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지만, 소년은 천사를 쫓으려는 꿈으로 하늘을 난다. - 빠리소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블로그에도 가뭄에 콩나듯 정치 이야기를 쓰곤 한다.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모른다. 내가 정치 이야기를 끼적이는 경우는 '아.. 저 인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치가 떨리거나, 무엇인가를 배울 때가 있을 경우(대부분 타산지석이니 문제지만), 두가지인 것 같다.

올 연말이 되면 온 동네가 정치 이야기로 지겹게 시끄러울 테니, 연초에 미리 화풀이하고 그때 잠잠하련다.

#2.1
예전 대학생 시절에 지극히 사적인 용무로 경복궁역 근처 조선일보의 한 사무실을 몇 번 드나든 적이 있다.[각주:1] 그 몇 번 중에 한 번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대부분이 윈도우 쪽으로 다가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는 행렬을 바라보면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허허,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제 빨갱이 세상이 되겠구먼...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정말 충격적이어서 조금의 부풀림도 없이 똑똑히 기억하는 두마디다. 몇 번 언급했다시피 난 그때나 지금이나 노무현 지지자는 아니지만, 이왕 대통령이 된 마당에 국가를 위해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머리 허옇게 센 어르신들은 대통령이 청와대에 채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노무현 탓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기왕이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응원하는 평소 성향처럼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면서 마음 속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을 편들었다. 그때 이미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이딴 식으로 나올 줄 알았지만, 정말 이딴 식으로까지 할 줄은 몰랐다.

#2.2
백년 가는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누구의 말이 무색하게 열린우리당이 창당한지 몇년이나 지났다고 만약의 경우 세갈래로 찢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코미디도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계파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포부는 어디로 갔는지 위기가 닥치자 사수파니 김근태 계열이니 정동영 계열이니 갈기 갈기 찢어질 판이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지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 문을 두드리고 있단다. 몇년 전 열린우리당은 무엇인가 다를 거라는 어떤 이들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었지만 맞지 않기를 바랬던 예감이었기에 누구에게 자랑할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정치인이 하는 말은 누가 하더라도 한두 수 쯤 새겨들으련다. 이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수단이 급조된다면 결과 역시 좋을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2.3
어떤 블로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업적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타파, 참 중요하다. 그런데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꼭 무능함을 증명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꼭 경제나 부동산 정책에서의 무능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분야에서도 충분히 무능한 듯 보이지만, 이전 정권들에서의 누적된 문제들도 없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치 문제, 언론 문제 등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철학을 모르겠다. 대통령의 Think Tank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삼국지에서 제갈 공명이 유비에게 방통은 일개 마을, 또는 군이나 다스리고 앉았을 수준의 인재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반대의 상황으로 정말 될 줄 몰랐던, 그래서 그런건지 정말 준비 안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맞이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훗날을 위해 이런 학습효과가 필요한지도.
  1.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자면 조선일보를 위하거나 조선일보에 득이 되는 용무는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였다. [본문으로]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

현이님이 이 글을 보실 것을 알기에 좋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점 뿐만 아니라 세부점에서도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자녀가 정말 좋은 글을 쓰게 하고 싶으면 어린 시절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세뇌시킬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들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녀의 호기심에 대한 적절하면서 균형잡힌 대답은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식 수준이지요.

하지만 저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주장이고, 과연 어릴 때부터 '짜라투스트라'를 읽는다고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어질까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연습시킨다고 한국의 모짜르트가 나올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바보스런 부모 아래서는 천재도 바보가 되기 십상입니다. 정말 천재라면 부모가 그렇게 시키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고, 천재가 아니라면 지레 질려서 오히려 부모가 강요하는 그 분야에 거부감을 느낄 확률이 높습니다.

