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우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09.22 남녀 사이의 우정은 존재할 수 있을까? (11)
  2. 2006.07.28 '친구'에 대한 단상 (3)
원래는 다른 글을 쓰려고 했는데, 현이님의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보고 오늘은 이 문제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현이님의 블로그에 댓글로 달았듯이, 저는 제 개인적인 경험들로 인해 "남녀간에는 우정이 존재하기 힘들다(존재할 수 없다가 절대 아닙니다)"라고 생각하는 터이지만, 현이님의 글이 대부분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습니다. 이런 것은 남에게 설득하고 강요한다고 납득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 글 역시 다른 이를 설득하거나 현이님의 글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닌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을 끼적였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우선 '친구'나 '우정'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전에 친구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심지어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친구의 범주가 바뀔 수 있는데 사람마다는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겠습니까? 예를 들면 사람을 넓게 사귈 것이냐, 좁게 사귈 것이냐 하는. 거기에 남녀라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사이의 카테고리를 끼워 넣어야 하다니, 얼마나 복잡 미묘해질까요?

2. 현이님의 비유 중에 흑인과 백인 친구,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현이님도 그리 엄선한 예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의 우정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현이님 죄송해요 ㅠ.ㅠ). 우선 스승과 아버지, 제자와 아들의 우정은 스승과 아버지가 제자와 아들을 친구처럼 대해줘야 가능해지는 관계가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스승과 아버지는 제자와 아들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제자와 아들을 어느정도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제자와 아들은 천재나 성인이 아닌 한 그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에서 어느정도 일방적인 관계이지요.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 '우리 친구로 지내자.'라고 할 때 처음부터 어느 한 쪽이 흑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지요. 문제는 남녀간의 사이는 단순한 흑인과 백인의 사이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저는 애초에 만들어진 게 남자는 여자에게, 혹은 여자는 남자에게 결국엔 성적으로 끌리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종족 유지를 위해 자손을 낳기 위한 본능이든, 뭐든 말입니다. 여기서 이성에 관한 보수성, 진보성이라는 문제가 또 하나 개입하죠.

3. 점점 바뀌고는 있지만, 한국 특유의 정서와 사회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쪽이었죠. 그래서 제가 따르는 어르신들이나, 형/ 누나들에게 많이도 여쭤보고 물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대.체.로. 나이가 많으실 수록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제 블로그를 자주 들르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을 아실 것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이것 봐라, 하고 싶은 생각은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큰 요인은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에 대한 한국 사회 특유의 거부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지 나이를 먹을 수록 보수적이 되기 때문일까요? 세상이 점점 변해가는데도요?

4. 저는 "남녀 사이에 진실한 우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몇 번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 너무 일찍 그 환상에서 깨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이성과의 진실한 우정이 있어본 경험과 그런 우정이 있다고 믿었던 확신이 깨져버린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환상을 품고 사느냐 깨져버리고 현실을 깨닫느냐라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슨 여성 혐오증에 걸린 사람처럼 제가 사랑할 사람 외에는 거리감과 경계감을 드러내면서 여자들을 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제가 이따금 모여서 만나고,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하는 여자들은 뭐라고 부를 거냐고 한다면 '친구'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다른 사람에게는 잘 못하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는 - 그 녀석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는 언제나 '내 웬수'라고 표현하는, 실은 '친구'보다 '벗'이라는 표현을 더 붙여주고 싶은 - 친구들은 아닙니다. 여자가 그런 '벗'이라는 범주에 끼는 경우는 앞으로 제 평생에 제 아내가 될 사람, 한 사람밖에 없을 겁니다.

요약하면 남녀 사이의 우정 문제는 우정이라는 범주의 문제, 이성에 관한 보수성/ 진보성의 차이, 성적 본능에 관한 인식의 차이, 경험 혹은 환상의 문제라는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섵불리 강요하거나 결정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문제에서의 제 나름의 경험들과 가치관들 때문에 힘들다고 보는 거구요.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나중에 제가 틀렸다는 걸 깨닫고 생각이 바뀔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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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는 글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포스팅하려 했으나, 여유가 없어 생각만 해두었다가 나중에 뒷북 치는 글. 물론 Anyway,님 글의 요지와는 조금 벗어난 글이다.

