 아가멤논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숭배했다.


2. 오뒤세이아

... 거의 9년 동안 칼립소에 머물던 그는 마침내 그곳을 떠나 이타카에 도착했으며 그가 방황하는 오랜 세월 동안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충실한 개와 유모 외에는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가 옛날에 쓰던 활을 쏘아보라는 아내의 시험에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성공하여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보였다. 그리고는 텔레마코스의 도움을 받아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죽이고, 페넬로페의 남편과 이타카 왕으로서의 지위를 되찾는다.

제가 기억하는 이 두 이야기 외에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신화에 트로이 전쟁의 후유증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기스토스는 과연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사랑만을 원했던 것일까요? 특히 오뒤세이아의 아네 페넬로페에게 집적대는 구혼자들의 만행은 '오뒤세이아'를 읽어보면 더 적나라합니다만, 명색이 왕비인 오뒤세이아의 아내를 대하는 태도나 오뒤세이아의 재산을 멋대로 탕진하는 부분들을 읽어보면 한층 더 공감하실 듯 합니다. 과연 구혼자들이 페넬로페라는 미인만을 원했을까요? 아니면 오뒤세이아의 왕위와 부도 함께 원했을까요?

아무튼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은 재미있네요. 자칫하면 지식의 짧음으로 잘못 추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착각했던 사실을 바로잡는 경우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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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만에 일리아스를 다시 꺼내들어 짬짬이 읽고 있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읽는 거라 페이지는 잘 나가지 않고 있지만, 역시 멋진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틀리군요. 읽을 때의 관심사나 화두가 무엇인지, 심리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달라집니다.

2. 일리아스는 일리아드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일리아드는 라틴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가깝고, 일리아스가 그리스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것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서사시이니, 그리스식 발음을 따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쨋거나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의 이야기라는 뜻이고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별명이라고 합니다.


3. 비슷한 이야기로 제가 산 번역본은 천병희님이 번역하신 종로서적의 책인데요, 위키 백과 사전에도 올라 있는 책입니다. 이 번역본의 고유명사 표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면 책 머리부분에 설명해 놓은 것처럼 트로이아가 아니라, 트로이에로, 여신 헤라가 아닌 헤레로, 하데스가 아닌 아이데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티카 방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원전대로 이오니아 방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티카 방언은 이오니아 방언의 하위 방언이기는 하지만 특히 수세기 동안 아테네 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언이었다고 하네요. 일리아스는 아테네가 그리스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기 이전의 일일 뿐더러 주.로. 이오니아 방언으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니 천병희님의 표기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그리스어 / 위키 백과) 하지만, 주로 아티카 그리스어에서 차용했을 영어식 고유명사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조금 헷갈리기도 하네요.

아테네가 오랫동안 그리스 세계의 맹주였기 때문에, 오늘날엔 일리아스에 나오는 고유명사들 마저도 아테네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아티카 방언의 표기를 따른다는 점은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절감하게 되고요. 비슷하게 앞으로 남한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남한과 북한이 각각 다른 많은 단어들 역시 남한식으로 통일될 가능성이 많겠죠? 개인적으로 북한의 단어들은 참 기발하고, 예쁜 단어들이 많은 것 같은데 많이 사라지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4. 일리아스는 총 24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 10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약 50일 동안 일어난 공방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 분노해 전쟁에 나가지 않기로 선언하는 부분에서부터, 전우의 죽음에 분노해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출전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최고의 장수 헥토르를 죽이고 복수하지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부성에 감동해 헥토르의 시체를 넘겨주고,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장면까지가 일리아스의 이야기입니다. 10년간의 아킬레우스의 대활약과 트로이의 멸망이라는 매력적인 부분이 빠지고서도 이렇게 훌륭하다니, 참 놀랍지 않나요?

5. 서사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생생한 심리와 장면 묘사란... 정말 서양 문학의 원류라고 할 만합니다. 아직 5권을 읽는 중이지만, 1권의 처녀 하나를 둘러싼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신경전과 4권의 전투 장면은 정말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정서적 핍진성에 대해 서사장르의 한계라는 점을 들어 변호하는 편이지만, 이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긴 수천 년을 사랑받은 서사시와 몇십 년도 채 안된 블록버스터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가요? ^^;;

6.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서사시답게 역시 관용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기억에 남는 표현들로는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당시에는 볼이 예쁜 것이 미인의 기준이었을까요?)", "걸음이 날랜 아킬레우스(아가멤논과 싸운 뒤 진중에서 놀고 있을 때에도 이런 표현이 나오니, 참...;;)", "포이보스[각주:1] 아폴론", "...창자가 모두 땅위로 쏟아졌고 어둠이 그의 두 눈을 덮었다(정말 장수의 죽음을 묘사할 때는 어김없이 수시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등이 생각나네요.

7. 2권을 읽다보면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과 이끌고 온 군세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군세를 병력이 아니라 끌고 온 군선의 수로 표현하는 것이 특이한데요. 그 끄트머리 부분에 역주로 한 배마다 85명이었던가? 그렇게 쳐서 병력이 약 10만이라는 계산을 해놓았습니다. 트로이 전쟁이야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듯 하지만, 그 많은 그리스 도시국가왕국들의 왕과 10만이라는 대병력이 10년동안 자리를 비우고도 본토는 무사했을까요? 게다가 오뒤세이아를 봐도 상당수의 그리스군에게 편한 귀국길이 아니지요. 어느 정도가 과장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또 어쩌면 그점이 훗날 소수의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잡게 된 한가지 요인이었을지. 좀더 조사해 보아야겠습니다.

8. 읽다가 궁금한 점이나, 흥미로운 점이 생기면 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1. Phoibos, 아폴론 신의 별명으로 "빛나는 자", "정결한 자"라는 의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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