어린 자녀에게 책을 즐겨 읽는 습관을 들게 하고 싶으시면, 저희 부모님처럼 그저 디즈니 명작 동화 한 질을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감히 말하건데 저는 저 디즈니 명작 동화 한질이 적어도 대학까지의 인생을 좌우했습니다. 저 동화집이 계기가 되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동화에서도 인간의 편견이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도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시험에서 외국어 영역의 상당한 지문은 읽어볼 필요도 없이 답을 고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특히 고등학교 영어 문제, 상당한 지문을 저 디즈니 명작 동화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싶은 이야기에서 지문을 따왔더군요).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제 앞으로의 인생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책을 읽는 습관을 통해 제가 선호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나 글도 진득하니 읽어보아야 하는 이유를 배웠거든요.

좌뇌/우뇌 문제 역시 뭐든지 지나치게 쪼개서 바라보려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인 논거는 아니지만, 관련된 최근의 한가지 사건을 들어보렵니다. 얼마전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훑어보신 분들은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분께서 위기의 원인 중 한가지로 '극도의 분과주의'를 꼽으셨는데 저는 거기에 공감합니다. 오늘날 그렇게 과를 쪼개대서 그 분야의 천재나 전문가가 더 많이 나오고 있나요? 전문적으로 그렇게 잘 나눠서 가르치셔서 지식은 많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이 양산되고 있나요? 기술이 중요한 줄만 알고 정작 사람은 뒷전인 사람들은요? 학자라면서 자신만의 것을 탐구하거나 세상을 좀더 좋게 바꿔보려는 생각은 안하고 케케묵은 책과 사상들만 파고 있는 사람들은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뉴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습득하면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명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요?

인간이라 함은 며칠 전의 글에서 썼듯이 머리는 차가우면서 가슴은 따뜻해야 버젓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좋은 가치란 어느 한쪽만 만족시킨다고 성립되는 것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글을 머리로만 쓴다고 가슴으로만 쓴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이님의 말씀처럼 명문은 이성을 납득시키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
원래는 다른 글을 쓰려고 했는데, 현이님의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보고 오늘은 이 문제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현이님의 블로그에 댓글로 달았듯이, 저는 제 개인적인 경험들로 인해 "남녀간에는 우정이 존재하기 힘들다(존재할 수 없다가 절대 아닙니다)"라고 생각하는 터이지만, 현이님의 글이 대부분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습니다. 이런 것은 남에게 설득하고 강요한다고 납득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 글 역시 다른 이를 설득하거나 현이님의 글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닌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을 끼적였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우선 '친구'나 '우정'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전에 친구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심지어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친구의 범주가 바뀔 수 있는데 사람마다는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겠습니까? 예를 들면 사람을 넓게 사귈 것이냐, 좁게 사귈 것이냐 하는. 거기에 남녀라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사이의 카테고리를 끼워 넣어야 하다니, 얼마나 복잡 미묘해질까요?

2. 현이님의 비유 중에 흑인과 백인 친구,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현이님도 그리 엄선한 예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의 우정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현이님 죄송해요 ㅠ.ㅠ). 우선 스승과 아버지, 제자와 아들의 우정은 스승과 아버지가 제자와 아들을 친구처럼 대해줘야 가능해지는 관계가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스승과 아버지는 제자와 아들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제자와 아들을 어느정도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제자와 아들은 천재나 성인이 아닌 한 그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에서 어느정도 일방적인 관계이지요.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 '우리 친구로 지내자.'라고 할 때 처음부터 어느 한 쪽이 흑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지요. 문제는 남녀간의 사이는 단순한 흑인과 백인의 사이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저는 애초에 만들어진 게 남자는 여자에게, 혹은 여자는 남자에게 결국엔 성적으로 끌리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종족 유지를 위해 자손을 낳기 위한 본능이든, 뭐든 말입니다. 여기서 이성에 관한 보수성, 진보성이라는 문제가 또 하나 개입하죠.

3. 점점 바뀌고는 있지만, 한국 특유의 정서와 사회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쪽이었죠. 그래서 제가 따르는 어르신들이나, 형/ 누나들에게 많이도 여쭤보고 물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대.체.로. 나이가 많으실 수록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제 블로그를 자주 들르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을 아실 것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이것 봐라, 하고 싶은 생각은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큰 요인은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에 대한 한국 사회 특유의 거부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지 나이를 먹을 수록 보수적이 되기 때문일까요? 세상이 점점 변해가는데도요?