나는 식당에 가서 밥은 혼자 먹을 수 있다. 얼마 전 직장과 본가가 너무 멀어 혼자 독립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가져다 주신 반찬으로 어찌 먹는다고는 해도 이전까지는 거의 4반세기 이상 국없이 식사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지라, 식사를 해도 항상 속이 허했다. 그래서 항상 밤이면 24시간 뼈 해장국집이나, 설렁탕 집을 자주 들락거렸다. 내 기억에 그 전까지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듯 하지만, 뭐 혼자 먹는다고 해서 별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요즘도 혼자 식사를 때워야 할 상황이면 별 생각 없이 혼자 가는 편이다. 다만, 창동에 내가 정말 좋아하던 내장탕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원체 반찬이 푸짐한지라 혼자 가면 받아주질 않았다. 그런 식당들이 문득 떠올라 불쑥 가고 싶은데 못 가고, 못내 그리울 때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만약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오늘까지만 상영하는데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모두 바쁘다면 혼자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그런 사태는 없어서 여태껏 혼자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는 함께 보는 이와 영화 등을 따지는 편이기 때문에, 싫은 이와 함께 봐야 한다면 차라리 혼자 보겠다.

하지만! 술이 문제다. 요놈의 술은 절대로 혼자 못 마시겠다. 맥주는 개인적으로 술로 치지 않기 때문에 예외로 하고, 집에서라도 혼자 소주를 마실라 치면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의 그 맛과 그 기분이 도통 안나더라.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이는 내가 진정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맞다. 내가 무슨 주당도 아니고 술을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나?

여자들은 화장실을 갈 때도 함께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이유일까 궁금하다. 많은 이유들과 설들을 들었지만, 학회에서 인정한 논문급의 수긍이 가는 이유는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은 별종이야'라는 의미는 아니다. 남자들 역시 밥을 혼자 못 먹고, 영화를 혼자 못 보고, 술을 혼자 못 마시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녁에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을까?"
"야, 오래간만에 만나서 영화나 한 편 보자!"
"야, 얼굴 까먹겠다. 술 한잔 해야지~"
내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나도, 내 주위 사람들도 가끔 만나는 친구들에게 예의상 이런 말을 부지불식간에 하곤 한다. 나는 그런 이벤트성 만남을 가지는 이들을 정말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마음을 나누는 벗들과 술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을 함께 마시는 친구들 모두에게 동일한 친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술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그런 친구들이 존재한다. 정말로 자주 만나는 친한 친구는 굳이 술을 핑계로 하지 않아도 반갑지만, 어떤 친구는 가끔 만나도 밥이나, 술이나, 영화같은 수단을 핑계로 만나게 된다. 왜일까? 안그러면 만나서 뻘쭘하니까. 분명 후자의 친구들은 나와 추억이나 비밀같은 무언가를 공유하거나 오랜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뎠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공감대가 없는 친구들일 것이다.[각주:1] 그들에게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는 하지만, 실은 그냥 '지인'에 가까운...

나는 그런 이들을 내 마음 속에서는 친구로 분류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다른 많은 이들은 이들 역시 친구라고 분류할 것이다. 이른바, 나는 친구를 가능한 한 좁고 깊게 사귀는 성향의 사람이고, 그들은 어느 정도 얕아지는 것을 감수하고 넓게 사귀는 성향의 사람일 것이다. 내가 한때 이런 사람이어봐서 알지만, 흥미롭게도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넓고 깊게 사귀면 그게 가장 좋은 것 아닐까?'라고 말하며 그것이 분명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내 인간 관계가 그렇다고 믿었지만 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밥친구', '술친구', '영화친구' 같은 이들을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술로 한 맹세는 술이 깨면 사라진다.'는 지금은 유명한 온라인 게임이 되어버린 한 만화의 대사처럼, 수단이나 용건이 있어야만 만남이 가능한 사람들은 그런 요건들이 사라지면 '우정'이라는 단어 역시 부질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와 주위 사람들만을 보며 느낀 결론이고, 정말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을 넓고 깊게 사귀는' 인간 관계의 결정체인 사람은 실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삶을 더 살아가면서 내 인간 관계에 대한 가치관은 다시 한번 변할 수 있을까?

그와 더불어, 여자들의 우정이란 어떤 것일까? 여자들은 정말로 화장실도 함께 갈 만한 사이이기 때문에 화장실도 함께 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이 정도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는 너를 중요하게 생각해'라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화장실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는 것일까? 여자들로부터 듣지 않으면 오묘하고, 듣고 나면 더 오묘한 이 심리를 사람인, 더구나 남자인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1. 그 사람과 처음 만난 이후로 지난 물리적인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만난 시간은 짧아도, 함께 공유하고 서로 힘을 준 시간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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