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01.24 유디트 I / 구스타프 클림트
  2. 2006.01.24 마라의 죽음 / 다비드 / 네이버 카페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I, 1901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 1862 ~ 1918)는 인간의 사랑과 성(性), 죽음과 같은 소재를 모자이크등과 같은 다양한 장식무늬를 통해서 강조한 화가이다. 20세기 초의 미술은 인간의 질환과 성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는데 특히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성에 대한 이론이 큰 영향을 끼쳤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클림트는 바로 프로이트가 살던 빈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키스]이지만 오늘은 구약성서 외전(外典)의 하나인 [유디트 서(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소재를 찾은 [유디트 I]를 골라보았다.

유디트는 베트리아를 포위한 앗시리아의 장군 호로페르네스의 막사에 자진해서 들어가 하룻밤을 지낸뒤, 방심한 적장의 목을 베어 민족을 구했다는 전설속의 여인이다. 전설의 내용만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조선의 '논개'와 같은 부류이지만 그림 속의 유디트의 농염한 자태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절개있는 여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요한의 목을 자른 살로메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아마도 유디트의 저 기묘한 표정때문이 아닐까? 각이 진 현대적 얼굴, 음란한 시선과 유혹하는 듯한 붉은 입술, 부드러운 듯 무심한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왼손에 들려있는 잘린 목이 주는 섬뜩함.. 아마도 클림트는 유디트의 이중적인 표정 속에 세기말적인 혼란과 인간의 보편적인 이중성, 무의식을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닐까..?

아래: 젠텔레스키, 카라바조의 '유딧'과 비교 감상하기



젠텔레스키의 '유딧'



카라바조의 '유딧'

역시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나오는 그림이다. 공통점은 죽음, 여성에 의한 살인, 대의 명분을 가진 여성에 의한 속임을 당한 남자의 죽음.
하지만, 한 여인은 기요틴에서 처형당했고, 한 여인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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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죽음 [Death of Marat]
19세기 고전주의 회화의 창시자인 다비드의 작품.
원어명 Mort de Marat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종류 캔버스에 유화
크기 165×128.3cm
제작연도 1793년
소장 벨기에 브뤼셀왕립미술관


1793년 7월 13일 피부병 때문에 자주 목욕을 하던 마라가 자기 집 욕실에서 샤를로트라는 25세 된 시골처녀에게 척살(刺殺)당한다. 지롱드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샤를로트는 자코뱅당의 지도자인 마라가 지롱드당을 공격하는 데 앞장을 서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를 암살한 것이다. 그 3일 후 샤를로트는 처형된다. 혁명의 광기가 어려 있던 시기의 일들이었다.

마라는 정치논평신문 《인민의 벗》을 창간하여 스스로 인민의 친구임을 자처하고 있었다. '저는 아주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당신이 제게 호의를 베풀어 주실 이유가 충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이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온 샤를로트를 마라가 아무런 의심없이 만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어떻게 샤를로트가 욕실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마라의 혁명동지였던 다비드는 사건이 일어난 지 3일 후에 의회로부터 의뢰를 받아 3개월 만에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

욕실 안은 아무런 장식도 가구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상아 손잡이가 달린 피묻은 칼이 놓여 있을 뿐이다. 비명에 간 청렴결백한 혁명가의 생활이 부각되어 있다. 잉크병이 놓인 낡은 나무상자에 '마라에게, 다비드가 바친다(A MARAT, DAVID)'는 글만이 외로운 비문처럼 적혀 있다. 그의 한 손에는 면회를 요청할 때 샤를로트가 가지고 온 메모지가 들려 있고, 밑으로 축 처진 다른 손에는 깃털펜이 쥐어져 있다.

그림 속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적 순교자를 연상시킨다. 오른쪽으로 점점 밝아져 가는 배경은 마치 하늘의 영광이 죽어가는 성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비드는 이런 그리스도교적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거의 알아차릴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뛰어난 솜씨로 처리하였다. 다비드는 후에 나폴레옹의 궁정화가가 되어 한때는 화려한 생활을 하였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는 벨기에로 도피하여 외롭게 생활하다가 결국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언급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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