4. 저는 "남녀 사이에 진실한 우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몇 번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 너무 일찍 그 환상에서 깨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이성과의 진실한 우정이 있어본 경험과 그런 우정이 있다고 믿었던 확신이 깨져버린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환상을 품고 사느냐 깨져버리고 현실을 깨닫느냐라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슨 여성 혐오증에 걸린 사람처럼 제가 사랑할 사람 외에는 거리감과 경계감을 드러내면서 여자들을 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제가 이따금 모여서 만나고,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하는 여자들은 뭐라고 부를 거냐고 한다면 '친구'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다른 사람에게는 잘 못하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는 - 그 녀석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는 언제나 '내 웬수'라고 표현하는, 실은 '친구'보다 '벗'이라는 표현을 더 붙여주고 싶은 - 친구들은 아닙니다. 여자가 그런 '벗'이라는 범주에 끼는 경우는 앞으로 제 평생에 제 아내가 될 사람, 한 사람밖에 없을 겁니다.

요약하면 남녀 사이의 우정 문제는 우정이라는 범주의 문제, 이성에 관한 보수성/ 진보성의 차이, 성적 본능에 관한 인식의 차이, 경험 혹은 환상의 문제라는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섵불리 강요하거나 결정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문제에서의 제 나름의 경험들과 가치관들 때문에 힘들다고 보는 거구요.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나중에 제가 틀렸다는 걸 깨닫고 생각이 바뀔런지도.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
예전에 사람에게는 각자 세 번의 커다란 기회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세 번의 기회라니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히 잘생긴 혹은 예쁜 이성이 말을 걸어온다거나 보수가 조금 더 좋은 직장에서 제의가 온다거나 하는 사건 따위는 자잘한 편이겠죠. 개인적으로 로또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어 받을 만한 큰 돈은 필요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뭔가 엄청난 사건이기는 하니 그 정도면 기회 중의 하나가 될런가요?

인생의 세 번의 기회라는 걸 저는 야구 9회말 타석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보니, 저는 첫 번째 기회였던 한 사람을 놓치고 그 사람이 떠나면서 주고 간 두번 째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9회말 노주자 투아웃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20대 후반의 나이인데 너무 비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또 복권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으니 투수의 연습구나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파울볼 정도로 취급하고 있구요.

그런데요. 저 말이 '참 말도 안되는 소리다,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 말을 지어낸 이가 상당히 지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야구는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아웃인지 심판이 판정해 주지만 자신의 인생은 심판을 봐주는 다른 이가 없죠. 자기 자신이 심판인 겁니다. 아주 비관적인 사람이야 무슨 소리를 해도 비관적일테니 패스하도록 하고, 만약 제가 아주 낙관적이었다면 9회말 원아웃 정도일 겁니다. 아무리 낙관적이래도 그 한 사람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제가 조금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투아웃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만약 앞으로 '이게 바로 세번 째 기회다!'라고 생각하는 기회를 놓친다면 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 그건 세번의 기회에 속하지 않나보다.'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저는 계속 제 꿈을 이루기 위한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겁니다. 물론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꾸준히 자신을 계발해야겠지만요.

2006년 8월 4일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집 [Scoring Position]이 나왔다는 소식을 아주~ 뒤늦게 알고서 문득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떠올라 적어 보았습니다. 요새 음악 쪽에 관심을 많이 못가지네요 ㅠ.ㅠ 이 인디밴드에 대해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홈페이지인 http://www.rockwillneverdie.com/3rd/home.htm 에 가시면 폭소를 터뜨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곡 제목들부터가 아주 웃깁니다만, 곡들 자체는 그리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신이 1회초 첫타석에 들어섰다고 생각하시든, 9회말 투아웃의 마지막 타석 풀카운트라고 생각하시든 인생의 멋진 만루홈런을 하나씩 날리시길 바랍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
블로그 메타 사이트의 글들을 이것 저것 기웃대다 보다 보니, 인품을 점수로 매겨주는 테스트도 있더군요. 하시고 나서 그것에 관한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뭐라 하는건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그 테스트 자체에 관해 좀 씁쓸했던 것은, 참... 인품도 점수를 매겨야 하나요? ^_^;;

제 블로그를 자주 들르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테스트라는 것이 정말 좋은 포스팅 꺼리임에도 불구하고 테스트에 관한 글이라고는 정치 성향 테스트 결과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는 그런 테스트 안해보냐구요? 물론 재미있겠다 싶은 것은 당연히 해봅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그 결과를 이러쿵저러쿵 올리지 않는 이유는 그 결과라는 것이 하루의 운세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테스트 결과를 블로그에 올린다면 (다는 아니시겠지만)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어떤 분들은 그 결과만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이겠구나,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저란 사람은 제 블로그의 글들을 통째로 읽어보셔도 모르실텐데요.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만 보여드리니까요. 이런 거야 제 개인적인 성향에 불과한 것이니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평소엔 다른 분들의 테스트 결과를 봐도 그냥 재미로 읽고 넘깁니다만, 인품에 점수를 매기는 테스트는 좀 아니다 싶습니다. 더구나 그 테스트 질문이라는 것이 오래 전에 조금 다른 결과들을 보여주는 테스트로 알려져 있던 것 같은데요. 오프라 윈프리 운운하는 것도 똑같고, 결과는 네 가지 정도구요.

제가 그 테스트에서 정말 마음에 안들었던 점은 그 인품 테스트라는 것의 고득점자는 과연 누구의 마음에 드는 인품의 소유자일까요? 체제에 순응하는 인품의 소유자인가요? 윗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인가요? 그럼 저득점자는 문제가 있는 건가요? 제가 보기엔 존경받는 천재들이나 세상을 바꾼 선구자들이 모두 인품이 훌륭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재미로 하고 재미로 구경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조금 씁쓰레 해서 끼적여 봤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던 '어린왕자'의 처음 부분도 생각나구요.

덧. 맞춤법에 관한 댓글이 달릴까봐 선방합니다. ^^;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인데, '끄적이다'가 아니라 '끼적이다'가 맞는 표현이랍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
바다이야기라는 사행성 게임 오락실이 일주일만에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온나라라는 말을 쓰려니 우습습니다. 한국의 굵직굵직한 비리라는 것이 늘 그렇듯 제게는 바다이야기 사건 역시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니까요.

제가 바다이야기라는 오락실이 생긴 모습을 처음 본 게 독립해서 살던 때니까 2004년 정도 되려나요? 저는 정말로 바다이야기라는 간판만 보고 횟집인줄 알았다지요? ^^;; 지나가면서 '아니 횟집 윈도우가 왜 저렇게 시커매?'라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바다이야기보다 그 근처에 생겼던 경마 게임장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경마를 도박이 아닌 재미로 이따금 즐기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경마=도박=패가망신'이라는 선입견을 안가진 한국 국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게 생겨서 과천에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어이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바다이야기와 관련한 뉴스를 보면서
노무현 정부는 바다이야기, 김대중 정부는 카드대란, 김영삼 정부는...
순간 멈칫거렸더니, 막내 동생이 하는 말이
왜~ 나라를 말아먹었잖아.
그렇군요. 딱히 흠잡을 데 없이(?) 나라를 말아드셨습니다 그려... 제 막내 동생이 고3이라죠? 청소년들이 정부에 대해 저런 정도의 인식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지 않습니까? 그러고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전쟁이 나면 국가를 위해 싸우겠는가?'라는 설문에 중국과 일본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옴을 개탄하면 안되지요.

바다이야기를 노무현 정부가 얼마나 비호했든 안했든, 정부 고위층이 얼마나 깊숙히 개입했든 안했든 2년 전 평범한 청년도 결과를 뻔히 예측할 정도의 참사를 방치, 확대한 책임은 피할 수가 없겠습니다. 선진국보다 훌륭하고 도덕적인 정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하나를 알면 열은 몰라도 둘 정도는 아는 정부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Creative Commons License일부를 제외한 모든 포스트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 예외의 경우 빠리소년의 공지 참조

,